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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꾸로 살아보기

나이 일흔에 풀어놓는 소소한 이야기(제23편)

* 거꾸로 살아보기 *



TV를 즐겨보는 편은 아니나 심심할 때는 한 번씩 켠다. 주로 보는 프로그램은 CSI 같은 수사극 아니면 출연자가 직접 겪은 내용을 다룬 다큐멘터리다.


얼마 전 우연히 채널을 이리저리 돌리다 필리핀의 ‘바자우족’을 취재한 내용을 보았다. 날짜 찍힌 자막을 보니 재방송이었다. 유럽에 집시가 있듯이 동남아시아에도 집시가 있다. 바로 ‘바자우족’은 평생 동안 바다 위를 떠다니며 살아가기에 ‘바다 집시’라 불린다.

여기서 바자우족의 이야기를 꺼냄은 다름 아니라 그날 묘한 것을 보았기 때문이다. 아무리 해상족(海上族)이라 하더라도 생필품을 구입할 때는 육지로 올라가야 한다. 그런데 배에서 내려 땅에 발 디디자마자 한 사람이 머리를 움켜잡으며 비틀하는 게 아닌가.


처음엔 내리려다 발을 헛디뎌 저런가 보다 하고 여겼는데 다음 사람도 그다음 사람도 똑같은 행동을 하는 거였다. 취재하던 우리나라 PD와 촬영기사는 아무렇지도 않았고, 오히려 배에서보다 더 자연스러웠는데도 말이다.

나중에 안 사실이지만 바자우족은 배 위에서만 생활하다 보니 우리가 배를 타면 멀미하듯이 그들은 육지에 내리면 거꾸로 멀미를 한다는 사실. 참으로 믿기지 않은 일이었다. 우리와 정반대로 몸이 반응한다는 사실이. 배는 움직이나 땅은 움직이지 않는데 그런 현상 일어난다는 사실이.


(바자우족 - 구글 이미지에서)



우리가 사는 세계에서도 이런 일들을 가끔 볼 수 있다. 환경의 영향으로 몸의 반응이 보통 사람들과는 정반대로 바뀐 사람을. 아는 이 가운데 나이트클럽에서 20년 넘게 종사한 이가 있는데, 그가 나이 들면서 직업을 바꿔야 했다. 마흔 나이에도 가슴에 ‘원빈’이니 ‘조인성’이니 하는 이름표 달고 일하기엔 너무 어색했기 때문이다.

그는 친척의 주선으로 ㅇㅇ자동차 협력업체에 근무하게 되었는데 일주일 출근하다가 그만두었다고 한다. 낮 근무를 하면 머리가 아파 일을 할 수 없다나. 그 뒤 반년간 백수로 지낸다는 얘기를 들었고 다음 들었을 때는 아파트 야간 경비 일을 한다는 소식.


얼마 전에 전화로 연결돼 얘기 나누었더니 월급은 얼마 되지 않지만 너무 편하다고 했다. 그는 낮보다 밤이 편한 체질로 변한 것이다. 낮이 되면 졸려 자지 않으면 머리가 아픈 대신, 어둠이 깔리면 마음이 그리 편할 수 없다니 보통 사람들과는 정반대라고 해야 할까.


(서양의 경비원)



그런데 우리가 자기의 익숙한 환경에 맞춰 살아가면 편하긴 하나 소위 타성에 젖어 자기도 모르게 몸과 마음에 때가 끼게 된다고 한다. 그래서 심리학자와 정신의학자들은 자기가 사는 환경이나 생활습관을 한 번씩 확 바꿔줘야 그 때를 벗을 수 있다고 말한다.

그 이론에 따르면 평소 늘 바로 서서 생활하기에 가끔 물구나무서기하면 혈액순환이 좋아지고 하체부종도 없어지고 두뇌도 활성화되고... 또 외둥이와 다둥이를 서로 집을 바꾸어 살게 하면 외둥이는 남을 배려하는 마음이 넓어지고, 다둥이는 자존감이 높아진다고 한다.


'거꾸로 살아보기'가 몸과 마음 건강에 좋다면 실천해야 하는데 그게 현실적으로 어려울 때, 한 심리학자가 해결책으로 '자기가 가장 안 되는 분야 파고들기'나 '가장 하기 싫은 일 하기'를 제시했다. 그 학설에 눈이 번쩍 뜨여 나를 돌아봤는데 불행히도 내가 안 되는 분야는 너무 많다. 그 가운데 특히 음악 부분은 거의 젬병. 그래서 오래전에 포기했는데...




이십 년도 더 전의 일이다. 오랜 벗이 이혼한 뒤 힘든 과정을 보낼 때 도와주려고 ‘넌 뭘 해야 조금이라도 마음 편하겠니?’ 했더니 터무니없이 댄스스포츠를 배우고 싶다는 게 아닌가. 몸치인 내가 거절하려 했지만 술 취할 때마다 "ㅇㅇ야, 나 죽고 싶다."란 말을 들었던 터라 그때만 해도 생소한 교습소를 찾아가야만 했다.

처음 원장은 무척 기뻐했다. 아직 스포츠란 이름으로 인식되기 전이라 사교춤 취급받아 꺼리던 그 시절에 교사 둘이나 찾아왔으니. 그러나 일주일도 가기 전에 원장은 이내 고개를 내저었다. 몇 번이나 ‘리듬을 타야 한다’고 했건만 그 ‘리듬을 타다’란 말뜻을 도무지 이해 못했으니...


두 번째 에피소드는 크리스마스를 앞두고 다니는 성당에서 '반별 성가경연대회'를 여니까 그에 대비하여 반원들이 모여 연습할 때 생겨났다. 그때 리더를 맡은 자매가 나더러 이랬다.

“아이구 참, 형제님은 왜 그리 박자를 못 맞춰요? 형제님 때문에 자꾸 삑사리 나잖아요.” 그래서 나는 성가경연대회에서 립싱크만 해야 했다.




리듬을 타지 못하고 박자를 못 맞추니 음악 분야는 젬병이 맞다. 해서 다른 분야 수강은 해도 음악 관련(색소폰 연주반, 전통가요 부르기반 등) 수강은 진작에 포기했다. 그러다가 문득 ‘거꾸로 살아보기’의 한 방법인 '자기가 가장 안 되는 분야 파고들기'가 생각났다.

음악과의 인연은 영원히 끝난 줄 알았는데... 마침 가까운 곳에서 기타반이 개설된다는 소식을 들었을 때 생애 마지막 도전이라고 생각하며 등록했다. 특히 내가 기타 배우고 싶은 까닭이 따로 있다.



1974년 대학 신입생 환영회 때로 거슬러 올라간다. 초청가수도 다 부르고 난 뒤 마지막 차례에 수학과 졸업반 여학생이 등장했다. 곁에는 같은 과 남학생이 기타를 들고. 그리고 그날 나는 가장 아름다운 선율을 들었다. 아마 죽을 때까지 잊을 수 없는 노래.

남학생의 통기타 연주에 맞추어 그 여선배가 부르던 노래. “나 그대에게 드릴 말 있네. 오늘 밤 문득 드릴 말 있네. ~ ~ ~”로 시작하는 이장희의 「나 그대에게 모두 드리리」란 노래였다. 단언컨대 당시 초청 가수인 양희은 씨보다 더 잘 불렀다고 여긴다. 그 노래를 들으면서 기타 치는 그 남학생이 얼마나 부러웠는지...


(가수 이장희 - 구글 이미지에서)



올해 초 ‘거꾸로 살아보기’는 기타 배우기로 정했는데 현재 상황은? 그만뒀다. 집안일 하다가 오른손가락을 다쳐 2주일 넘게 쉬었더니 원래 음악에 더딘 사람이 더 열심히 해야 겨우 따라 붙일 텐데 쉬었으니... 평소 남들에게 뒤진다는 생각이 들던 차였으니. 결국 그만두었다.

기타를 배워 「나 그대에게 모두 드리리」를 꼭 연주하고 싶었는데. 비록 곁에 노래 불러줄 수학과 여선배는 없을지라도 꼭 멋지게 노래 곁들여 켜보고 싶었는데. 경로당에 찾아가 할머니들 앞에서 연주하고 싶었는데...

*. 오늘 글은 목우씨의 일기장(2022. 3. 7)을 정리한 내용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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