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물은 언제나 반짝이는 포장지에 싸여 오지 않는다
어느새 서아는 유치원을 졸업하고 초등학교 입학을 앞두게 되었다.
본격적인 학창생활을 위해 딸 가족은 다시 집으로 돌아왔고, 나는 그 변화를 맞이할 준비를 하고 있었다.
유치원 졸업식을 어떻게 치러야 할지 의논하던 중, 세상을 뒤흔드는 사건이 우리 앞에 다가왔다.
코로나19. 마치 중세의 흑사병처럼 모든 만남이 차단되고, 생활은 제약 속에 갇혔다.
딸과 사위는 재택근무에 들어갔다. 나는 한 발 물러서 이 사태를 지켜보고 있었다.
어느 날, 딸이 말했다.
“엄마, 이건 우리 모녀에게 준 큰 선물이에요.
서아는 우리가 돌볼게요. 이제 엄마는 마음껏 자유를 누리세요.”
그 말에 순간, 책임감에 눌려있던 내 가슴이 뻥 뚫린 듯 시원해졌다.
육아가 로망이었던 딸의 바람도 이뤄졌으니 축하할 일이었다.
하지만 그것도 잠시,
낯선 공허감이 엄습했다. 빈 둥지 증후군이라던가?
서아가 눈앞에서 사라진 듯 그리웠고 쓸모없이 버려진 듯한 외로움이 눈물을 자아냈다.
며칠을 허탈감 속에 보내곤, ‘이래선 안 되겠다’ 싶어 나는 디지털 세상에 발을 들였다.
'나중에 서아와 대화하려면 어느 정도는 알고 있어야겠지?'라는 생각도 있었다.
마침 온라인에선, 강의와 독서 모임이 우후죽순 생기고 있었고, 나는 호기심 반, 두려움 반으로 참여했다.
그곳에서 나는 충격적인 문구를 마주한다.
“배워서 남 주자.”
청기와쟁이 세대로 살아온 나에게 이 말은 큰 울림이 되었다.
경단녀들이 디지털 세상을 주도하며 세상을 바꿔가는 모습은 경이로웠다.
친구들을 만날 때마다 나는 흥분해서 말했다.
“세상이 달라졌어. 경단녀들이 세상을 뒤집어버릴 기세야!”
그 그룹은 작은 모임을 만들어 함께 공부하도록 이끌었다.
'나 같은 칠순이를 누가 받아줄까?' 망설이던 나에게 기회는 생각보다 빨리 찾아왔다.
‘그룹이 필요하신 분 손드세요’라는 글이 게시판에 올라왔다. 나는 용기 내어 답했다.
“저요!”
그 순간, 나는 새로운 세계로 성큼 들어선 것이다.
리더는 IT 전문가였고, 이제는 쉼 속에서 자신이 도울 수 있는 일을 찾는 중이라고 했다.
젊은 친구의 마음씀에 존경심이 일었다.
우리는 강의를 함께 듣고, 줌에서 모여 늦게까지 이야기를 나누었다.
DM이 뭔지 몰라 네이버 검색부터 했던 나에게,
친구들은 친절히 도 가르쳐 주었고, 나는 앱을 그림으로 그려가며 배웠다.
그렇게 시작된 디지털 공부는 나에게는 신세계였다.
인스타그램을 다시 살려 그림을 올리고, 앱을 배우고, 숙제를 하면서,
나는 신나는 "산수골지윤핼미"가 되었다.
리더는 나에게 ‘도깨비방망이’ 같았다.
그 후 우린 각자 팀을 만들기도 하고 다른 팀에 속해 활동하면서, 서로를 응원했다.
나는 또 다른 팀에서 여러 가지 플랫폼을 익혔다.
역시 그곳에서도 젊은 친구들의 도움이 컸다.
어느 날, 리더인 비비 님이 DM으로 말을 걸어왔다.
“우리 함께 놀아요.”
나는 단번에 “OK!”를 외쳤다.
우리는 카페에서 모이고, 미술관 투어와 도서관 투어를 하며, 이젠 만남이 on.off-line을 넘나들었다.
낯선 세계가 나의 생활 반경을 넓혀 주고 있었다.
그리고 어느 날, 우리는 2박 3일 제주여행을 떠났다.
공항에서 처음 만난 우리였지만, 이미 오랜 벗 같았다.
“혹시 매끼 밥 꼭 챙겨야 하는 분?” 리더가 묻자, 우리는 이구동성으로
“NO!”를 외쳤다.
'우째 이런 일이' 우린 서로 마주 보며 웃었다. 사뭇 다르면서 또 많이 닮아있는 우리였다.
그 자유롭고 명쾌한 답변 속에서 나는 젊음의 에너지를 보았다.
이렇게 만난 인연은 나를 브런치북까지 이끌었다.
그림이 버거워진 내 몸에 글이 새로운 날개가 되어주었다. 서툴고 기초적인 질문을 던질 때마다
부끄러웠지만, 나이는 좋은 방패였다.
그리고 무엇보다,
이들이 없었다면 나는 이미 깊은 우물에 빠져 허우적대고 있었을지도 모른다.
이보다 값진 선물이 또 어디 있을까.
나는 이제 안다. 선물은 언제나 반짝이는 포장지에 싸여 오지 않는다.
코로나19는 나를 가두었지만, 동시에 새로운 세상으로 데려다주었다.
그것은 분명, 내게 내려진 하늘의 선물이었다.
그 속에서 나는 새로운 친구를 얻고, 새로운 배움을 얻고, 또 다른 삶의 무대를 얻었다.
이 모임에서 만난 동료들과 함께 여행을 하고, 예술·문화 활동을 공유하며
삶의 시야가 점점 넓어졌다.
팬데믹이라는 제약 속에서도 새로운 사회적 관계와
자아 성장을 경험한 계기가 되었다.
코로나19가 내게 건넨 건 고립이 아니라 초대장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