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날도 별다를 것 없는 평범한 날이었다. 자전거를 타고 도시락을 전달하러 가는 중이었는지 스벅을 가던 중이었는지 기억조차 안나는 걸 보면. 너무 평범해서 내 삶이 이래도 되는 건지 속상할 지경이었다.
열심히 자전거 페달을 밟다 문득 아래를 내려보니 자전거 앞바퀴가 땅과 뽀뽀하기 직전이었다. 공기가 빠져 달릴 때마다 바퀴가 물컹물컹해지는 게 눈으로도 확연히 보였다. 급히 내려 바퀴를 만져보니 내 피부처럼 쑥쑥 잘도 들어갔다. 아무리 무디고 무디다지만 이지경이 되도록 모르다니. 나도 참 너무했다. 하지만 무신경 끝판왕인 나는 그 와중에도 좀 더 탈 수 있지 않을까 고민에 빠졌다. 수리하기가 너무나 귀찮았다. 하지만 다행히 시야에 자전거 판매점인 asahi가 들어왔다. 아들내미, 딸내미 자전거를 모두 산 곳이다. 사고 나서 고장이 날 때마다 뻔질나게 드나들어서(사실 자전거를 스포츠카로 착각한 아들내미가 심하게 막 탔다.) 지나갈 때마다 고마움과 죄송함이 그득한 곳이다. 다행히 판매점 앞에 공기를 넣을 수 있는 장치 같은 것이 있다는 걸 알고 있었다. 보통 남편이나 아들이 사용하기 때문에 그곳의 존재만 알던 나는 어쩔 수 없이 용기를 내어 발걸음을 옮겼다. 그리고 공기주입장치 앞에 자전거를 세우고 입구를 찾아서 마개를 뺐다. 피융하고 공기 빠지는 소리가 들리자 허겁지겁 공기주입장치의 주둥이를 입구에 고정시켰다. 그리고 인공호흡을 하듯이 장치의 손잡이를 눌러 공기를 넣었다.
얼마나 정신없이 하고 있었을까?
한 직원분이 조용히 다가와서 뭐라 뭐라 말을 건넨다. 얼굴을 들어보니 표정을 알 수 없는 젊은 청년이었다. 무슨 말인지 몰라 공기주입장치만 가리키며 어색한 미소를 지었다. 그러자 직원분은 조용히 부품을 정리하고 자전거를 번쩍 들어 3미터 떨어진 다른 기계 앞에 자전거를 대었다. 그리고 그곳에서 공기를 넣기 시작했다.
아.... 여태 엉뚱한 곳에서 했구나....
창피함과 뻘쭘함이 몸을 훑고 지나갔지만 그것도 잠시. 자전거 마개의 부품을 분리하더니 보여주면서 뭐라 뭐라 한다. 그리고 뻘쭘히 있는 나에게 간단한 영어로 다시 설명해 준다. 자전거의 공기주입구 부품이 마모되어 공기가 들어가지 않아 교체가 필요하다. 교체하겠느냐는 말이다. 역시나 일관성 있게 무표정하다. 비용을 물어보니 우리 돈으로 3300원. 힐끗 부품을 보니 낡아도 심하게 낡았다. 대답은 무조건 예스. 젊은 청년은 나의 대답을 듣자마자 다시 그 무표정한 얼굴로 자전거를 번쩍 들어 올려 안으로 들어간다. 그리고 무심하고 친절하게 앞바퀴, 뒷바퀴의 낡은 부품을 모두 갈아준다. 공기를 주입시키고 잘 들어갔는지 확인까지 시켜준다. 계산까지 완료하는데 5분이 걸리지 않았다.
글쎄, 고작 부품하나 가는 게 뭐라고 이럴일일까. 솔직히 별거 아니었다. 하지만 문제는 그 별거아닌게 나에게는 엄청나게 큰 별거였다는 게 별거였다. 혼자 엉뚱한 곳에서 삽질하고 있는 거 보면 말 다했지 않는가. 젊은 청년이 보면서 얼마나 황당했을까?
그 청년이 특별히 친절하거나 엄청난 관심을 가지고 대한 것도 아니다. 하지만 덤덤하게 나의 문제를 해결해 주는 그 담백간결함이 어찌나 황홀하고 고맙던지.....
잠깐 그 친구의 얼굴이 손흥민과 겹쳐 보였던 건 착각이 아니라 사실이었을 수도 있다.(살짝 닮긴 했다)
이토록 사소한 친절에 난 그날 하루종일 감동을 먹고 그 감동에 절여 지냈다.
이토록 사소한 친절이 이래서 중요하구나.... 이토록 사소한데 이토록 감동을 주다니...
클레어 키건이 이처럼 사소한 것들의 중요성을 말하고자 했다면, 나는 이렇게 말하고 싶다.
이처럼 사소한 친절도 꽤나 중요합니다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