집이 울산이라서...

새벽 기차를 탑니다.

by 태화강고래

집이 울산인데 진료시간을 변경해 주실 수 있나요?
집이 울산인데 며칠 더 입원해도 될까요?
울산에서 오셨다고요?
몇 시 기차 타고 오신 거예요?


울산에서 분당까지 병원 진료를 다니기 시작하면서 자주 오가던 병원 의료진과 나와의 대화이다.


경기도에서 암 진단을 받고 지방으로 이사 갔지만, 수술도 치료도 다니던 병원에서 받기로 결정했다. 빅 5 병원(아산병원, 서울대병원, 삼성서울병원, 세브란스병원, 서울성모병원)을 선택하는 게 나을까 잠깐 고민했었다. SRT 수서역 앞에서 아산병원과 삼성병원 셔틀버스를 타면 병원 가기도 수월해 보였다. 그러나 결혼 후 경기도민으로 살면서 애 둘 낳고 키운 병원을 계속 다니기로 했다. 그렇게 울산에서 경기도로 암 치료를 하러 다녔다. 2019년 3월 따사로운 햇살도 살랑거리는 바람도 느끼지 못한 채 혼자 플랫폼에 서서 멍하니 답답한 내 처지만을 생각하며 우울해했다. 울산에 살아서 이 고생을 하는구나, 울산에서 서울을 자주 다니게 될 줄은 꿈에도 몰랐는데. 약 300KM 되는 거리를 1일 생활권이란 말을 실감하며 4년간 열심히 다녔다. 연간 최소 12번씩 다녔다. 길에 시간과 돈을 소비하다 못해 막 뿌리고 다녔다. 그저 내 맘 편하고 싶어서. 그런데 이것도 익숙해지니 고속철도 경부선을 탈 수 있는 울산에 살아서 그나마 다행이라고 스스로를 위로하게 되었다.

SRT 울산역에서 수서역까지 거리

보통 SRT 수서행 06:13분 기차를 탔다. 울산역에서 수서역까지 약 2시간가량이 걸린다. 가끔 05:23 기차, 어쩌다가 07:30기 차도 탔다. 봄 여름 가을 겨울 4계절 내내 새벽 기상이 쉽지 않았지만, 특히 겨울에 힘들었다. 가로등 불빛만 보이는 컴컴한 새벽에 길을 나서면 정말 혼자라는 게 실감 났다. 찬 공기 가득한 어두운 터널을 걸어가는 기분이 들었다. '오늘도 잘 다녀오자'라고 스스로 다독였다. 가끔 이른 아침의 상쾌한 공기에 마음이 설레며 여행자의 마음으로 가볍게 길을 나서기도 했다.


새벽에도, 울산역에는 꽤 많은 승객들이 모였다. 돈 벌러 가거나 돈 쓰러 가거나. 건강하거나 아프거나. 혼자 가거나 둘이 가거나. 이분법적으로 세상이 보였다. 그러면서, 나 같은 환자들을 심심찮게 알아볼 수 있었다. 동병상련이라는 말이 저절로 떠올랐다. 지친 얼굴에 모자를 쓰고, 겉옷을 챙겨 입고, 두툼한 가방을 멘 사람들의 목적지는 병원이다. 나도 그런 환자들 중 하나였다. 장거리 진료를 다니는 환자들에게 정해진 드레스코드가 있는 것처럼. 새벽에 같은 기차를 타고 갔다가 같은 기차를 타고 내려온 사람들도 꽤 있었다. 비록 서로 아는 체는 안 했지만. 나만 알아봤을 수도 있다. 주변 관찰하는 것을 좋아하니까. 지방에 살면서 서울로 치료를 받으러 다니는 사람들이 꽤 많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서울 빅 5 병원으로 환자가 몰리는 이유도 짐작이 갔다. 나도 그러고 있으니까... 사실, 수도권에 살다가 지방에 가보니 눈에 안 차는 것들이 눈에 가시처럼 불편했고, 의료분야에서 느껴지는 체감도는 컸다. 울산이 6대 광역시 중 하나였음에도.


새벽 기차를 타고 수서역에서 내려 다시 지하철과 마을버스를 타고 병원에 도착했다. 왕복 이동시간으로 따지면 7시간은 족히 걸렸다. 그러니 집을 나선김에 가능한 많은 일정을 소화하고 가야 했다. 하루에 몰아치기를 하려고 예약 날짜 잡을 때마다 "집이 울산이니 하루에 할 수 있게 해 주세요"를 입에 달고 살았다. "멀리서 오시네요. 찾아볼게요."라고 응답하며 담당자는 병원진료일정 퍼즐을 이리저리 맞춰 주었다. 이해받는 느낌이 들어 고마웠다. 치료 1년 차에는 3개월에 한 번씩 유방외과, 혈액종양내과, 산부인과에서 각각 채혈, CT, 초음파, MRI촬영을 했다. 검사 후 1주일 뒤 결과상담과 약 처방을 받았다. 림프절 절제로 오른팔 사용이 부자연스러워 재활의학과 진료와 유방 전절제로 인해 성형외과 진료도 같이 봤다. 여러 진료과를 한 번에 다녀야 해서 참 지쳤다. 새벽기차를 타고 와서 점심은 대강 때우고 오후 내내 병원에서 대기하는 경우가 대부분이었다. 그 피곤함과 지루함이란... 쇼핑몰도 아닌 종합병원에서 아픈 몸을 고쳐보겠다고 여기저기 다니는 내 모습에 서글픈 적도 많았다. 항상 혼자였기에 가끔은 보호자와 함께 있는 환자가 부럽기도 했다. 자식과 함께 온 노부모, 젊은 자식을 따라온 부모의 모습이 눈에 들어왔다. 하루종일 입 다물고 있다가 진료실에서 사무적인 간단한 말 몇 마디하고 집에 갈 때가 많았다. 입에서 단내가 났다. 내 입에서 나오는 말이 허공에 맴도는 느낌이 들기도 했다. 코로나로 마스크를 착용하면서부터는 집에 도착할 때까지 꼬박 12시간 동안 마스크를 쓴 적도 많아 머리는 지끈거리고, 입은 텁텁하고 냄새가 났다. 양치를 몇 번이고 해도 사라지지 않을 정도였다.


그 숱한 날들을 보내면서 기억에 남는 의료진이 있다. 재활의학과와 성형외과가 특별하다. 재활의학과 선생님은 항상 내 속의 고통과 마음을 아는 듯, 사근사근 말을 건네며 아픈 팔을 진단했다. 그녀의 부드러운 음성과 손길이 내 고된 하루를 어루만져주는 것 같아 진료실을 나서는 발걸음은 들어가기 전보다 가벼워졌다. 성형외과 선생님은 수술 전에도 지금까지도 환자인 내 입장을 배려하면서 진료하고, 처방한다. 진료과의 특성도 있겠지만, 흔히 말하는 의사에게 바라는 그런 따뜻한 인간미를 가진 분들임에 틀림없었다. 누구라도 필요할 때 그저 "힘들겠어요." "그렇겠네요."라는 두 마디 말만 해도 지친 마음을 위로해 줄 수 있다. 공감과 위로는 특별히 비싼 값을 치르지 않고도 주변 누구에게라도 보여줄 수 있는 인간의 타고난 능력임을 새삼 배웠다. 바쁘고 반복되는 진료일정에도 환자의 마음을 헤아릴 줄 아는 의료진에게 항상 감사한다.


울산발 마지막 병원 진료는 2022년 11월 21일이었다. 2023년 진료부터는 경기도에서 편히 다닐 수 있게 되었다. 겉보기에 그날은 11월의 어느 날일뿐, 특별한 하루는 아니었다. 그저 마음속으로 울산역에서 수서역, 그리고 병원으로 이어지는 익숙한 동선들을 의식하면서 걸어 다녔다. 수고한 나를 토닥거리고 장거리 병원기차여행도 끝이 났구나를 속으로 외쳤을 뿐이다. 마음 한 구석에서는 콩 알만큼의 아쉬움도 자리 잡고 있다는 게 신기했다. 처음에는 병원에 가야 해서 기차를 탔지만, 일상이 너무 단조롭게 느껴질 때면, 두 달에 한 번씩 서울행 기차를 타는 것도 나쁘지 않았다. 제삼자의 시선으로 서울과 경기도를 관찰할 수 있는 기회를 가진 나 홀로 여행자가 되기도 했으니까. 영원히 좋은 것도 영원히 나쁜 것도 없었다. 그저 내 마음이 이리저리 변했을 뿐이었다. 지난 4년간의 새벽기차 진료는 끝이 났지만, 그 시간 속을 채웠던 내 감정들은 영원히 내 일부로 자리 잡고 있다. 특별한 기차여행이었으니까. 그 또한 그렇게 지나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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