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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모의 풍습

나이 일흔에 풀어놓는 소소한 이야기(제21편)

* 대모(代母)의 풍습 *



흘러간 할리우드 남우 중 누구를 가장 좋아하느냐는 질문에 답하기 어렵지요. 워낙 많아서. <십계>의 ‘찰톤 헤스톤’과 ‘율 브리너’, <뻐꾸기 둥지 위로 ~~>의 ‘잭 니콜슨’, <로마의 휴일>의 ‘로버트 테일러’, <스파르타쿠스>의 ‘커크 더글라스’, 그리고 <대부(代父)>의 ‘말론 브란도’.

가톨릭 신자들은 ‘대부’란 말을 많이 사용합니다. 제게도 대부님이 계셨습니다. 영세를 받을 때 반드시 대부를 정해야 하기 때문이지요. 가톨릭에서의 ‘대부’와 ‘대모’는 신앙생활의 길잡이로서, 영적인 면에서 도움을 주는 분들입니다.


우리나라에서도 친하게 지내는 대부 대자가 보이나 대부분 그냥저냥입니다. 헌데 이탈리아에서의 대부는 단순히 가톨릭식의 대부를 넘어 생활 전반에 이르기까지 후견인 역할까지 합니다. 쉽게 말하면 또 다른 부모 역할이랄까요.


(영화 [대부]의 말론 브란도)



이런 역할을 하는 존재가 우리나라에도 있었습니다. 바로 또 다른 의미의 ‘대모(代母)’입니다. 물론 가톨릭과는 전혀 관계없고, 아무에게나 있지도 않고, 특정한 이름을 가진 이들에게만 붙는. 즉, 이름에 ‘판(判)’자가 들어간 이들에게만 붙습니다. 따라서 본명에 ‘판’이 들어간 제게도 대모가 있었습니다.


대학교 ‘민속학 수업’ 첫 시간에 교수님께서 학생들의 이름을 부르던 중 제 이름에 이르러, “어, 너 팔린 애구나.” 하자 다들 웃음을 터뜨렸고, 저는 무슨 뜻인지도 모른 채 단지 ‘팔린 애’란 말에 무척 기분 나빴습니다. 그렇잖습니까, '팔린 애'라니!

그 뒤 교수님을 찾아가 왜 그런 말을 했는지 설명 들었고, 그날 밤 어머니께 여쭈어 확인했습니다. ‘제가 팔린 아이였다’라는 사실을. 그리고 왜 제 이름에 ‘판’ 자가 붙어야 했으며, 또 왜 팔릴 수밖에 없었던가 하는 사유도 들었습니다.


([한국민속신앙사전], '기대잽이' 항목에서)



제 위로 누님이 셋인데 막내 누나가 저보다 열한 살이나 많습니다. 터울이 져도 너무 진 까닭은 바로 막내 누나 아래로 태어난 형 셋과 누나 둘이 일찍 하늘로 갔기 때문입니다. 딸만 주저리주저리 달린 집에 제가 태어났을 때 저 놈도 얼마 안 살고 죽겠지 했는데, 돌을 넘기자 장수(?)의 가능성을 발견한 부모님께선 지푸라기라도 잡고 싶은 심정에 어디에든 매달리고 싶었겠지요.

특별히 믿는 종교가 없는 부모님으로선 당시에 가장 쉽게 접근할 수 있는 사람이 무당이었고, 바로 그 무당에게 저를 팔았던 것입니다. 물론 ‘팔았다’는 의미는 진짜로 돈을 받고 팔았다는 말이 아니라, 무당을 어머니(대모)로 정하면 그녀가 믿는 신께 빌 때 자신의 양아들 복까지 함께 빌어준다는 뜻입니다.


예전엔 손(孫)이 귀한 집안에 자식이 태어나면 수명을 길게 하려고 아명(兒名)으로 ‘개똥’이나 ‘똥개’ 등의 험한 이름을 붙인 건 그만큼 똥개가 아무거나 잘 먹고 탈 없이 잘 자라기에 그런 식의 작명이 필요했지요. 마찬가지로 아들의 명이 짧은 집안에선 명을 길게 하기 위한 한 방법으로 무당에게 팖, 즉 무당을 '대모'로 정한 겁니다. 그래서 ‘판 아이’란 뜻에서 ‘판’ 자가 들어간 것이고요. 물론 한자 뜻로서야 ‘판단할 판(判)’이지만.


([법률신문], 2024.11.2에서)



어릴 때 막내 누나는 가끔씩 우리 집 앞을 지나치던 한 할머니를 볼 때마다 저더러, “저기 네 엄마 간다. 인사 안 하나?” 하고 놀릴 때 정말 어찌나 화가 나던지... 진짜 피붙이가 아니라 원수처럼 여겨졌지요.

그 할머니는 구부정한 허리에, 얼굴에는 저승꽃이 만발한 데다, 늙고 병들어 금방이라도 고름이 쏟아져 내릴 것 같은, 너무나도 보기 흉한 몰골이었습니다. 게다가 걸을 때 기침을 마구 하다간 가래침을 아무 데나 뱉고... 그렇게 보기 싫은 할머니를 ‘네 엄마’라고 했으니 화가 나지 않을 수 있었을까요.


다 큰 뒤에 누나에게 ‘진짜 그때는 누나를 콱 발로 차고 싶었다.’라고 말하자 깜짝 놀랐지요. 동생의 가슴에 그게 그렇게 한(?)으로 남았는지 몰랐으니까요. 그날 누나에게 물었습니다. 혹 그때 그 할머니가, 눈에 고름 흐르고 코에 콧물 흐르던 그 할머니가 바로 나를 아들로 삼은 무당이 아니었느냐고.

짐작은 역시 들어맞았습니다. 나의 대모인 무당 할머니는 그때쯤엔 정신과 몸이 온전하지 않아 굿도 못하여 거지처럼 살아갈 때였다는 말도 함께. 아시다시피 이름난 무당은 신딸(神딸)이 있으면 나중에 늙어도 보살펴 줄 이가 있겠지만 그때 그 무당에겐 아무도 없었나 봅니다.


([인천뉴스], 2022.10.4에서)



이제는 무당 할머니도, 우리 아버지 어머니도 다 돌아가시고 여기 계시지 않습니다. 들을 때마다 좋지 않았던 ‘판’ 자를 붙여주었던 사람들은 없습니다. 솔직히 이름이 싫어 몇 번이나 바꾸려 한 적이 있습니다. 그러나 이렇게 생각하면서 마음을 접었습니다.

아들을 다 잃어 대(代) 끊어질까 봐 노심초사하던 부모님은 무당에게 저를 팔았고, 무당 할머니가 자신의 신에게 저의 무병장수를 위해 빌었는지는 몰라도 그 덕에 저는 이렇게 아들딸 낳고 그 둘이 다시 손주를 낳아 지금까지 잘 살아 가노라고.


*. 혹 아는 이 가운데, 이름의 앞이든 뒤든 '판(判)' 자가 들어가 있으면 제가 적은 글이 옳습니다만 굳이 확인하진 마시길. 듣는 이 가운데 기분 나빠할 분도 계실 테니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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