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정효진 Aug 05. 2024

스벅에서 발라당 넘어져 봤어요?

잠시 자유의 몸이 되었다. 좋아하는 편안한 원피스로 갈아입고 어울리지 않게 큼지막한 가방을 메고 스벅으로 향했다. 5분거리이고 스벅 쿠폰도 있으니 안 갈 이유가 없었다.

이것저것그것 할일이 있지만 혼자니 이렇게나 가뿐할수가. 소풍가는것도 아닌데 발걸음이 너무 방정맞다. 하지만 짐짓 근검하고 시크한 표정으로 스벅문을 열고 들어간다. 왠지 여기에선 시크한 도시인이 되어야할 것 같은 느낌적인 느낌이다. 내가 들어온 스벅은 서울 강남 어딘가의 아주 세련된 곳이니까.

최애 메뉴인 아이스 라떼를 주문한다. 쿠폰이 있으니 사이즈 업그레이드로 깔끔하게 주문완료. 괜찮은 자리를 찾아 표정은 시크하게 눈은 미어캣이 되어 바쁘게 굴려댄다. 주문대 앞 넓은 테이블에 한자리 앉기로 한다. 다인석은 혼자인 내가 앉기엔 눈치가 보여서 포기.

테이블에 노트북과 마우스, 충전선 등을 꺼내 주섬주섬 정리한다. 가방을 의자에 걸어놓자 진동벨이 울리고 나는 자연스럽게 커피를 받아온다.

감사합니다. 맛있게 드세요.

아르바이트의 친절한 음성이 귓가를 기분좋게 때렸다.

커피를 우아하게 내려놓고 이리저리 콘센트를 찾았다. 테이블 밑에 있는 콘센트를 확인하고 자리에 앉으려 몸을 숙인다.

어머머!!

의자는 저 뒤쪽 어딘가에 빠져있었고 발라당 누운 내입에선 나도 모르게 비명이 새어 나왔다.

원피스 입었는데... 정말 말그대로 발라당 누으면서 그 반동으로 치마가 한차례 휘청였고... 다행히 번개같은 속도로 일어났지만....여긴 어디 나는 누구. 순간이동으로 집으로 사라지는 마법이 간절했다.

그런데. 그런데 더 창피한건 내 주위에 있던 어느 누구도 킥킥대거나 힐끔거리는 사람이 없었다는 거다. 모두들 무표정으로 책을 읽거나 공부를 했고, 나를 쳐다보는 따위의 촌스런 행동은 볼 수 없었다. 아르바이트생들도. 나를 위한 배려라는걸 너무나 잘 알지만 그래서 더 창피하고 쪽팔린 건 왜 때문인건가. 웃을수도 울을수도 없는 원치않는 무대위 주인공이 된 나는 힐끔힐끔 주위를 둘러보다 노트북을 챙겨 서둘러 구석으로 자리를 옮겼다.


차라리 킥킥대고 웃었으면 덜 무안했으려나? 생각해보니 그건 또 아니다. 그들은 그들의 최선을 다했다. 이래나 저래나 이건 그저 내가 감당해야할 쪽팔림의 몫일뿐이다.


하필이면 계산대 앞 사방이 훤한 곳에서 벌러덩 넘어질게 뭐람. 엄청 쿨하고 조용하고 멋있게 들어왔는데...

아까 내 옆에 있던 사람들이 나가길 기다리며(그런데 왜 기다리지?) 나는 또 이렇게 한편의 스벅 추억을 남기고 있다.

이전 21화 뛰고 싶어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