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컬 커피와 시애틀라이트

by 정서진

벌써 오월입니다. 비가 오고 나면 시애틀은 한층 더 싱그럽고 생생한 초록으로 가득합니다. 워싱턴 호수의 물빛이 오늘은 더 투명해졌어요. 오후에 수업 듣는 친구들과 유빌리지 근처 골목에 있는 ZOKA에 갔습니다. ZOKA 커피는 이곳 사람들이 모두 다 추천하는 유명한 로컬 커피입니다. 가게에 들어서니 전형적인 미국 대학가 분위기가 확 나더군요. 노트북을 하나씩 앞에 놓고 커피를 마시면서 리포트를 쓰거나 옆 사람과 토론을 하거나, 책을 읽거나 사색에 잠깁니다. 다들 나름의 봄 날을 한잔의 커피와 함께 즐기고 있습니다.


보통은 심플하게 아메리카노인데, 오늘은 드립 커피를 주문했습니다. 옆에 앉은 친구가 여기는 라테가 정말 환상적이라고 찡긋 눈짓을 합니다. 사람을 한 순간에 행복하게 만드는 맛이랍니다. 아, 이 한순간의 행복!! 오늘 마신 드립 커피는 고소하고 상큼하고 손끝까지 향기로워지는 맛이었습니다. 카페인 과다 섭취로 뇌는 지나치게 각성 상태인데 마음은 한없이 풀어집니다. 행복이란 게 이런 거군요.


여름이 가까워진 싱그러운 오후, 캐피털 힐 거리를 걷다가 에스프레소 비바체나 스텀프타운, 카페 비타를 만나게 되면 그 영화의 한 장면이 떠오릅니다. 커피를 앞에 놓고 자꾸 창 밖을 내다보면서 사랑하는 여자를 기다리는 남자. 그리고 깊은 가을날 오후 호기심 가득한 눈빛으로 카페 안을 바라보고 서 있는 당신의 뒷모습이 보입니다. 영화와 현실의 경계가 무너지는 곳이 바로 시애틀입니다. 그래서 오지 않을 당신을 기다리면서도 저는 ‘뼈아픈 후회’는 하지 않습니다.


긴 생머리를 질끈 묶은 여자는 선뜻 안으로 들어가지 못하고 문 앞에서 망설이고 있습니다. 아마도 쓸쓸한 여행자가 아닌 평범한 시애틀라이트가 되어 햇살과 바람이 빚어내는 나무의 그림자를 보고 싶기 때문일 겁니다. 카페에 들러 커피를 주문하고 사람들과 좋아하는 영화 이야기를 하고 어떤 원두를 살까 고민합니다. 이런 보통의 나날들이 어쩌면 다시는 오지 않을지도 모른다는 불안이 엄습해 오기도 하지만 이내 고개를 돌립니다. 그리고 오늘 하루치의 행복을 사서 집으로 돌아옵니다.


시애틀이 커피와 음악의 도시가 된 것은 자주 쏟아지는 비 때문이라고 하지요.

비 오는 어둑한 거리, 카페에 노란 불빛이 점점이 켜지고 사람들은 커피를 앞에 두고 부드러운 미소를 짓고 이내 깊은 상념에 빠집니다. 창 가 자리에 앉아 책을 읽다가 고개를 돌려 비 오는 거리를 보면 익숙한 감정들이 밀려옵니다. 그것은 우울이기도 하고 슬픔이기도 하고 그리움이기도 합니다. 커피 한 모금을 마시고 다시 책을 읽습니다. 카페인이 천천히 온몸에 번져가는 이 시간, 비로소 시애틀의 본질에 가 닿게 됩니다.




“나 잘하고 있는 걸까? 지금 이대로 괜찮은 걸까? 도대체 나는 어디로 가고 있는 걸까?”


푸르스름한 슬픔이 오래된 질문들을 끄집어내고 있을 때 문득 당신의 목소리가 들립니다.


“겁내지 말아요. 여전히 잘하고 있어요. 아니, 너무 멋지게 잘 해내고 있어요.”


저는 정말 잘하고 있는 걸까요? 이곳 시애틀에서의 하루하루가 너무 소중하고 행복한데, 지금 이대로도 정말 괜찮은 걸까요? 어느 순간 숨이 콱 막히면서 답답해질 때가 있습니다. 여전히 답을 모르겠고 끊임없이 존재를 괴롭히는 질문들은 이 아름다운 시간 속의 '나'를 피폐하게 합니다.


그 남자는 ‘있을 수 있는 일’과 ‘있을 수 없는 일’이 있다고 담담하게 말합니다. 그러니까 세상에는 있을 수 있는 일과 있을 수 없는 일 두 가지가 있는데 살다 보니 있을 수 있는 일들만 자꾸 늘어납니다. ‘있을 수 없는 일’이 어느 순간 ‘있을 수 있는 일’로 변하면서 저는 세상과 타협하고 나 자신에게 변명하고 마지막에는 ‘원래 다 이렇게 사는 거야’ 하면서 허탈하게 하루를 접습니다. 사실 요즘엔 이 모든 일들이 ‘어쩔 수 없는 일’로 뭉뚱그려집니다.


“어쩔 수가 없었습니다. 모든 게 다 제 탓입니다. 모든 게 어쩔 수 없었습니다.”


다른 사람이라면 연민으로 바라보겠지만 저는, 저에게는 그저 변명일 뿐입니다. 어쩔 수가 없었다고 먹먹하게 말하던 그 남자를 점점 닮아가는 저는 막다른 골목에 다다를 때마다 또 그렇게 바보처럼 서서 힘없이 말합니다. 이렇게 저를 둘러싼 모든 시간들이 어쩔 수 없는 일들로 가득 차게 되면 그때는 전 어떡하죠?


그래도..... 살아야겠죠?


앞으로 내가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 지금 잘 살고 있는 건지, 나를 나이게 하는 게 무엇인지 모르겠습니다. 한 때는 ‘질문에 답하는 사람’이었지만 지금은 ‘아무것도 모르는 사람’이 되어 버린 것 같습니다. 어떤 날은 시애틀 거리를 걷고 있는 누구에게라도 달려가 묻고 싶습니다.


비 오는 저녁, 머그잔 가득 담긴 커피를 마시며 그 노래를 듣습니다. 들을 때마다 마음이 뭉클해지는 노래. 한없이 가벼운 그 질문들에 나 자신조차 답하기 어려울 때 그는 이렇게 대답합니다.


There will be an answer.


Let it be