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우씨의 詩詩하게 살자(381)

제381편 : 김영남 시인의 '고년! 하면서 비가 내린다'

@. 오늘은 김영남 시인의 시를 배달합니다.


고년! 하면서 비가 내린다
김영남

비가 내린다.
떠난 그녀가 좋아하던 봄비가 내린다.
삼각지에 내리고, 노량진에 내리고, 내 창에도 내린다.

내 창에 내리는 비는 지금
고년! 미운 년! 몹쓸 년! 하면서 내린다.
머리끄덩이를 잡고 끌면서...... 길게 내린다.
비가 욕을 하면서 저렇게 내리는 것은
또 처음 본다.

비가 내린다 비가
을랑이 엄마, 내 유리창에만 유독 저주스럽게 내리는 이유를 아느냐?
모른다면 아는 척이라도 하며 저 내리는 비에게 박수를 쳐라.
박수 칠 기분이 아니라면 커튼이라도 좀 쳐라.
비가 내린다 비가.
불 켜고 있기에 좋은 비가 내린다.ㅈ
*내소사에서 사 온 촛불에 내리고, *모항 '호랑가시나무 찻집'에 내린다.

이제 비는 더 이상 내리지 않고
내 가슴속에서만 내린다.
피딱지를 뜯었다 붙였다 하면서 내린다.
재즈 음악으로도 다스리지 못할 비......
아니 재즈풍에 어울리는,
그녀가 몸을 흔들면서 내린다.
길게 신음하면서 내린다.
- [푸른 밤의 여로] (2006년)

*. 내소사 : 전북 부안군 진서면 석포리에 있는 절
*. 모항 : 전북 부안군 변산면 모항리

#. 김영남 시인(1957년생) : 전남 장흥 출신으로 1997년 [세계일보] 신춘문예를 통해 등단. 중앙대 기획조정실에 근무하다가 퇴직한 뒤, 현재 세종시에서 삼계탕집을 운영.




<함께 나누기>

비가 이리도 그리운 적은 별로 없었던 것 같습니다. 전에는 밭작물이 타들어가 안타까웠는데, 이번에는 그칠 줄 모르는 불볕더위 때문입니다.

그저께부터 오후에 소나기가 내린다는 예보를 사흘 드리 받았건만 단 한 방울도 오지 않았습니다. 병아리 오줌만큼이라고 살짝 뿌리고 지나갔으면 했는데... 그러면 물 주지 않아도 밭작물이 목축임이라도 할 텐데...

오늘은 김영남 시인 편이라 그분의 시 가운데 비를 글감으로 쓴 작품이 있나 하여 찾다 보니 한 편이 눈에 띄어 잡았습니다.

새 우는 소리는 듣는 이의 마음에 따라 다르게 들린답니다.
‘소쩍! 소쩍!’ 운다고 하여 소쩍새란 이름이 붙은 새는, 울음소리가 두 가지로 들립니다. “솥탱! 솥탱!”과 “솥 적다! 솥 적다!”로. “솥탱! 솥탱!” 하고 들리면 ‘솥이 텅텅(탱탱) 비었다’로 흉년이 든다 하고, “솥 적다! 솥 적다!”로 들리면 솥이 적으니 큰 솥을 마련하라는 뜻이니 풍년이 든다고 합니다.

오늘 시는 뭐 깊게 생각하지 않아도 쉬 읽힙니다. 비를 몹시도 좋아했던 여인을 사랑했는데, 그녀가 어떤 이유로 화자를 버리고 떠났는가 봅니다. 그녀와의 사랑이 지속되고 있을 때는 빗소리가 그리도 고울 수 없었는데, 그녀가 떠나고 나니까 그리도 좋아한 빗소리가 욕으로 들립니다.
‘마누라가 이쁘면 처가 말뚝 보고도 절한다.’라는 속담이 있습니다만 그 반대입니다. 그녀가 미우니까 그녀가 좋아한 비조차 미워졌습니다. 그녀가 (나를 버리고 가서) 미운데 하필 눈물을 연상케 하는 비가 내립니다. 비는 나의 감정을 헤아릴 필요가 하등 없건만 그저 밉습니다. 그녀가 좋아했다는 단 한 가지 이유로.

“고년! 미운 년! 몹쓸 년!”


무슨 소린가를 내뱉으며 신음하면서 내리는 비, 그 비를 바라보며 미칠 것 같은 그리움을 달래려는 화자에겐 욕으로밖에 들리지 않습니다. 빗소리에서 이런 욕을 듣는다? 참 신기합니다. 자기를 버리고 간 ‘고년’이 얼마나 미웠을까요? 어쩌면 더 심한 욕도 가능했을 겁니다.

“이제 비는 더 이상 내리지 않고 / 내 가슴속에서만 내린다. / 피딱지를 뜯었다 붙였다 하면서 내린다.”


진짜 비는 내리지 않고 피에 젖은 비가 화자의 가슴속에 내립니다. 참 처절합니다. 어쩌면 그럴지도 모르겠습니다. 비가 오는 순간 시간은 멈춰버리니까요. 그녀와 주고받았던 말, 그녀의 긴 머리칼, 그녀의 보조개에 어리던 미소, 사랑한다고 속삭이던 그녀의 목소리. 그녀의 모든 게 빗줄기를 타고 무심히 내립니다.


그녀가 보고 싶다는 말 대신 ‘고년’이라 욕합니다. 보고파서 그리워서 더 이상 떠오르는 영상을 지울 수 없어 그녀는 ‘고년’이 됩니다. 그녀가 ‘고년’이 될 즈음에 비는 피에 젖고 슬픔만 남습니다. 직설적으로는 ‘고년이, 고 나쁜 년이 나를 버리고 갔다.’이지만, 달리 보면 ‘그녀가 미치도록 보고 싶다.’라는 역설적 표현입니다.

오늘 누구에게 욕을 하면 비가 내릴는지요. 그렇다면 마음껏 하늘 향해 욕을 해보련만. 물 주지 않아도 되련만.

*. 그녀가 나를 버리고 갔더라도 밥은 먹고살아야 합니다. 문득 「밥만 잘 먹더라」란 노래가 떠오르면서 거기 한 노랫말이 생생해집니다.
“사랑이 흘러가도 ~~~ 한순간뿐이더라, 밥만 잘 먹더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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