콜라겐꽃, 아니 병아리꽃을 아십니까?

나이 일흔에 풀어놓는 소소한 이야기(제46편)

* ‘콜라겐꽃’ 아니 ‘병아리꽃’을 아십니까? *



제가 최고로 치는 술안주를 대라면 돼지껍데기와 닭발을 듭니다. 오래 전 모임에서 그저 맛있어서 먹었는데 한 분이 그러더군요.
“선생님은 콜라겐 안주만 골라 드시는군요.”
처음엔 무슨 뜻인지 몰랐습니다. 콜라겐이란 말은 들었어도 그리 중요한 말이라 여기지 않아 머릿속 깊이 저장된 용어는 아니니까.

나중에 알아보니 콜라겐은 피부, 뼈, 연골 등 우리 몸의 거의 모든 조직에 분포하는 중요한 ‘단백질’이랍니다. 그 콜라겐이 많이 든 돼지껍데기와 닭발을 즐겨 먹으니 남들 눈엔 제가 일부러 몸에 좋은 것만 챙기는 사람으로 보였을지도 모르겠군요.


(돼지껍데기 안주)


동물성 안주에만 콜라겐이 있는 건 아닙니다. 꽃에도 콜라겐이 많이 함유되어 ‘콜라겐꽃’이란 별명이 붙은 식물이 있으니 바로 '금화규'. 금화규(金花葵)의 한자를 풀어보면 어떤 꽃인지 대충 짐작할 겁니다. ‘규(葵)’가 해바라기이니 ‘황금빛을 띤 해바라기 모양의 꽃이 피는 식물’.

금화규와 인연 맺은 지 대략 칠팔 년쯤 되는군요. 아내가 아는 이로부터 분양받아 텃밭에 심었는데 처음에는 대수롭지 않게 생각했습니다. 워낙 이런저런 꽃 심어놓아 그것도 여러 꽃 가운데 하나로 여겼으니까요. 헌데 한여름에 꽃이 피어나는 순간 완전히 매료되었습니다.

남들에게서 ‘가장 좋아하는 꽃은?’ 하는 질문 받으면 야생화론 하늘말나리를 들먹입니다. 하늘말나리도 우리 집 뒤 언덕에 피는 꽃을 가장 좋아합니다. 다음으로 이뻐서 꽃집에서 사거나 아는 이에게서 분양받아 심은 꽃으론 전에는 작약 아니면 모란이었는데 금화규를 보고 나서는 바뀌었습니다.
물론 ‘가장’이란 말이 지극히 주관적이라 실제로 보면 ‘참 이쁜 꽃이군요!’라는 말은 하면서도 ‘가장’이란 말엔 고개 갸우뚱할 분도 계실 터.


(금화규 꽃밭)


금화규는 담백한 노란 꽃이라 해야 할까요? 노란빛 외에 단 한 점도 다른 빛깔이 섞이지 않은 순수하게 노란 꽃. 노란빛의 대명사인 병아리 빛깔을 떠올리면 됩니다. 그래서 멀리서 바라보면 마치 병아리가 줄기에 붙어있는 듯하니까요.

‘금(金)’ 자가 들어가는 꽃으로 ‘금잔화’ ‘금초롱’ ‘금계국’이 있지만 조금 붉거나 주황빛에 가까운데 비하여 금규화는 정말 순금빛뿐입니다. 그 빛깔로 하여 금화규를 보면 저도 모르게 다가가 살포시 만져보고 싶어집니다. 게다가 혹 바람이라도 불면 매달린 병아리가 이리 왔다 저리 갔다 하듯이 꽃잎이 흔들리니까요.
보통 노란빛은 주변을 압도하는 빛깔이 아니건만 희한하게도 금화규 피어나면 곁의 다른 꽃들은 제 빛깔을 잃어버립니다. 금화규는 한여름에 활짝 피는데 우리 텃밭에도 피었다가 지고 새로 꽃봉오리가 생기면서 다시 피어, 마치 한 송이가 오랫동안 피어 있는 것처럼 보입니다.


(금화규 노란빛)


요즘 TV를 보면 건강 프로그램에 금화규가 오르내리면서 속된 말로 핫한 꽃, 핫한 식물이 되었습니다. 앞에서 말한 콜라겐 때문에. 피부 건강에 좋고, 노화 방지에 도움 주고, 혈압도 낮추고 게다가 정력에도 좋다니. 이러면 만병통치약 아닌가요. 항염증, 항균, 항산화 작용을 통해 면역력 강화 및 심혈관 질환, 관절염 등 염증 관련 질환 완화, 또한 소화 기능을 돕고, 해독 작용도 지녔다니.

금화규가 왜 콜라겐꽃이라는 이름 붙었는지 궁금하신 분은 꽃잎을 만져보면 알 겁니다. 꽃잎을 비비면 끈적끈적한 점액질이 느껴지니까요. 아내가 금화규를 넣어 밥을 지어 먹어봤습니다. 밥을 지을 때 금화규 꽃 몇 송이를 직접 넣거나, 금화규 우린 물을 밥물로 사용하면 됩니다. 솔직히 맛이야 다른 밥보다 더 맛났는지 모르겠습니다만 확실히 찰지다는 느낌은 받았습니다. 아마도 콜라겐 때문인 듯.


(금화규 밥 : 빛깔이 조금 다르죠)


금화규 활용의 으뜸은 역시 꽃차입니다. 꽃차 모양과 빛깔은 목련 꽃차와 비슷합니다. 다만 향기 면에선 목련꽃차를 따라갈 수 없지만. 허나 저는 금화규가 지닌 여러 효능 언급보다는 또 그런 점을 들먹이지 않더라도 그냥 심어놓고 바라만 보아도 그냥 좋은 꽃입니다.
그러지 않습니까, 꽃이 좋으면 그냥 좋아함이 정말 그 꽃 사랑하는 일 아니겠습니까, 잡다한 다른 의견 붙일 필요 없이. 무슨 병에 좋다 하여 심기보다는 그저 이뻐서 심었는데 그게 몸에도 좋은 꽃(뿌리, 줄기)이 피더라는 말이 더 낫지 않을까요?
그래서 금화규 꽃차에 콜라겐이 아주 많아 몸에 좋다고 하기에 한 번 시도해 본 뒤 그대로 두었습니다. 꽃을 보려고. 원래 어떤 꽃이든 꽃차로 만들려면 채 피기 전 몽우리로 있을 때가 가장 좋거든요. 다시 말하면 완전히 꽃이 피기 전에 따야 합니다. 그럼 꽃으로서의 운명은 끝.


(꽃차 만들려고 모아놓은 금화규)


혹시 금화규꽃을 중씰한 나이에 이른 분이 보신다면 “어 이 꽃, 옛날에 본 적 있는데...” 하실 분이 더러 계실 겁니다. 왜나면 옛날 시골에서 닥나무로 한지 만들 때 들어가는 첨가제로 쓰인 닥풀꽃과 닮았으니까요. (실제 둘 다 같은 ‘과’에 속함)

그래서 금화규라 찍어 올린 꽃 사진을 보면 사실은 닥풀꽃일 가능성도 있습니다. 크기, 꽃 색깔, 피는 시기마저 비슷하니까요. 인터넷에는 꽃 암술이 다르고, 꼬투리 색깔이 다르고, 금화규꽃이 닥풀꽃보다 약간 작다는 식으로 규정하나 실제론 구분이 힘듭니다.
닥풀꽃을 한자로 '황촉규(黃蜀葵)'라 하는데 여기에도 해바라기를 뜻하는 ‘葵’가 들어가 있으니 둘이 정말 비슷합니다. 닥풀꽃은 신사임당의 [초충도]에 들어가 있으니 한 번 보시길. 다만 닥풀꽃이란 말 대신 '추규'라 했는데, 이를 접시꽃이라 하기도 합니다.


([초충도]에서 ‘추규와 개구리’)


<뱀의 발(蛇足)>

제가 꽃이름 들먹일 때마다 아쉬움 느낄 때가 종종입니다. 너무 부르기가 민망하거나 어려운 한자 이름일 때는 특히.
한 예로 '개불알풀'은 야생화 동호회 중심으로 ‘봄까치꽃’으로 바꿔 쓰자는 운동이 일어나 큰 호응을 얻었습니다. 얼마나 이쁩니까, 꽃이름이 바뀌다 보니 꽃도 한층 더 돋보이게 돼 한 번 볼 꽃을 두 번 세 번 더 보게 됩니다.
허나 아직 '며느리밑씻개'나 '개망초꽃'은 그대로 쓰고 있습니다. 다만 며느리밑씻개는 잘 볼 수 없으니 쓸 일도 없겠지만 ‘개망초꽃’은 아닙니다. 워낙 흔한 꽃이니까요. 망초(亡草)란 이름 그대로 나라를 망하게 만든 꽃이란 뜻입니다. 솔직히 말해 일제에게 나라를 빼앗긴 게 꽃입니까, 사람이지.

그래서 저는 개망초꽃 대신 ‘하양누리꽃’으로 부르자고 주장합니다. 꽃이 필 때면 온 세상을 하얗게(순수하게) 만드는 꽃이란 뜻입니다. 금규화는 어려운 한자 이름이라 별명인 ‘콜라겐꽃’으로 부르고 싶지만 외국어 대신 ‘병아리꽃’이란 이름을 붙이고 싶습니다. 설명은 덧붙이지 않아도 아실 터.
다른 좋은 이름 생각나시는 분은 댓글로 달아주시길.

*. 셋째 사진을 제외하곤 모두 구글 이미지에서 퍼왔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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