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이 일흔에 풀어놓는 소소한 이야기(제45편)
건너 마을에 대나무숲을 정리해 집터로 일군다고 하여 대나무를 가져가도 된다는 말에 찾아갔습니다. 일단 대나무는 갖다놓으면 지금 당장은 아니더라도 쓸 곳이 많거든요. 작은 대문 만들 때도, 울타리 만들 때도, 아니면 인테리어 삼아 꾸밀 때도.
그곳에 이르니 대나무를 먼저 자른 뒤 삽차(포클레인의 우리말 순화어)가 몇 번 왔다갔다 하니 그 단단히 박혀 있던 뿌리도 아무런 힘쓰지 못하고 그냥 넘어졌습니다. 절개와 지조의 상징 대나무가 허무하게 뿌리뽑혀 나가는데 걸리는 시간은 고작 한 시간.
문득 대나무를 글감으로 쓴 글이 있나 하여 일기장 뒤적이니 재작년 겨울 전라도 여행에 쓴 글이 있어 정리해 옮깁니다.
2023년 겨울, 아내랑 전라도 여행에 나섰다가 해가 져 숙소를 찾다 눈에 띈 민박집을 얻어 들어갔습니다. 그날 제법 많이 걸어 피곤해 이내 잠에 빠졌는데, 갑자기 들려온 총소리에 깜짝 놀라 눈을 떴습니다.
처음엔 정말 전쟁이라도 난 줄 알았습니다. 영화나 드라마에서 들은 소리와 흡사했기에. '딱 따닥 딱'으로 들으면 총소리 같았고, '쿵 더쿵 쿵'으로 들으면 어딘가 무너지는 듯한 소리. 한겨울에 멧돼지가 먹이를 찾아 사람 사는 마을로 종종 내려온다기에 혹 녀석들을 잡으려고 사냥꾼이 총을 쏘는가 하여 궁금해 밖에 나왔는데...
세상에! 눈이 하얗게 마당을 덮었고... 제가 들었던 소리는 총소리가 아니라 잎사귀에 얹힌 눈의 무게를 견디지 못해 대나무가 부러지는 소리였습니다. 고요와 적막이 감돌던 대숲에서 댓잎이 눈을 지고 버티다 버티다 그 무게를 견디지 못해 부러지는 소리, 그 소리는 십리까지 간다고 합니다.
여행 다녀온 며칠 뒤 달내계곡 쪽 대밭에 들어가 대나무 몇 개를 쪄 왔습니다. 봄이 되면 대나무 쓸 일이 많아집니다. 오디 털 때 쓸 장대도 필요하고, 고추 오이 토마토 등 밭작물 버팀대로도 필요하고, 호박 넝쿨이 정자 지붕까지 올라갈 디딤대로도...
날이 좀 따뜻해지면 자르려 했으나 자칫 늦으면 새 물이 올라 물렁해지기에 이맘때가 적당합니다. 대밭에 이르러 바깥 부분을 둘러보니 가장 먼저 눈에 띈 건 꺾여 죽은 누렇게 된 나무로 작년 태풍에 쓰러진 모양입니다. 바짝 마른 대는 오디 털 때 요긴합니다.
대밭 안으로 들어서니, 어... 푸른빛이 아직 그대로인 채 죽지 않고 휘어진 대나무가 몇 보입니다. '왜 그럴까?' 하다가 아 맞습니다, 보름 전 산 쪽 기슭에 눈이 제법 쌓였더니만 눈에 쓰러진 모양입니다.
여행지에만 눈으로 대나무가 꺾인 게 아니라 이곳도 매한가지입니다. 키만 멀대같이 클 뿐 실제 버티는 힘이 약한 게 대나무입니다. 차라리 겨울에 잎이라도 없으면 눈이 쌓이지 않아 무게감이 없어 꺾이지 않았으련만.
나무나 풀에 얽힌 절개나 지조를 나타내는 한자성어를 다 아실 겁니다. ‘설중송백(雪中松柏)’은 눈 속에도 변함없는 소나무와 잣나무의 절개를, 서리에도 지조와 절개를 굽히지 않는 국화를 비유해 ‘오상고절(傲霜孤節)’이라 하고, ‘아치고절(雅致孤節)’은 이른 봄에 피어나는 매화의 우아한 풍취와 고고한 절개를, 추운 겨울에도 푸르른 빛을 잃지 않는 대나무의 절개를 ‘세한고절(歲寒孤節)’이라 합니다.
어제 제가 본 대나무는 모두 네 종류였습니다. 여름 태풍에 꺾여 부러져 죽은 누런빛의 대와, 아직 푸른빛은 잃지 않았으나 이번 눈에 꺾여 넘어진 대와, 휘어졌으나 꺾이지 않은 덕에 아직 살아있는 대와, 멀쩡하게 꼿꼿이 선 푸른빛이 선명한 대나무.
대나무의 절개를 이야기할 때 ‘차라리 꺾여 부러져 죽을지언정 휘어지진 않는다’는 표현을 씁니다. 그래서 감옥에 갇혀 일제의 온갖 협박에도 굽히지 않은 독립투사 같은 지조와 절개 곧은 분들을 비유할 때 자주 씁니다.
눈이 내릴 때 대나무는 치열하게 눈과 싸워야 합니다. 그 결과 어떤 대는 꺾여졌고, 다른 대는 휘어졌을 뿐입니다. 그런 면에서 제가 본 꺾여 누렇게 변한 대나무는 절개를 지킨 대나무요, 부러지지 않고 구부러진 대나무는 절개를 지키지 못한 대나무입니다. 눈과의 대결에서 굴복했지만 휘어진 대나무는 살아남았고, 굴복지 않아 부러진 대나무는 죽었습니다.
‘부러질지언정 휘어지진 않는다’는 대나무의 절개가 시대가 바뀌면서 그 뜻에도 변화가 생겼습니다. 어쨌든 살아야 다음이란 기회를 가질 수 있지 죽으면 말짱 도루묵이라 하여 '굽힐 때는 굽혀라' 하고 말합니다.
특히 융통성 전혀 없이 똥고집만 부리는 사람을 보면 그런 말을 합니다. 그렇게 고집부리다가 된서리를 맞게 된다는 뜻이겠지요. 기업 경영자 가운덴 한 우물만 파는 이가 있는 반면, 시류의 흐름을 잘 읽어 그때그때 업종을 바꾸는 사람도 있습니다. 그럴 때 우리는 결과를 보고 평가를 합니다. 한 우물을 팔 때나 업종을 바꿨을 때 성공했느냐 실패했느냐 하는 결과에 따라 평가가 달라집니다.
저는 어제 휘어진 대나무에 가장 먼저 낫을 댔습니다. 끈질긴 삶의 의지를 생각하면 놔둬야겠지만 일단 대밭 들어가기에 걸리적거립니다. 그리고 저렇게까지 살려는 모습이 안쓰럽기도 하지만, 아직도 이랬다 저랬다 하는 줏대 없는 제 모습을 보는 것 같아 잘라버렸습니다.
어쩌면 현재 제 모습과 닮아서 그런지도 모르겠습니다. 지나가다가 의롭지 못한 이들을 봐도 상대가 약하다 싶으면 한 마디 하나 덩치가 크거나 뭔가 대응할 것 같으면 피해버립니다. 변덕도 심하고 꼿꼿함보다 굽히려는 경우가 더 많습니다.
꺾여진 대나무, 휘어진 대나무의 대조가 저를 힘들게 만듭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