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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마트폰 없이 살 수 없어요!

아침 단상으로 글쓰기 습관 319

by 태화강고래

자동 버튼이라도 누른 듯, 옆에서 계속 외쳤다.


행복해요

행복해요

행복해요


곁에 있는 사람도 행복하게 만드는 그 말이 정말 입 밖으로 나오기 어려웠다. 가뭄에 단비처럼 해맑게 웃으며 쉴 새 없이 흘렀다. 매일 학교, 학원, 집을 도는 반복된 일상에 지겹고 힘들다는 말만 달고 살던 딸아이의 표정이 확 달라졌다. 단조로운 일상도 불만인데 지난 몇 달 동안 핸드폰까지 말썽이었다. 새 핸드폰에 이전 데이터를 옮긴 후, 남편은 딸에게 건네주었다. 새 제품답게 반질반질 빛이 나니 딸아이는 두 손으로 조심스럽게 받아 들었다.


열심히 할게요!

중학교 졸업할 때까지는 조심해서 잘 쓸게요!


지켜질 약속일지, 공허한 말뿐일지는 몰라도 그 순간만큼은 진심이 느껴졌다. 얼마나 좋을까? 보고 또 보고, 덜 봐야 할 핸드폰을 다시 쳐다보기 시작했다. 새것이라 그려려니 하고 있는데 남편이 옆에서 분위기를 깼다.


눈치껏 봐라. 엄마 화낸다!


사실 작년 겨울부터 와이파이가 자꾸 꺼진다는 말을 했다. 어느 날은 완전히 꺼져버렸다. 학원에서 집으로 달려오며 마치 큰 사고라도 난 듯 횡설수설했다.


엄마! 왜 이래요?

어떻게 해요?

와이파이가 안 돼요! 어떡해요!


울먹이며 학원에서 돌아온 딸아이는 절망적이었다. 심각했다. 하늘이 무너지면 저런 얼굴일까. 지금껏 살아온 12년 인생에서 걱정, 슬픔, 우울 같은 모든 부정적 감정이 뒤섞인 표정이었다. 스마트폰 없는 일상을 상상할 수 없으니 이해가 안 되는 것은 아니었다. 눈떠서 잘 때까지 손에서 놓지 않는 모습을 볼 때면 몰래 버리고 싶은 마음도 있었다. 아이의 핸드폰 사용을 제대로 통제하지 못한 내 무능력을 자책하던 시간들이 떠올랐다. 이 기회에 잠시 강제적 디톡스라도 해 볼까 하는 청개구리 같은 생각이 불쑥 튀어 오르기도 했다.


다음날 서비스센터에 갔다. 메인보드를 교체해야 하는데, 비용이 대략 21만 원이라는 말에 휴대폰을 새로 구입하는 게 나을 것 같았다. 핸드폰 없이 살아보면 어떨까라고 조심스레 물어볼 때마다 짜증과 불만만 늘어나 불행해질 것 같다고 서슴없이 대꾸했다. 이미 디지털 세상에 빠져있는 아이에게 단절을 강요하는 게 어쩌면 서로에게 고통만 줄 것 같았다. 짜증을 줄이라고 아무리 타일러도 만만한 엄마에게 짜증을 더 많이 쏟아낼 게 두려웠다. 숙제며 오락이며 일상에서 이미 스마트폰 맛을 들였으니 어쩔 수 없다는 변명만 떠올랐다. 그래도 당장 사주지는 않았다. 버틸 만큼 버티기로 했다. 와이파이가 안 되니 필요할 때는 데이터를 사용하라고 달랬고, 핸드폰 구입비에 부담을 느낀 딸도 바로 사달라고 조르지는 않았다. 신기하게도 조를 만도 한데, 조르지 않았다. 와이파이가 안 돼서 불편하다고는 했지만 불편함도 감수하며 생활하는데 익숙해진 듯했다. 그렇게 몇 달이 흐르고 얼마 전부터 전원도 아예 나가기 시작했다. 이제는 때가 왔구나 하며 아이의 두 번째 핸드폰을 샀다. 세팅을 마치고 잔소리 아닌 잔소리를 살짝 얹어 선물로 주었다.


엄마한테 짜증 내지 마!

조금이라도 나아지는 사람이 되도록 노력하자!


두 번째 핸드폰을 건네며 부모는 허공의 메아리처럼 사라질지라도 굴하지 않고 당부의 말을 보탰다. 그렇게 인생 두 번째 핸드폰을 손에 쥐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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