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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승의 가르침

나이 일흔에 풀어놓는 소소한 이야기(제26편)

* 스승의 가르침 *



<이야기 하나>



하루는 스승이 제자들을 모아놓고 이런 질문을 던지셨다.

“쉬리, 열목어, 어름치 등은 아주 깨끗한 1급수에만 산다. 그리고 붕어, 잉어 등은 조금 더럽다고 느낄 수 있는 3급수에도 산다. 만약 너희들이 물고기가 된다면, 1급수에 살고 싶은가, 아니면 3급수에 살고 싶은가?”

제자들 하등의 망설임도 없이 모두 1급수 맑은 물에 사는 물고기가 되고 싶다고 했다.

그러자 스승은 잠시 뜸을 들인 다음 이렇게 말씀하셨다.

“3급수에 사는 붕어 한 마리가 어느 날 마실 나왔다가 물을 따라 위로 위로 올라가게 되었다. 처음에는 낯선 길이라 겁이 났지만 이왕 나선 길 끝까지 가보자는 마음에서 계속 올라갔더니 마침내 깨끗한 물이 나오고 거기 사는 물고기들과 마주쳤다.”


스승은 잠시 호흡을 가다듬은 뒤 말씀을 이으셨다.

“원래부터 그곳에 살던 물고기들, 즉 1급수에 살던 물고기들은 웬 낯선 녀석이 오자 경계를 했다가 녀석이 자기들보다 훨씬 더러운 3급수에 살던 물고기라는 걸 알고 나서는 갑자기 태도가 돌변하였다.”


(붕어)



스승의 말씀이 계속 이어졌다.

“자기네가 사는 곳보다 훨씬 더러운 물에 살다가 왔다는 사실에 경멸의 눈초리를 보내기도 하였지…. 그 가운데서도 쉬리는 노골적으로 비웃는 투로 이렇게 말했어. '너는 이렇게 깨끗한 물을 본 적도 없지, 그런 더러운 물에서 어떻게 살았어?' 하며 말이야.

붕어는 그 말에 할 말이 없었지. 쉬리의 말이 맞는데 뭐라 대꾸하겠어. 그래도 이왕 올라온 김에 한동안 그곳에서 살았어. 붕어는 저가 살던 곳과는 분위기가 달라 처음에는 좀 어색했지만 지내니까 괜찮았어. 아니 오히려 자신이 살던 곳보다 훨씬 깨끗한 분위기라 만족스럽게 적응을 했지.”


스승은 잠시 자기 앞에 놓인 물을 들어마신 뒤 말씀을 이으셨다.

“붕어가 1급수인 깨끗한 물에 살고 있을 때, 그해 여름에 태풍과 함께 찾아온 어마어마한 비에 홍수가 나면서 그만 그곳에 살던 물고기들도 떠내려갈 수밖에 없었다. 그 가운데는 붕어도 있었고, 쉬리도 있었지. 붕어와 쉬리가 도착한 곳은 바로 원래 붕어가 살던 물이끼가 잔뜩 낀 더러운 물이었어. 붕어는 그곳이 고향이니까 금방 적응할 수 있게 되었지만, 자 그럼 쉬리는 어떻게 되었을까?”


(쉬리)



제자들은 스승의 말에 이구동성으로 대답했다.

“1급수에 살던 쉬리는 3급수에 오면 살지 못합니다.”

“그래 맞아. 쉬리는 죽고 말았어. 3급수에 살던 붕어는 1급수에 가도 살아남았지만, 그보다 훨씬 더 깨끗한 1급수에만 살던 쉬리는 3급수에 가자마자 죽고 말았지.”

스승은 사랑스러운 제자들을 바라보며 마지막 질문을 던졌다.

“너희들은 붕어와 쉬리 가운데 어떤 물고기가 되고 싶은가?”



<이야기 둘>



며칠 뒤 스승은 제자들을 모아놓고 또 이런 질문을 던지셨다.

“타조는 아주 어리석은 동물이다. 왠 줄 아느냐?”

제자들은 멀뚱히 서로의 얼굴을 바라볼 뿐이었다. 그러자 스승이 말했다.

“원래 타조는 지금처럼 길짐승이 아니라 날짐승이었다. 그랬는데 날개를 잃어버리고 길짐승이 되었다.”

그제서야 제자들은 고개를 끄덕였다.


(타조)



스승이 다시 질문을 던지셨다.

“하늘다람쥐는 아주 현명한 동물이다. 왠 줄 아느냐?”

제자들은 스승의 질문 의도를 금방 알아채 재빨리 대답했다.

“하늘다람쥐는 원래 길짐승이었지만 제 몸에 없던 날개를 달았기 때문입니다.”

“그렇다.”

잠시 뒤 스승이 다시 질문을 던지셨다.

“타조는 현명한 동물일까, 어리석은 동물일까?”

제자들이 이구동성으로 말했다.

“어리석은 동물입니다. 제 몸에 달린 날개를 버렸기 때문입니다.”


스승이 잠시 뜸을 들이신 다음 말을 했다.

“아니다. 타조는 사실 현명한 동물이다. 왜 그러냐 하면…”

예상치 못한 말이 나오는 바람에 멀뚱한 눈으로 바라보는 제자들을 보며 스승이 말을 이었다.

“타조는 날개가 있었지만 너무 덩치가 커서 날기가 불편하였고, 속력도 낼 수 없었다. 그러니 덩치는 커 많이 먹어야 함에도 먹잇감에 다른 날짐승보다 늦게 도착해서 늘 굶주린 상태였다.”

몇몇 제자들의 고개가 끄덕이는 걸 보며 스승이 말을 이으셨다.

“땅으로 내려온 타조는 살아남기 위한 방법을 찾으려 안 해 본 일이 없었다. 그러다가 마침내 자기에게 가장 맞는 걸 찾아내었다. 그게 무엇일까?”

가장 앞에 앉아 있던 제자가 재빨리 답했다.

“빨리 달리기입니다.”

“그렇다. 타조는 날개를 버린 대신 빨리 달리는 노력을 했다. 그 결과 타조를 따라잡을 길짐승이 없었고, 타조는 이곳저곳을 돌아다니며 먹이를 마음껏 얻을 수 있었으며 지금까지 도태되지 않고 살아남았다.”


(하늘다람쥐)



제자들은 스승의 말씀을 새기느라 한동안 조용히 있었다. 그 모습을 본 스승이 잠시 뒤 말씀을 이으셨다.

“하늘다람쥐도 마찬가지다. 다람쥐 자체가 몸집이 작고 또 연약하다 보니 다른 동물의 먹잇감이 되기 쉬워 나름의 방법을 찾았다. 즉 아무리 잽싸게 발을 놀려도 짧은 보폭으로는 포식자를 피해 가기 어려워 나무를 오르내리지 않고 이 나무에서 저 나무로 건너뛰는 방법은 없을까 해서 노력한 결과 날개를 만들어내었다. 덕분에 하늘다람쥐는 다른 동물들의 위협에서 벗어나 평안히 살 수 있게 되었다.”

제자들이 다시 생각에 잠기자, 스승은 마지막으로 말씀을 덧붙였습니다.

“하늘로 날아다니던 타조는 날개를 잃었지만 땅에서는 어느 누구보다 더 빠른 동물이 되었고, 겨우 나무 위를 오르내릴 뿐 다른 능력이 없던 다람쥐는 진화하여 공중을 훨훨 날아다니는 날짐승이 되었다.”


스승은 사랑스러운 제자들을 바라보며 마지막 질문을 던졌다.

“타조와 하늘다람쥐 이야기에 우리가 살아가야 할 길에 대한 해답이 있다. 그게 무엇일까?”


*. 사진은 모두 출처를 밝히지 않아도 되는 사이트(pixabay)에서 퍼왔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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