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심심하다, 칠칠하다, 사과하다

나이 일흔에 풀어놓는 소소한 이야기(제22편)

* 심심하다, 칠칠하다, 사과하다 *



우스갯소리로 시작합니다.


은퇴 후 골프로 취미생활 즐기며 사는 사람이 막노동하며 하루 벌어 하루 먹고 사는 초등 동기를 만났습니다.


골프남 : 나 어제 비가 와 완전 공쳤어.

노동남 : 비 오는 데도 공 칠 수 있는가 봐

골프남 : 아니 어제 공쳤다니까!

노동남 : 그래서 하는 말이잖아. 요즘 골프장은 지붕 덮인 돔으로 돼 있는가 하고.

골프남 : 이런, 무식한 시키! 공치다와 공 치다를 구별 못하다니.


아시다시피 골프남이 쓴 ‘공치다’라는 말은 '공(空)치다'로 '허탕 치다'는 뜻이며, 노동남이 한 '공 치다'는 '공을 치다'란 뜻입니다.




몇 년 전 서울의 한 카페에서 올린 글 하나가 뉴스를 탄 적 있습니다.

한 웹툰 작가 사인회 예약 과정에서 시스템 오류가 발생한 것과 관련해 카페 관계자가 쓴 “예약 과정 중 불편끼쳐 드린 점 다시 한번 심심한 사과 말씀드립니다.” 이 사과문을 두고 일어난 일입니다.

이 글을 읽은 이들 가운데 욕설과 함께, “심심한 사과? 난 하나도 안 심심해”, 또는 “어느 회사가 사과문에 심심한 사과를 줘?”, “이것 때문에 더 화나는데 꼭 ‘심심한’이라 적어야 했나!”라는 등 비난하는 댓글이 달렸습니다. 그러자 이 댓글을 보고 "무식하면 나서지 말아야지", "이런 ‘댓알못’ 때문에 세상이 더러워진다"는 식의 비판하는 답글이 또 달리면서 글 이해하는 능력, 즉 문해력(文解力) 논란을 불러일으켰습니다.


사실 '심심(甚深)하다'는 한자어로 '마음의 표현 정도가 매우 깊고 간절하다'는 뜻이니 카페 관계자의 표현이 잘못된 건 아닙니다. 다만 그 뜻을 모르는 사람이 들었을 땐 오해를 불러일으킬 뿐.


(모펀 홍대AK&점 트위터 캡처)



다른 얘기로 들어갑니다.


아는 이 가운데 한글학자도 아니건만 대화할 때 일부러 토박이말로 바꾸어 말하는 버릇을 가진 이가 있습니다. 그는 모임 때마다 꼭 하나 아니면 둘 정도 새로운 낱말을 알아 와선 써먹습니다. 국어교사로 40년 가까이 보낸 제 기억 속에도 가물가물한.

예를 들면, "야 글마, 똑똑한 체하나 너무 반지빨라서 난 싫더라." '반지빠르다'란 말은 '말이나 행동이 얄미울 정도로 약삭빠르다'는 뜻입니다. 물론 이 말이 가끔 소설 같은 데선 쓰이나 일상생활에 쓰이는 경우는 거의 없습니다.


또 한 번은 제가 입고 간 윗도리 - 당근마켓에서 만 원에 산 옷 –를 보더니, "야, 네 어깨에 세월의 '더께'가 몹시 내려앉았네." '더께'가 '몹시 찌든 물건에 앉은 거친 때'의 뜻이니, 이렇게 말의 쓰임이 멋질 때도 가끔 있습니다. 허나 늘 성공적인 건 아닙니다.




하루는 네댓 명이 모여 식사하는 자리에서 한 사람이 고시 패스한 자기 아들 자랑을 한참 했습니다. 그의 말이 끝나자 '한글사랑가'가 이리 말했습니다.

"너는 칠칠한 아들 둬서 참 좋겠다."

순간 분위기가 싸늘해졌습니다. 앞으로 적어도 변호사는 될 자랑스러운 아들을 칠칠한 아들이라 했으니... 그런데 따지고 보면 그의 말이 틀린 건 아닙니다. '칠칠하다'란 말은 거의 안 써도 '칠칠치 못하다'라는 말은 자주 쓰니까요. '칠칠치 못하다'가 '성질이나 일 처리가 반듯하지 않고, 야무지지도 않다'를 뜻하는데, 그 반대가 '칠칠하다'입니다. 즉 칠칠하다는 '성질이나 일 처리가 반듯하고 야무지다'라는 뜻입니다.


그렇게 보면 친구 아들더러 '칠칠한 아들이네' 하면 틀린 뜻은 아닙니다. 그럼에도 '네 아들 칠칠하다'란 말을 들으면 칭찬보다는 흉으로 들립니다. 이처럼 말뜻을 모르는 사람들에게 쓰면 오해를 불러일으키게 됩니다.

이와 비슷한 말로 '변변하다'도 있습니다. '변변치 못하다'의 반대가 되니, '제대로 갖추어져 충분하거나 쓸 만하다'의 뜻입니다. 허나 이도 실제 대화에 사용하면 좀 어색해집니다. 예를 들면, "어제 너네 집들이하느라 애썼다. 특히 네 아내가 차린 음식이 무척 변변하더라." 어떻습니까?




다른 얘기로 넘어갑니다.


보통 사건의 본질을 희석시키려 할 때 한자어를 넣어 두루뭉술하게 표현하는 경우를 흔히 봅니다. 기억하실지 모르겠으나 1990년 5월에 당시 아키히토 일왕(日王)이 우리나라 방문을 앞두고 사과의 말을 했습니다. 그로선 방문에 앞서 긍정적인 분위기를 만들고 싶은 의도였겠지만 이 말이 논란에 휩싸이면서 방문이 취소되었습니다. (사실 방문 취소는 이와는 별도로 다른 면도 있었지만)


"우리 일본에 의해 초래된 불행한 시기에, 귀국 사람들이 겪었던 불행을 생각하며, 나는 통석(痛惜)의 염(念)을 금할 길이 없습니다.”

‘통석의 염’, 일본인들조차 잘 쓰지 않는 표현이라고 합니다. 게다가 사과의 뜻이 담겼니 담기지 않았느니 하는 논란의 여지가 다분한 말입니다.


('痛惜의 念’을 말한 일본 왕의 퇴위식, AP통신 캡쳐)



이렇게 보면 우스갯소리로 예로 든 골프남이, “나 어제 비가 와 완전 공쳤어.” 대신, “공 칠 약속 잡았는데 비가 와 완전 허탕 쳤어.” 했더라면, 골프남은 노동남을 무식하다 여기고, 노동남 역시 골프남을 잘난 체하는 사람이라 여기는 그런 일은 없었겠지요.

또 카페 관계자의 표현이 나름 정중하게 한다고 했지만 오해를 불러일으켜 더 나쁜 상황을 만들고 말았습니다. 만약 그때 ‘심심한 사과 말씀드립니다.’ 대신 ‘마음속 깊이 사죄의 말씀을 올립니다.’라 했으면 좋았을 걸.

아는 이가 "너는 칠칠한 아들 둬서 참 좋겠다." 대신, “너는 일 처리가 반듯하고 야무진 아들을 두었구나.” 했더라면. 일본 왕 역시 ‘통석의 염’이란 말 대신 “과거 우리 일본이 한국 국민에게 저지른 모진 행패에 대해 마음속 깊이 사과드립니다.” 했더라면.



요즘 정치인의 말이 논란의 중심에 서는 경우를 흔히 봅니다. 그때 든 아쉬움은 잘못 말한 뒤에 바로 사과했더라면 얼마나 좋았을까. 인간은 누구나 실수를 하는 불완전한 존재니까요. 특히 유감(遺憾)이란 말. 퍽 하면 '유감을 표합니다' 하는 말을 남발합니다.

‘유감’의 뜻은 ‘남길 유(遺)’와 ‘섭섭할 감(憾)’으로 돼 있으니 '마음에 안 차 섭섭하거나 불만스럽게 남아 있는 느낌'을 말합니다. 그런데 잘못해서 사과할 때 쓰는 말로 둔갑했습니다. 이 말은 사전적 풀이로 보면 잘못을 사과할 때 쓰기에 알맞은 낱말은 절대 아닙니다.


잘못했을 때는 '그대의 마음을 아프게 하여 진심으로 사과드립니다.' '사려 없이 함부로 내뱉는 제 말로 하여 언짢아하시는 OO 여러분께 사과드립니다.' '다시는 실수하지 않겠습니다.' 등처럼 명확히 말해야 합니다.

아 저도 모릅니다. 누구에게 피해를 줄 말(혹은 글)을 수없이 했을 텐데, 그때마다 제때 사과했는지... 오늘 제가 한 말과 쓴 글을 한 번 더 생각해 보는 시간을 가져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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