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 키스칼리와의 첫 만남

주님께서 내리신 선물. 오늘.

by 산수골지윤핼미

나는 또다시 새로운 이름 하나와 마주하게 된다.



표적치료제 키스칼리.


단어만으로는 차갑고 낯설었지만, 이제 그것은 나의 일상과 운명을 함께하는 동반자가 되었다.

매일 같은 시간, 정해진 숫자의 알약을 삼키며 시작하는 하루. 나는 그것을 의식처럼 받아들인다.


벽에 빼곡히 붙어 있는 메모들.

“구내염 예방 가글, 하루 여섯 번.”

“설사 시 지사제 복용 순서.”

“햇볕 차단 필수. 자몽·석류·영양제 금지.”등등

마치 전쟁터로 떠나는 병사에게 주어진 전투 매뉴얼 같다.


나는 작은 증상 하나에도 곧바로 대응하는 긴장 속에,

알람 소리에 맞춰 하루를 이어갔다.

약을 삼킨 후 얼굴이 붉게 달아오르고, 어깨뼈 환부가 묵직하게 내려앉으면 “아, 또 시작되는구나” 속으로

중얼거렸다.


그중 가려움증은 유난히도 나를 괴롭혔다. 오심이 무서워 애초에 적극적으로 대비, 근절한 반면

이 녀석 앞에선 속수무책으로 오로지 약에 의존하며 당할 수밖에 없다.


식탁에는 삶은 고기와 달걀 그리고 수북한 야채샐러드, 작은 과일 몇 알이 올려져 있다.

식단은 완전히 달라져 있다.

전엔, 달고 크리미 한 그리고 빵을 주로 먹었다. 입은 달았지만 몸엔 독이 되었음을 이제야 안다.


이 식탁이, 내겐 부작용을 견디기 위한 방패이자, 생명을 붙잡아 주는 끈이다.


성가의 아름다운 화음


나는 성당으로 향했다. 미사 전 성가 연습이 있는 날이다.

성가의 아름다운 화음은 나를 포근히 감싸주고 내 마음을 고요한 평화 속으로 이끈다.


성가대석에 앉아 있는데, 역시 홍조는 얼굴을 달궜고 어깨의 통증은 팔까지 내려앉았다.


강론이 시작되자, 주체할 수 없는 눈물이 흘러내렸다.

그 말씀은 내 마음속 가장 깊은 곳을 건드렸다. 콕 집어 나를 향한 말씀 같았다.


늦은 점심을 먹고도 몸은 가볍지 않았다. 열탕에 몸을 담갔지만 통증은 그대로였고,

결국 전기장판을 뜨겁게 켜놓은 채 몸을 눕힌다.


타이레놀을 향한 손길을 접는다. 내 신장이 떠올랐고, 또한 이 통증마저 내가 견뎌내야 할 과정이라며

스스로를 다독였다.


작은 위안.


오픈이 한참 지난 어느 오후, 나는 사람이 붐비는 시간대를 피해 전시가 열리고 있는 갤러리에 들렀다.

조용한 가운데 내 그림 앞에 섰다.


며칠 전, 검사 결과라는 "확인사살"같은 잔혹한 말을 들은 뒤 광기처럼 몰두해 그려낸 작품이다.


그런데 이상하게도, 그 앞에 서니 작품이 나쁘지 않게 보인다.

오히려 사람들의 반응은 기대 이상으로 좋았고, 나는 그 안에서 작은 위안을 얻는다.


갤러리를 나오며 다이소에 들러 월동 준비에 들어갔다. 올해는 겨울이 매우 추울 거라는

예보가 있었기 때문이다.

장바구니에 물건을 담는 중 남편에게서 전화가 왔다. “또 입원했어?”

"입원"이라는 말에 가슴이 철렁 내려앉았다. 나는 퉁명스럽게 “아니, 장보고 있어”라고 대답하고

전화를 끊어버렸다.


이유 없는 눈물, 이유 없는 원망.


그 말속에는 원망이 담겨 있었다. 마치 내가 늘 병원에만 있는 사람처럼 취급받는 듯한 서러움이 올라왔다.

그 사이 이미 날이 많이 어두워져 있었다.


이를 모르고 있었던 나를 나무랐다. 남편은 어두워지니 걱정이 돼서 한 말이었을 텐데...

원망과 반성, 이 쳇바퀴는 이제는 내 일상이 되어 있다.


집에 돌아와 사 온 물건들을 정리하다가, 나는 갑자기 울음을 터뜨렸다.

요즘 자주 있는 현상이다.


아침에 눈을 뜨면 이유 없이 눈물이 흘러내리곤 했다. 아무런 억울함도, 원망도 없다고 말했지만,

아마도 내 깊은 속에서는 여전히 무언가가 끓어오르고 있나 보다.


나는 그 눈물조차 솔직하게 꺼내지 못하는 사람인지도 모른다.

원망을 풀어내는 것이 오히려 몸에는 좋을지도 모르는데, 나는 늘 억누르고 담담한 척을 한다.


줌 미팅 속 웃음 그리고 오열


그 밤 9시 줌 미팅이 잡혀 있었다. 마침 잘됐다 싶었다.

젊은 친구들에게 진행 중인 전시 초대도 하고, 여러 가지 신선한 이야기들을 나누며 웃는다.


이 순간만큼은 암이라는 존재를 잠시 잊는다.


그러나 대화가 끝나고 방을 정리하다 보면 또다시 오열이 터졌다.

웃음과 울음, 이 두 얼굴의 내가 하루에도 몇 번씩 교차한다.


새벽 네 시의 명료함


밤 11시까지 이어진 줌 미팅이 끝나도 나는 말똥말똥했다.

주변을 정리하고, 내일의 계획을 세우고, 냉동실의 고기를 꺼내 정리하다 보니 새벽 네 시였다.

그럼에도 두어 시간 자고 다시 일어나 무언가 글을 끄적이고 있다. '나 뭐 하는 거지?'

나는 내 안에서 이런 힘은 어디서 나오는 건지 알 수 없었다.


고마움과 열패감 사이


친구에게서 전화가 왔다.

“14일, 볼 수 있는 거지? 네가 잘 이겨내길 바라는 마음으로 기도했어. 음식도 해주고 싶은데…”


친구의 목소리는 따뜻했다. 솜씨 좋은 친구가 나와 다른 친구들을 집으로 초대했었다.


고마움과 그리움이 밀려왔지만, 동시에 열패감이 가슴을 스친다.

고맙다고 말했지만 결국은 가지 않았다. 몸이 지쳐 있다는 합리적인 이유를 대며.


건강함을 뿜어내는 그들 앞에서 난 쪼그라들고 있다.

친구들의 배려가 고마운 만큼, 그 고마움을 온전하게 받지 못하는 못난 내 모습이다.


나는 마음속으로 다짐한다.

'고마움을 제대로 알아차려야 스트레스에서 벗어날 수 있다.

받아들임은 곧 살아냄이다.'

다짐을 반복하지만 여전히 내 마음은 소란스럽다.


오늘 하루를 산다는 것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여전히 약을 삼키면서 나무늘보가 되어,

그저 어떤 부작용이 나를 덮칠지 모른다는 긴장 속에서, 오늘 하루를 산다.


마치 부작용이란 녀석을 기다리는 모양새다.

그러나 그것만으로도 충분했다. '나는 살아 있으니까.'


키스칼리와의 첫 만남.


이 녀석은 단순한 약이 아니라, 내 삶을 쥐락펴락하고 있다.

이 신약이 나오면서 뼈전이 환자들의 수명이 3~4 년 연장됐단다. 물론 더 사는 환자들도 있다.


임 교수님은 흘리듯 말씀하셨지만 난 순간 마음이 "쿵" 내려앉았다. 김교수님 말씀에 비하면 반토막난.

내 생명!


몸은 아프고 마음은 무너져 내리지만, 동시에 나는 다시 일어서고 있다.

약과 함께 흐르는 눈물, 그 눈물 사이에서 빛처럼 스며드는 고마움.


나는 오늘도 알약을 삼키며 속으로 되뇐다.

'주님께서 내리신 선물! "오늘" 열심히 살아내겠습니다.'







"굿. 모닝" watercolor on paper14.9*18.5(c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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