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 확인사살 피할 수 없는 현실

작은 요양원 다시 시작된 나는 전이암 환자

by 산수골지윤핼미

퇴원 후 첫 진료 그리고 그 결과.



퇴원 후. 혈액내과 김교수님을 찾았다.

김교수님의 첫 말씀은 "팔이 많이 불편하시죠. 어디가 제일 아프세요?"였다


나는 "아니요 지금은 전혀 아프지 않은데, 작년과 올해 초 많이 아팠었지만

그것은 다 이유가 있는 아픔이었습니다.


여행 중 길 찾기 위해 계속 왼손에 핸드폰을 늘 들고 다녔고,

또 한 번은 욕실에서 나오다 미끄러져서 수납장에 왼쪽 견갑골 쪽을 세게 부딪쳤습니다."


김교수님은 다시 천천히 말씀을 이어가셨다.

“왼쪽의 견갑골 전이암은 오른쪽과 같은 호르몬성 암입니다. 다행이에요.


다만, 지금은 왼쪽의 작은 종양보다 뼈 전이가 더 커서 그쪽 치료가 우선입니다.”

나는 조심스레 물었다. “수술로 떼어내야 하는 거 아닌가요?”


교수님은 부드럽게 웃으며 고개를 저었다. “약으로도 충분합니다. 페마라와 표적항암제를 함께 씁니다.”

진료는 "처음엔 2주에 한번, 다음엔 한 달 그다음엔 세 달에 한 번으로 진행됩니다."


예후를 묻자, 교수님은 잠시 숨을 고르고 답했다.


“조심스럽지만… 5년에서 8년 정도 예상합니다. 하지만 그때쯤이면 또 신약이 나옵니다. 못 죽고 살아야죠.

어쩌면 지금 건강한 친구분들보다 더 오래 사실지도 몰라요.”


그 말은 무거웠지만, 동시에 포근한 위로였다.






본원으로 향한 발걸음


그러나 나는 본원 임교수를 꼭 만나고 싶었다.

언니가 이미 그분의 환자로, 현저한 결과를 이뤄냈기에 신뢰가 있었다.


임교수님은 꼼꼼했다. 직접 촉진을 하며 진행 상태를 짚어 주었고,

유전자 검사를 두 번이나 반복해 딸에게 물려줄 위험이 없음을 확인해 주셨다.


그 순간 나는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딸의 얼굴을 마주 보며 웃을 수 있음이 얼마나 다행인지.


“치료는 키스칼리와 페마라입니다. 약에 내성이 생기면 다른 약으로 바꿔가며,

평생 이 길을 가야 합니다.

완치는 없습니다.”

그 설명은 짧고 단호했지만, 동시에 분명한 길을 제시해 주셨다.


이후의 질문은 간호사께로 넘겨졌고,

약 복용에 주의할 점, 식이 요법은 각각 다른 교육 상담실에서 설명받았다.


우리는 항암제와 약이 주는 부작용에 대한 여러 가지 경우에 대비한 상비약을 한 보따리 끌어안고 돌아왔다.






나만의 작은 요양원


그날 이후, 화실 한쪽의 방은 나만의 작은 요양원이 되었다.

약봉지들이 한자리를 차지했고, 알람은 정해진 시간마다 울렸다.


주사는 이제 다리에 맞아야 했다. 오른쪽은 수술한 팔, 왼쪽은 병변이 생겼으니 선택지는 없었다.


아들은 내가 좋아하는 유제품과 간식을 방에서 몽땅 치워버렸다.

딸은 향 좋은 오일과 목욕용품, 소스와 조리기구등을 가져다주며 말했다.


“엄마, 이거 꼭 발라야 해요. 피부가 건조해질 테니 보습은 필수예요.

그리고 천천히 온몸에 발라주노라면,

기분도 좋아질 거예요.”


나는 매일 내 몸에 속삭인다.

“그동안 미안했어. 이제라도 이렇게 보살필 수 있어 다행이야.”

주부에서 환자로 위치가 바뀌었다.



이렇게 나만을 위한 시간이 주어졌다.

‘주부’의 자리에서 늘 “왜? 주부에겐 정년이 없는 걸까” 투덜거리던 내 말을 주님께서 들으셨을까?

이제 나는 오롯이 나만을 위한 시간을 선물 받았다.


완치될 수 없는 중증 암환자가 되었다는 사실은 분명 무겁다.

그러나 이번엔 예전처럼 절망에만 머물지 않는다.


주님의 하얀 옷자락.

그 모든 과정에 주님의 손길이 있었다고 믿는다.


창구에서 서류 전송이 불가능하다고 들었던 순간, 나는 맞은편 자리에서 주님의 하얀 옷자락을 보았다.

그리고 곧 “서류를 본원으로 직접 보내드렸습니다”라는 직원의 목소리가 들린다.


사람을 통해 길을 열어 주시는 주님. 그분의 디테일한 임재가 아니고서는 설명할 수 없는 순간 있었다.



다시 시작되는 길

나는 오늘도 알람 소리에 맞춰 약을 삼킨다.

'얼마나 독하면 약을 손으로 만지지 말라고...' 하면서 약을 만지게 되면 즉시 손을 씻으라고도 했다.

그 작은 동작 하나가 나를 살게 하고, 내일을 열어 준다.




다시 시작된 암환자 생활이지만,

이번에는 주님께서 예비하신 길 위에
오롯이 나 자신을 돌보는 시간을 선물 받았다.





"맹골해협, 관매도" watercolor on paper mixed media 72.7*72.7(c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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