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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맛이 아니라니

아침 단상으로 글쓰기 습관 311

by 태화강고래

어린이날 연휴가 다가오며 이런저런 생각에 빠졌다. 가족들이 똘똘 뭉쳐 어디라도 가고 싶은 마음은 굴뚝같았지만 현실은 현실이었다. 멀리는 못 가니 가까운 곳으로 나가기로 하고 어떤 VIP보다도 모시기 힘든 아들을 집밖으로 끌어내기 위해 우선 먹을거리로 유혹했다.


해운대에서 먹은 육개장 먹으러 갈래?

부산으로요?

아니, 서울에도 똑같은 식당이 있어.

좋아요!


그렇게 우리 가족은 머릿속에서 기억하는 기품 있게 맛있는 육개장을 다시 먹을 생각에 설레었다. 차를 타고 완전체로 외출한 게 언제였던가 싶었다. 어디든 따라나섰던 아들이 혼자만의 시간을 즐기는 청소년이 된 후로는 밥 먹자고 사정하며 산다.


신사역 부근의 고층짜리 빌딩지하에 위치한 한우전문 식당은 해운대에서 봤던 낯익은 인테리어로 우리를 맞이했다. 식당 안에는 이미 지글지글 등심을 굽는 손님들이 자리를 잡고 앉아 있었다. 한편에 앉은 우리는 목적대로 육개장을 주문했다. 기대 만땅 당당하게 육개장을 먹으러 왔는데 왠지 모를 불편함이 슬며시 따라붙었다.


드디어 육개장이 모습을 드러냈다. 딸아이에게 뜨거운 국물을 덜어주며 남편과 아들에게 맛이 어떤지 성급히 물었다. 나란히 앉은 두 남자는 별말 없이 밥을 먹기만 했다. 직접 먹고 평가를 내려야 했다. 겉보기는 해운대에서 먹었던 육개장과 같은 빛깔이었다. 울산에 살 때 해운대에 두세 번 놀러 갔다. 첫 해 우연히 맛본 육개장은 그냥 맵기만 했던 이전에 먹었던 육개장과 달랐다. 감탄사를 내뱉으며 감동했다. 건더기가 든 보통의 빨간색 국물이었지만 좋은 고기를 듬뿍 넣고 은은하게 우려낸 깊은 맛이 느껴졌다. 그 맛을 기억한 우리는 다음번에도 다녀갔다. 서울에도 지점이 있길래 찾아왔는데 기대하던 맛이 아니었다.


100점 만점에 80-85점을 줄 정도 맛인 거 같아. 물탄 듯 약간 맹하면서 짜.

나도 그렇게 생각해. 그 맛은 아닌 거 같네.

전 아주 맛있는데요.


내가 먼저 말을 꺼내자 남편이 맞장구를 쳤다. 딸은 연신 맛있다며 집에서는 깨작거리는 밥을 잘 먹었다. 아들은 여전히 반응 없이 먹었다. 갑자기 섬세한 미각 소유자라도 된 듯 나도 모르게 평가하고 있었다.


기대가 커서 그 기대에 못 미쳤던 것일까. 아님 진짜 맛의 차이가 있었던 것일까. 다 같이 육개장을 먹었으니 미션은 완수했지만 아쉬움이 남았다. 동시에 해운대에 가야 할 이유를 찾고 말았다. 해운대 육개장을 먹고 싶다는 욕망이 살아나자 웃음이 나왔다. 그래 한 번 더 가보자! 거기는 그대로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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