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 연

신뢰와 믿음

by 김중근

인 연


- 김 중 근

기다림이 있어 파란 하늘을 환하게 느끼게하는 사람, 길을 걷다 문득 생각나는 사람, 갑자기 생각나 느닷없이 만나고 싶은 사람, 눈을 감고 걸어도 지워지지 않는 사람으로 눈을 감을수록 더욱 선명한 그런 사람, 칠흙같이 어둡기만한 내삶에 환한 등불로 다가오는 사람들이 모두가 사랑하는 사람과 좋은 사람들의 공통된 느낌들이고 나와 관련된 인연들이다. 그런데 누군가를 만나고 헤어진다는 것은 살면서 필연이요 우연이기도 하다. 그중에 만나서 좋은 인연이 있고 만나지 말았어야 할 악연(惡緣)도 있다. 혹자는 인연은 만들어 가는 것이라고 하는 이들도 있고 그렇지 않다고 생각하는 이들도 있다. 우리들의 인연 중에도 좋은 인연과 악연도 있으리라...


오늘은 나와 관련된 교우(敎友)를 중심으로 기술코자한다. 생각의 차이에 따라서 견해는 다르겠지만 개인적으로 인연은 억지로 만들어지는 것이 아니라고 생각한다. 불가에서 “인연이란 잠자리 날개가 바위에 스쳐 그 바위가 눈꽃처럼 하얀 가루가 될 즈음 그때서야 한 번 찾아오는 것, 그것이 바로 인연”이라고 했다. 나무와 구름 사이 바다와 섬 사이 그리고 사람과 사람 사이에는 수 천 수 만번의 애닯고 쓰라린 잠자리 날개짓이 숨 쉬고 있다고도 했다. 인연은 서리처럼 겨울 담장을 조용히 넘어오기에 한 겨울에도 마음의 문을 활짝 열어 놓아야 한다고도 했다. 잠자리 날개처럼 부르르 떨며 천 년에나 한 번 마주칠 인연인 것처럼 인연이란 말은 아무때나 아무에게나 함부로 할 수 있는 말이 아니다. 내 고통을 이해하고 슬픔을 같이 나눌 수 있는 사람, 즐거울 때나 기쁠 때나 즐거움과 기쁨을 같이 공유할 수 있는 사람. 진실한 마음으로 믿고 의지하며 모든걸 다 내주어도 아깝지 않은 사람들이야 말로 좋은 인연인 것이다.

그러나 사람들이 너무도 쉽게 만나고 너무도 쉽게 헤어지는 모습들은 실망스럽기 이를데 없다. 사람을 만나고 헤어지면서 수없는 연륜(年輪)을 돌고 돌았지만 남는 끝에는 서로 극복할 수 없는 상처를 남기며 되돌이 킬 수 없는 아픔과 허탈함에 사람을 만나는 일이 두렵고 쉽지 않은 터였다. 그래서 혼자일 때가 더 많아지고 혼자임을 자처하였던 터였다. 어차피 홀로 가는 이 세상....이 세상 아무도 필요 없을 사람이니 항상 혼자라고만 생각했다. 왜냐하면 스쳐 지나가는 많고 많은 사람들이 모두 다 인연은 아니라고 생각되는 어느 순간 사람 만나기가 두려워지기 시작했고 그 만남의 의미도 순수하질 못했다. 마음 주기가 척박하고 힘든 이 세상에서 만남도 늘 자기 이익에만 우선하고 아전인수격(我田引水格)으로 대하는 모습들 속에 사는 모습을 보면서 나는 광야에 홀로 떨어져 사는 느낌이었다. 그만큼 내마음을 모두 내보일 수 있는 사람을 만나기가 쉽지 않은 것이 요즈음 현실이다. 지금 이 지구에서 내 목숨같이 아껴줄 진정한 우정은 있는 것인지? 365일 지구상에 떠있는 해와 달같이 한결같은 믿음을 줄 이웃은 존재하는지? 마더 데레사와 같은 숭고한 사랑은 있는 것인지?.......자문자답(自問自答)해보지만 그런 문제는 상대방에게 아낌없이 다 내보일 수 있는 사람이 있는가? 없는가?의 문제(問題)이고 바로 그런 것이 인연이라고 결론 지을 수 밖에 없다.


종심(從心)의 나이에 옷깃만 스쳐도 인연이라 했는데 돌이켜보면 내겐 내 마음 깊은 곳에 둥지를 틀고 앉아버린 사람들 몇 분이 계신다. 갈증을 느끼며 살던 내게 포기하지 않고 손을 내밀어준 대부님과 주위 교우(敎友)들이다. 그들이 잡아준 인연의 끈이 나를 새 삶의 눈을 뜨게 하였다. 늘 내 주위를 밝혀주는 교우들과 지우(知友)들의 숨결을 통해 혈육의 정보다 더 진한 사랑과 우정을 서로 함께 나누는 소중한 인연들이다. 때문에 나는 이 세상 누구보다 행복하다. 우리는 어쩌면 전생의 무거운 짐을 이제야 서로 줄여주며 살아가는 것인지도 모를 인연들을 가슴에 새겨본다. 우리 집의 대소사(大小事) 모든 일을 챙겨주시는 K대건 안드레아 사목 회장님 댁(宅)과 교우 여러분들, S 그레고리오 대부님 댁(宅)과 12형제님들, 그리고 S교감 선생님 댁(宅)과 B목사님 댁(宅)등 이밖에도 소중한 인연들의 관심과 무한한 사랑의 인연이 있어 내 지금 비록 힘들긴 하나 살아 갈 수 있는 믿음을 키울 수 있다. 아무 사심(私心)도 없이 교우(交友)와 지우(知友)로 만난 뜻 깊은 인연... 백 년 후 아니 천 년 후 이 분들과의 인연들은 어디서 무엇이 되어 만날지 모르겠지만, 민들레 꽃씨되어 야생초처럼 흩어져 서로를 더욱 그리워할지도 아니면 샘물에 고여있다가 흐르고 흘러 다시 꽃으로 피어날 지도 모른다.

역시 그 믿음은 ... “인연이다”라고 여기는 사람을 만났으므로....나에게 찾아 온 소중한 이 인연들을 유리 잔이 아닌 보석의 잔에 채워, 세상 속에서 힘들 때마다 내 마음의 어둠을 밝혀줄 등댓불 처럼 내 마음 깊은 둥지에 환히 밝히련다. 왠지모를 설움 때문에 눈물이 고이는 날, 왠지모를 향수 때문에 쓸쓸하고 고독이 넘치는 날, 가끔 휑하니 뚫린 가슴 때문에 독한 소주가 마시고 싶은 날, 말 한마디로 상처난 가슴 때문에 위로의 말 한마디가 그리운 날, 거짓이 없고, 솔직한 모습 있는 그 모습대로 내 마음의 둥지에서 신뢰와 믿음을 꺼내어 우정을 나누겠다. 나에게 준 커다란 인연을 소중하게 생각하면서 세상에서 가장 큰 마음으로 살련다.....

백 년후 우리들의 인연은 살아난 풀이거나 나무이거나 아니면 앙증맞은 발자국 예쁘게 그려내며 아름답게 사는 꽃사슴같이 서로 그리워하며 애태울지도 모를 인연일지도......


2023년 4월 26일

웅포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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