빈 뜨락...
추풍낙엽(秋風落葉)
- 김 중 근
푸른 하늘을 꿈꾸던 먼 산은 서릿발로 벌겋게 달아올라 숲속 가득 붉은 단풍이 가득하고, 눈부시게 희고 가을 향기 짙은 억새풀 대궁이 가슴 저미는 찬 바람에 하늘거리니 문득 알 수 없는 허전함이 뿌유옇게 묻어난다. 이 찬 바람이 불어, 저 산 너머 어느 아득한 하늘에서 보내온 서릿발이 가을걷이 들판 위에 하얗게 내릴텐데....떠들썩하던 숲속 단풍과 여울목 억새 풀도 빛이 바래 나뒹굴고 떨어져 겨울을 재촉하겠지.....어느새 숲속 길 어둠을 불러오는 석양(夕陽)은 지는 해를 가지 끝에 걸어놓고 빠르게 저편 넘어 시린 달빛 속으로 쏜살같이 달려간다....
빈 시간들이 가로 지르던 가을 속에서 귀뚜라미 울어다주는 애수(哀愁)의 소야곡(消夜曲)은 청춘(靑春)의 한 시절을 다시 손꼽아 돌아보게된다. 한 밤중 아직 끊어지지 않은 소리 한 가닥에 외로움 가득 안겨오는데, 내 마음을 흔들어대는 그리움의 그림자가 가슴에 잠간씩 머물다 떠난 사람들에게 까지 길게 드리운다. 노을 속에 붉게 타는 해와 같은 사람이 있는가하면 나를 할퀴고 뜯어서 마음에 생채기를 만들었던 사람들도 있었다.
내 마음 닿는 곳 모두 또 다른 외로움을 들먹인다....한 청춘(靑春)이 엊그제 같았는데 이제, 세월의 잔기침 소리에도, 앞 뜰에 서있는 나무는 햇살 기우는 언덕의 무지개처럼 고운 빛으로 곱게 채색되어 오신 단풍잎들 마구 툭툭 떨구어낸다. 내 마음 닿는 것 모두 뒹굴다 부서지고 구멍이 나서 찢긴 추한 이파리도 바람 부는 대로 이리저리 방황한다. 세상을 방황(彷徨)하고 오가는 발길에 치이다 모두 불태울 것 같았던 단풍잎!.. 바람 부는 뜨락에 한철의 영화(榮華) 우수수 떨어지며 지난 날을 자꾸 돌아보게된다. 바람이 불고 낙엽질 때 마다 내 마음 깊은 곳까지 침잠(沈潛)된 눈물에 달빛까지 시리다. 시린 달빛은 푸른 달빛을 다 일으켜 세워 지독한 외로움을 파내 고독(孤獨)의 한 가운데 있게하는데 마음을 추스르기 어렵다.
고독은 굳이 따져보면 허전함과도 닮아 있다. 그래서 차츰 시들어서 낙엽이 지는 것을 보면 둥근달 하나 가득했던 빈 뜨락이 더욱 서글프기만 하다. 간절한 소망 변변히 이루지못하고 아무런 대책 없이 하루하루를 바라보다 떨어지고 죽어가는 낙엽이다. 낙엽 같이 하루하루 죽어가는 이 가을이 슬프다. 무성히 많았던 잎사귀들이 다지고 떨어지면 마지막 이파리는 처절한 고독 속에 나뒹굴고 떨어져 겨울을 재촉하겠지...
푸른 가을 하늘을 이고 깨끗한 공기로 얼굴을 씻어내던 가을 바람이 어느덧 너무 시려온다.
하루 아침 찬 서리에 낙엽지듯 머물고 싶어도 나의 하루하루는 그렇게 떨어지고 짐이 벌써 시려온다.
- 2024년 11월 낙엽 지는 어느 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