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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정굴뚝새의 암호

나이 일흔에 풀어놓는 소소한 이야기(제25편)

* 요정굴뚝새의 암호 *



<하나 : 가족만의 특별한 문신으로 형제를 찾다>



몇 년 전 ‘아버지가 새겨준 문신으로 가족을 찾다’란 기사가 떴다. 아마도 뉴스에서 본 사람이 꽤 되리라. 사연은 이렇다.


윤ㅇㅇ 씨는 아내와 일찍 헤어진 후 전주시 친가에서 부모와 살며 2남 1녀 아이들을 키웠는데 기와 찍는 기술자였던 윤씨는 28세인 1973년 척추수술 받은 후 거동이 불편해졌다. 경제활동을 할 수 없어 자식들을 키울 형편이 안 돼 고심을 했다.

여러 생각 끝에 아이 셋을 보육원에 보내기로 결정한 윤씨는 가족들이 뿔뿔이 흩어질 상황에 놓이자 각자의 몸에 가족만이 알 수 있는 표식을 새겼다. 훗날 떨어져 살더라도 이 표식으로 형제들을 찾으라는 의미로.


(남매의 왼팔에 새겨진 특별한 문신, 왼쪽은 여동생 오른쪽은 오빠 - 구글 이미지에서)



1975년 노동력을 완전히 상실한 윤씨는 전주보육원을 찾아 아이 셋을 맡겼는데, 이 가운데 당시 두 살이던 막내딸은 너무 어려 해외입양이 되고 말았다. 시간이 흘러 아들 둘은 조부모님의 도움으로 보육원을 나와 함께 살게 되었지만 여동생의 소식을 알지 못했다. 아버지가 왼쪽팔에 새긴 암호 같은 문신이 형제에게는 큰 상처가 되기도 했다. 당시만 해도 문신은 ‘흉측하고 불량스러움’의 상징처럼 여겼으니까.

2017년 [전국 미아·실종 가족 찾기 시민의 모임]에서 ‘해외입양인 가족 찾기 프로젝트’를 진행하고 있었는데 우연히 거기 사이트를 들여다본 둘째의 눈에 문신 하나가 들어왔다. 바로 여동생이 남겨놓은 문신 사진. ‘큰 십자가 아래 점이 네 개 찍혀 있는 모양’의 그 가족만의 특별한 암호. 마침 여동생 역시 가족 찾기에 나선 터.


이 세상 수많은 사람 중에 오직 그 형제자매만이 가진 암호. 그 문신으로 하여 가족이 만나게 됐음은 얼마나 큰 다행인가.


(입양 직전 여동생 사진)



<둘 : 요정굴뚝새의 암호>



이름이 ‘요정굴뚝새’란 새가 있다. 실제 이름만큼 이쁘기도 하다. 생긴 모습은 참새과에 속해 일반 참새와 비슷한데 그들 가운데 가장 이쁘다. 특히 짙푸른 빛의 ‘서부요정굴뚝새’ 수컷은 그 빛깔로 한 번 더 보게 만든다. 암컷이라면 무조건 끌려들 정도로.


이 새는 외양이 이쁘다는 점 말고 지혜가 뛰어나기로 유명하다.

요정굴뚝새는 어미가 알 품고 있을 때부터 뱃속의 새끼들에게 노래를 가르치는데 독특한 방식으로 자기들만의 ‘암호’를 익히게 한다. 즉 노래를 부를 때 그냥 아무렇게나 부르는 게 아니라 그 속에 일종의 소리 특징을 넣는다. 그 암호는 그대로 고스란히 알에게 전달되고.

이렇게 뱃속에 있을 때부터 엄마 소리의 암호를 기억한 새끼는 알에서 깨어나자마자 엄마가 들려주는 소리에 적극적인 반응을 한다. 그리고 엄마는 먹이를 줄 때마다 뱃속에서부터 불려준 노래를 듣게 한 뒤 거기에 반응하는 새끼에게만 먹이 주는 훈련을 시켰고.


(요정굴뚝새 수컷)



다들 한 번쯤 뻐꾸기가 자기 알을 다른 새의 둥지에 몰래 놔두는 수법(이를 탁란<托卵>이라 함)을 들었으리라. 힘들이지 않고 새끼를 키우겠다는 아주 약은 꾀. 뻐꾸기가 자기 알을 요정굴뚝새의 둥지에 놔두면 태어날 때까지는 정상 탄생이 이뤄지나 그 다음부터가 문제가 된다.

만약 탁란 당한 일반새의 어미가 뻐꾸기 새끼인 줄 모르고 남들보다 먼저 깨어난 새끼뻐꾸기에게 먹이를 집중하여 주게 되면, 진짜 새끼들보다 훨씬 빨리 커 자기 혼자 먹이를 차지하려고 진짜 새끼를 둥지에서 밀어내 죽여버리는 일도 있다 하니.


허나 요정굴뚝새는 그런 오류를 범할 일 전혀 없다. 어미가 노래 부를 때 진짜 새끼는 반응하는데 그렇지 못한 새끼는 반응을 못하니. 당연히 뻐꾸기 새끼가 자기 새끼가 아님을 알아차리게 되어 굶어 죽도록 방임하거나 죽이기도 한다.


(뻐꾸기 탁란 - 큰 게 뻐꾸기알)



봄마다 산골을 뒤덮으며 “뻐꾹!” “뻐꾹!” 하며 심심찮게 울려오는 뻐꾸기 소리는 절로 낭만의 세계로 빠져들게 만든다. 그래서 영국의 윌리엄 워즈워스는 [뻐꾸기에 부쳐(To the Cuckoo)]란 시에서, “너를 찾으려 / 숲속과 풀밭을 / 얼마나 헤매었던가 / 너는 여전히 내가 그리는 /소망이요 사랑이었으나 / 끝내 보이지 않았다” 하며 그리움과 신비스러움을 지닌 새로 묘사했다.

이렇게 알려진 바와 다르게 탁란을 알게 되면 굉장히 ‘재수 없는 새'가 된다. 달리는 ‘영리한 새’로 볼 수 있겠지만. 이 녀석이 탁란하는 까닭은 철새라 특정 지역에 머무는 기간이 짧아 그 사이에 번식과 둥지 짓는 시간을 아끼려 그런단다. 참 약은 녀석이다.


(뻐꾸기)



그래서 철새인 뻐꾸기는 텃세인 ‘붉은머리오목눈이’, ‘뱁새’, ‘딱새’ 등의 새집에 몰래 알을 갖다 놓아 자기 대신 새끼를 키우도록 만든다. 새끼 성장이 숙주인 새의 새끼보다 훨씬 빨라 어미의 먹이를 독차지하며 자란 뒤 일정한 시기가 오면 진짜 뻐꾸기 어미가 와 새끼를 데려가고.

그런 영리함을 깨버리는 새가 바로 요정굴뚝새다. 바로 그 새가 가진 독특한 암호 노래로 제 새낀지 아닌지를 찾아내니까. 뻐꾸기가 한 번 당하면 다신 그곳을 이용하지 않아야 함에도 일 년이 지나면 잊어버리고 그 자리에 다시 알을 낳는다. 그러고 보면 뻐꾸기가 영리하다는 가설이 요정굴뚝새의 암호 때문에 무너진다고 봐야 하겠다. 뛰는 놈 위에 나는 놈 있듯이.


(요정굴뚝새 암컷)



<셋 : 민족에게도 암호 같은 문신이 있을까>



외모나 혈통만으로 유대인임을 알아볼 수 없다고 한다. 유대인은 종교 집단으로서 유대교를 믿는 모든 사람을 유대인이라 부르니까. 그래서 나치 독일이 유대인을 잡아내 학살할 때 유대인 아님에도 억울하게 희생된 사람이 많고, 유대인임에도 빠져나온 사람이 많았다고 한다.

가끔 할례를 예로 들어 유대인을 구별한다는 말을 듣는데, 이도 할례 하는 나라가 많아지면서 특징으로 들기 어렵다. 우리도 그렇지 않은가. 다만 다른 민족이 유대인 구별하긴 어려우나 유대인은 유대인을 한눈에 척 알아본다. [토라]와 [탈무드] 등의 유대교 경전을 들먹이면 바로 안다고. 이게 그들만의 암호화된 문신이라 할 수 있으리라.


(유대인 회당인 '시나고그'에서 기도하는 유대인 가족)



일제강점기인 1923년 일어난 '관동대지진'을 다 아실 터. 이는 자연재해임이 분명함에도 일제는 우리 민족에게 강제로 덮어씌우려 유언비어를 만들어냈다. 즉 ‘조선인이 우물에 독을 탔다’라는 식으로. 이 유언비어로 인해 6,000명 넘은 우리 국민이 죽음을 당했다.

그럼 당시 두 민족 외모가 비슷한데 일본인은 한국인을 어떻게 찾아냈을까? 특히 일본어를 구사하는 사람이면 구별하기 쉽지 않았을 텐데. 바로 ‘15엔’에 그 해답이 있었다. 여기서 십(十)을 뜻하는 ‘じゅう’는 탁음으로 우리 민족은 발음하기 쉽지 않아 ‘주고엔’ 또는 ‘추고엔’으로 발음하니 차이가 드러났다.


이렇게 자국민만의 독특한 발음을 가지고 외국인을 골라내는 방법을 '십볼렛(shibboleth) 검증'이라 한다. 우리나라 사람인지 외국인인지 아닌지 구별하는 방법으로 ‘굴, 귤, 꿀’을 구별하여 발음해 보라고 하면 바로 알 수 있다나. 그러면 그것도 일종의 십볼렛 검증이 된다. 이런 십볼렛도 그 민족 고유의 암호 혹은 문신이 된다. (십볼렛에 대해 더 아시고 싶은 분은 인터넷에 찾아보시길)


(요정굴뚝새의 새끼들)



<넷 : 나만의 암호 같은 문신은?>



요정굴뚝새는 우리나라에선 보기 힘들다. 보이더라도 진짜 참새랑 비슷하여 눈길 끌지 못하고. 새들의 천국인 오스트레일리아에 가면 다양한 종(種)이 서식하는데 우는 소리도 다르고 빛깔도 달라 그 종만 연구하는 조류학자가 꽤 된다고 한다.

한 가지 덧붙이자면 요정굴뚝새는 구애할 때 수컷이 암컷에게 꽃을 물어다 준다고 한다. 세상에! 사람처럼 연인에게 꽃을 갖다 바치다니. 그래서 ‘세상에서 가장 사랑스러운 새 커플’이라 불리는 까닭이기도 하다.


나만의 암호 같은 문신은 무엇일까? 다른 사람은 모르고 오직 우리 가족만 아는 나만의 암호는 있긴 할까? 얼굴을 보지 않고도 목소리를 듣지 않고도 알 수 있는 그런 문신, 나의 빛깔과 향기에 맞는 그런 문신(암호)이 하나 있었으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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