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글쓰는 망고 Jun 26. 2022

* 불편한 후배

회사생활 소소한 이야기

기본적으로 난 ‘기버’(giver) 성향이다. 받는 것보다 주는 것이 마음 편안하고 만족감을 느낀다. 대학교 시절 선배가 후배들에게 밥을 사주고, 후배는 더 어린 후배들에게 밥 사던 습관이 베어져 회사에 와서도 후배들에겐 얻어먹지 않았다.    

  

맞벌이하다 보니 외벌이 보단 크게 생활에 어려움이 있는 것도 아니고, 기본적으로 몸속에 허세 유전자가 장착되어 있기에 이 습관은 굉장히 오랫동안 지속되었고, 이를 선․후배 간의 ‘정’이라 여기며 지내왔다.      



    

40대가 되어 회사생활에 어느 정도 짬이 생기고 여러 일을 겪다 보니 이런 생활 방식은 점차 바뀌었다. 또한 월급은 그대로인데, 물가는 굉장히 올라 요즘 둘이서 점심 한번 먹으면 2~3만 원은 기본이고 아이들도 고학년이 되니 학원비도 만만치 않아졌다.      


가장 결정적인 계기는 어느 순간부터 후배들에게 사주는 밥값, 커피값이 아깝다는 생각이 들었다. 

물론 윗사람이, 더 많이 버는 사람이 밥이나 커피를 사는 게 옳다는 생각은 아직 그대로이다. 하지만 그게 당연시되어 버리고 더 이상 고마움을 느끼지도 않으며, 굳이 바라지도 않는 후배들에게 ‘이게 무슨 소용인가?’ 싶은 생각이 들면서 후배들과는 마음속 거리를 두기로 했다.

 




내 앞에서는 ‘차장님’이라 부르면서 바로 옆자리 후배에게 내 호칭을 ‘X차장’이라 하는데 (문제는 나에게도 다 들리는 것이다.) 왜 ‘님’이라는 호칭을 부르지 않냐고 따지기 애매한 상황도 있고, 업무상 문제가 있어 한마디 하면 바로 자리에 앉아 연신 메신저를 두드리기도 하는 후배가 있다. (이 부분은 마치 동료에게 내 욕을 하는 것 같아 찜찜하다)      


‘~씨’라 부르면 대부분 후배는 내 자리로 오거나 바로 대답하는데, 이 친구는 고개도 돌리지 않고 들릴 듯 말 듯 작은 목소리로 대답만 하는 상황에 마음속으론 부글부글한다. 이 모든 걸 지적할 수 없어 참고 있다가 결국 가장 신경 쓰이는 부분을 이야기했다.      


“다른 사람들 앞에서 선배인 나에게 ‘X차장’이라 부르는 게 맞는 어법인가?” 그랬더니 한참 눈을 깜빡이다 가까스로 생각해낸 건지 아님, 무엇이 잘못되었는지 몰라서 그랬던 건지 그 친구가 하는 말, “팀장님 앞에서 그렇게 부르던 것이 습관이 되어 그랬습니다.”      


물론 그 상황을 그냥 넘어갈 수도 있었지만, 자꾸만 신경 쓰이고 거슬리는 상황이 싫었고, 말하지 않고 속에만 담아두면 같이 진행하는 업무에도 지장을 줄 것만 같았기에 이야기했다. 앞으론 바른 호칭과 어법으로 부르라고. 특히 내가 잘 들리는 상황에서는.      


가끔 ‘내가 꼰대인가?’라는 생각이 들 때도 있다. 내가 꼰대라 이런 상황이 불편한 건가? 하지만 그렇지 않은 다른 후배들을 볼 때면 아무리 MZ세대라 해도 이건 아닌 것 같다. (예상했겠지만 위에서 언급한 사례는 모두 동일인이다.) 




내 맘속엔 좋은 선배, 좋은 사람이 되고자 하는 욕구가 있다. ‘상대방에게 되도록 싫은 소리는 하지 말자’ 하고 다짐하기도 하고, ‘성인이니 알아서 하겠지’라는 마음도 있어 될 수 있으면 모든 후배를 똑같이 대하려 노력하고, 때론 불편한 후배를 더 잘 대해주기도 했다. 하지만 선을 점점 넘어서고 내 마음속 평온을 깨트리고 있어 어느샌가 그 후배는 불편하고 거슬리는 사람이 되었다.           


모든 사람이 나를 좋아할 수는 없다는 걸 잘 알고 있으며, 나 또한 후배인 시절이 있었기에 후배들의 마음을 모르는 것도 아니다.      


하지만 존중하는 법을 모르는 사람에게, 나의 시간과 감정을 소모하면서까지 가르쳐 줄 만큼 내 삶이 여유롭지도 남들에게 애정이 있는 것도 아니다. 중요하지도 않은 사람 때문에 소중한 감정, 에너지, 시간을 낭비하지 말자 다짐하며 앞으론 무시하기로 했다.      


후배들이라 무조건 똑같이 대하며 지내지 말고 무례한 사람보다는 예의 있고, 나와 잘 맞는 후배를 더 챙겨주고 아껴주기로 했다. 내가 라인을 형성할 만큼 높은 위치에 있는 것도 아니지만, 왜 라인이 생기고 내 사람을 좋은 위치에 배치하려는 지도 알겠다.           

<예능 '무한도전' 장면 중 일부>


또한 회사 내 인간관계에 대해 적정한 선을 유지하자는 마음속 다짐도 다시 한번 되뇌어본다.      


‘내가 잘 대해 준 만큼 나 또한 존중받겠지’라는 마음을 품고 지내면 다른 사람에게 기대하게 되고, 그로 인해 실망하고 불편한 관계가 형성되어 마음속 평정심이 깨지는 상태도 영 거슬린다.           


무시하고 내 안에 집중하련다.

내 할 일 잘하다 보면 따라올 사람은 따라오게 되어 있고, 그런 사람들만 챙기며 지내기에도 시간은 모자랄 테니 말이다. 

이전 05화 * 회사생활을 버티게 해주는 소소한 것들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