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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교(大巧)는 약졸(若拙)이다

나이 일흔에 풀어놓는 소소한 이야기(제30편)

* 대교(大巧)는 약졸(若拙)이다 *



요즘 짬이 나면 [노자도덕경]을 다시 펼쳐본다. 눈이 나빠 인쇄된 책은 읽기 힘드나 내가 예전 마음에 드는 구절만 뽑아 필사한 큰 글씨로 된 글은 읽을 수 있으니 다행이랄까. 불볕더위를 이겨내는 한 방법이 책 읽기라면 이해가 될까?


[도덕경]은 처음부터 읽어도 되고 가운데 아무 쪽에서부터 시작해도 된다. 필사한 노트를 뒤지다 제45장 한 부분이 들어온다.

“大直若屈(대직약굴), 大巧若拙(대교약졸), 大辯若訥(대변약눌)”

이를 풀이하면, '대직약굴'은 완전히 곧은 것은 오히려 약간 굽은 듯이 보이고, '대교약졸'은 뛰어난 솜씨는 오히려 서투른 듯이 보이고, '대변약눌'은 뛰어난 말솜씨는 오히려 어눌한 듯이 보인다는 뜻이다.




장승 가운데 '벅수'가 있다. 장승은 나무로 만드는데 아주 드물게 돌로 만든 장승이 있으니 그게 바로 벅수다. 경상도에서는 아주 바보 같은 짓을 했을 때 “에이, 벅수 같은 놈!” 하고 말한다. 나 어릴 때 울엄마에게 상시로 듣던 말이다.

흔히 ‘멍하니 장승처럼 눈치 없이 그냥 서 있어서’ 그런 표현을 한다는데 그보다는 다른 데서 의미를 찾을 수 있다. 즉 벅수는 나무 아닌 돌로 만들기에 나무로 만든 장승보다 그 모양이 세련되지 못하다. (전문 석수장이가 아닌 동네 주민이 만든 돌장승이 대부분이기 때문)

당연하지 않은가. 나무야 칼로 쓱쓱 다듬으면 그 모양을 만들어내기가 수월하지만 돌은 어찌 그런가. 그러니 생긴 모양 자체가 좀 바보스럽고 멍청해 보인다. 헌데 나는 돌장승이 목장승보다 더 좋다.



(울산 언양읍 벅수 - [울산저널] 2020. 11. 19)



목장승은 온갖 기교를 부릴 수 있다. 성난 얼굴, 웃는 얼굴, 인자한 얼굴 사나운 얼굴도 가능하다. 게다가 눈썹은 검게, 입술은 벌겋게 하는 등 빛깔도 넣을 수 있고, 크기도 주문자의 요구에 맞출 수 있다. 헌데 벅수는 그렇지 않다. 대충 만든다. 얼굴 모양만 보면 웃는지, 화내는 건지, 인자한지, 사나운지 알 수 없다. 심지어 그냥 밋밋하게 몸뚱이만 대충 만들고는 아래위를 표시하려 새끼줄로 가운데를 질끈 묶어 목 위와 아래만 분리해놓은 것도 있다.

그러다 보니 벅수를 처음 본 사람들은 이게 장승이냐고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기도 한다. 목장승에 익숙한 사람들 눈에는 벅수가 형편없어 보이니까. 허나 벅수에게는 오롯이 그 마을 사람들의 마음이 담겨 있다. 한 사람이 아니라 모두 모여 정(釘)을 두드리면서 자기네들 마을을 지켜 달라는 마음을 모아 거기에 담는다. 그러니 벅수가 생김새를 떠나 만드는 이의 심성이 담기니 어찌 사랑스럽지 않으랴.


(대전시 대덕구 법동 돌장승 - 구글 이미지에서)



내 주민등록이 담겨 있는 경주 하면 가장 먼저 떠오르는 문화재가 불국사요, 불국사 하면 또 다보탑과 석가탑이다. 아마도 우리나라 성인이라면 불국사에 한 번 이상 가봤을 테니 두 탑도 다 봤을 게다. 하면 거기 가서 어느 탑 앞에 더 오래 머물러 있는가?

나의 경험을 꼭 이야기하지 않더라도 거기 가보면 사람들이 석가탑보다는 다보탑에 훨씬 오래 시선이 머묾을 볼 수 있으리라. 어쩜 너무도 당연하리라. 다보탑의 정교한 아름다움에 비하면 석가탑은 조금 촌스럽게 보이니 말이다. 특히 사진 찍으면 다보탑 쪽이 더 이쁘게 나오니까.


그런데 다보탑보다는 석가탑을 글로 표현한 문학 작품이 더 많다. (현진건의 소설 「무영탑」, 신동엽의 시 「아사녀」 등) 왜 그럴까? 어떤 이는 다보탑엔 얽힌 전설은 없는데 석가탑에는 전설이 있기 때문이라고 한다.


(왼쪽 다보탑, 오른쪽 석가탑 - 구글 이미지에서)


언뜻 들으면 일리가 있다. 허나 이런 말로 단정 짓기에는 뭔가 부족한 면이 남는다. 그게 무얼까? 바로 석가탑의 ‘기교 없음’ 때문이다. 작가에게는 치장이 많으면 덧붙일 내용이 적다. 거꾸로 치장이 적으면 덧붙일 내용이 많으니 석가탑이 선택되는 이유가 그것이리라.


[빈처]로 유명한 현진건은 「불국사 기행」이란 수필에서,

“다보탑을 비단과 보석으로 꾸밀 대로 꾸민 진한 화장을 한 미인에 견준다면, 석가탑은 수수하게 차린 소박하게 화장을 한 미인이라 할까?”라 했다. 달리 말하면, 다보탑은 미인대회에 나갈 미인이요, 석가탑은 그냥 시골에 사는 아가씨란 뜻이다. 정말 작가의 비유가 잘 어울린다고 할 정도로 석가탑은 좀 밋밋해 보이기까지 하다.


그러니 ‘기교 없음’보다 '기교 있음'이 더 낫다는데 한 표 던질 사람이 훨씬 더 많으리라. 그러나 나는 그 ‘기교 없음’이 좋다. 내 외모가 남의 눈길을 끌지 못함도 이유겠지만 군더더기를 싫어하는 성격 탓이다.


(석가탑 - Culture & Traveiing, 2011.9. 22)



고려 예종 때 당대 최고 문장가인 김황원이 평양 부벽루에서 대동강에 올라 주변 절경을 내려다보며 한시를 짓다가,

“長城一面溶溶水, 大野東頭點點山

(장성의 한쪽을 끼고 넘실넘실 물이 흘러가고, 너른 벌 동쪽 가엔 점점이 산이더라.)”

이 두 줄만 쓰고는 너무 아름다운 경치를 더 이상 표현할 수 없어 그냥 울며 내려왔다는 일화가 있다. 한시 칠언절구(7자씩 넉 줄로 된 구조)는 넉 줄 28자여야 한다. 그런데 김황원이 지은 한시는 14자이니 분명 미완성이다.

후세의 사람들은 두 줄을 더 만들어 완성했더라면 더 좋은 작품이 되었으리라고 얘기한다. 일리 있다. 하지만 나는 이 두 줄로 만족한다. 뒤에 억지로 더 갖다 붙이면 그건 군더더기일 뿐. '뱀의 발'처럼 말이다.


(노자 초상화 - 구글 이미지에서)



간혹 글 청탁을 받아 써 보내면 좀 늘려달라고 할 때가 종종 있다. 그럴 땐 참 난감하다. 편집자의 입장에서는 빈 부분을 채워 달라는 뜻이지만 글 쓰는 사람 입장에선 쓸 내용을 다 썼는데 뭘 덧붙이라는 말인가.

해도 모처럼 온 원고 청탁을 거절할 수 없어 억지로 늘이게 된다. 그러면 나중에 다시 읽으면 긴장된 맛이 훨씬 떨어진다. 김황원도 그러지 않았을까. 덧붙여 넉 줄이라는 형식을 완성하기보다는 두 줄로 쓴 저 미완성으로도 만족스러운데 말이다.

‘가장 단순한 게 가장 복잡한 것이다’라고 한 표현이나, ‘뛰어난 솜씨는 오히려 서툴러 보인다’는 역설적 표현을, 전에는 무슨 또라이 같은 소리냐고 한 귀로 흘려버렸지만 이제는 두 귀를 활짝 열어 새겨듣는다.


오늘 배달할 글을 다 정리한 뒤 쓴 글을 읽어본다. ‘참 기교를 많이 부리려 애썼구나.’ 하는 느낌이다. '대교(大巧)는 약졸(若拙)이다.' [노자]의 이 뜻을 언제 제대로 깨달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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