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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월의 흔적

아침 단상으로 글쓰기 습관 330

by 태화강고래

지난 주말, 외가 쪽 결혼식에 다녀왔다. 거의 10년 만의 행사라 결혼식을 한다는 말을 들을 때부터 친척들의 얼굴이 하나둘씩 떠올랐다. 같이 놀던 언니 오빠부터 삼촌 숙모 이모까지. 가고 싶었다. 결혼식장에서나 볼 수 있을 추억 속 인물들을 잠깐이라도 만날 수 있을 것 같았다. 가고 싶은 마음은 굴뚝같으나 갈 수 없는 엄마대신 여동생과 함께 참석했다. 여동생은 아들을, 나는 딸을 데리고 토요일 오후 양재역 부근으로 갔다.


역시나 분주해 보이는 결혼식장안은 새 출발을 기대하는 신랑신부의 마음을 담아 놓은 듯 설렘과 활기가 느껴졌다. 동동 떠 있는 느낌이었다. 혼주인 사촌오빠부부에게 축하인사를 하고는 자연스럽게 아는 친척들을 찾아 사방으로 눈을 돌렸다. 예전의 어른들로 보였던 그 어른들, 삼촌, 숙모, 이모 같은 분들은 이제는 안 계셨다. 우리 엄마만 참석할 수 없었던 게 아니었다. 구수한 전라도 사투리로 반겨주시던 어른들은 더 이상 남쪽 땅끝에서부터 고속버스를 타고 서울로 올라오실 수 없었다. 조카도 아니고 조카자녀의 결혼식까지, 80대 노구의 몸을 끌고 오시기에는 무리였다는 것을 실감했다. 또한 참석할 수 있어도 조카자녀의 결혼까지 애써 찾아다니지는 않으신다는 시어머니 말씀도 떠올랐다. 70세가 훌쩍 넘은 부모세대가 가고 이제는 40-60대 자식세대가 허리가 되어 위아래 세대를 받치고 있었다. 그때의 언니오빠들은 50이 훌쩍 넘고 60이 넘기도 했으니 세대교체가 확실히 일어나긴 했다. 금 내 옆에 어색하게 서있는 딸의 모습은 언니오빠의 꼬마 아이들 모습 같았다. 거의 만나지 않은 탓에 그 아이들은 이제는 길에서 지나쳐도 서로를 알아챌 수 없는 20대의 젊은이로 성장해 있었다.


네가 누구라고? 많이 컸네! 잘 자랐네!


그 소리만 한참 주거니 받거니 하는데, 내심 기대하고 기다리던 반가운 얼굴이 쓱 나타났다.


인자하게 웃으시는 막내외삼촌이 숙모와 함께 오셨다. 두 아들이 모시고 온 삼촌도 세월이 비껴가지 않았다. 마지막으로 뵌 게 언제였더라. 나도 모르게 삼촌의 두 손을 잡았다. 참 다정한 분. 6남매 막내딸인 엄마의 세 오빠 중 막내오빠. 가족 중 가장 마음이 넉넉하신 삼촌은 막내 동생을 아끼셨다. 광주에서 교편을 잡고 계셨던 삼촌은 방학 때마다 손 편지로 우리 삼 남매에게 '선생님스러운' 덕담을 전해주셨다. 서예가로 활동하신 삼촌은 한석봉 같은 명필로 정성스럽게 글을 써서 우리에게 주셨다. 엄마의 부탁도 있었으리라 생각되지만 받아 들 때마다 놀라고 때로는 부러웠다. 삼촌을 아빠로 둔 오빠들이 부러웠다. 배움이 짧아 건설현장에서 밤낮으로 고생하신 아빠와 달리 삼촌은 고상하고 자상해 보였다. 선생님을 아빠로 뒀으니 오빠들은 얼마나 좋을까, 공부하는데 도움을 받으니 참 좋겠다 싶었다. 나중에 크고 나서야 오빠들이 말했다. 아빠가 선생님이라 알게 모르게 불만도 있었다고. 예나 지금이나 엄마의 안부를 가장 많이 묻고 서울에 올라오실 때마다 엄마를 보고 가셨다. 그러나 이번에는 그냥 내려가신다며 무척이나 미안해하셨다. 대신 엄마에게 전해달라며 엄마의 건강을 바라는 마음을 담은 몇 자를 적어 주셨다. 80세가 되신 삼촌의 얼굴을 이번만큼 자세히 들여다본 적이 없었다. 나도 그만큼 나이를 먹은 탓인지 울컥하는 마음이 들었다. 다음에는 언제 뵐 수 있을지 알 수 없다. 다가오는 결혼식이든, 장례식이든, 특별한 경조사가 있지 않고서는 친척들을 볼 수 있는 기회가 점점 줄어들고 있다. 피하고 싶은 친척도 있지만 가끔 보고 싶은 그 얼굴들을 볼 수 있는 시간들이 얼마만큼 남아 있는지 세월이 야속하기도 하다.


세월은 누구도 비껴가지 않는다는 그 흔한 말을 되새기며 돌아왔다. 엄마에게 결혼식장 이야기도 해 주고, 사진도 보여주면서 그날의 분위기를 전했다. 한 세대가 가고 다음 세대가, 또 다음 세대가 피어나고 있는 이 자연스러운 흐름이 어쩐지 쓸쓸하게 느껴지는 날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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