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이 일흔에 풀어놓는 소소한 이야기(제48편)
“봄날은 가~안~다”라는 노래가 구성지게 들려오는 계절이건만 누가 찾아오고 따로 찾아갈 곳 없으니 밭에서 놀고 있다. '밭에서 놀고 있다'는 표현은 몸과 마음이 밭과 일체가 될 때 쓸 수 있건만 원래 초짜들이 좀 과장하는 법 아닌가.
밭에서 놀며 한 일은 크게 두 가지. 하나는 여름작물을 위한 밭 고르기와 잔디가 듬성듬성 패인 곳 많아 잔디밭 다듬기다. 둘 다 공통적으로 할 일은? 시골 사람이라면 단박에 나온다.
'삽질!'
텃밭이든 잔디밭이든 밭 만들 때 삽질은 필수적이니까. 허나 내가 원하는 답은 아니다. ‘돌을 골라내는 일’ 이게 정답이다. 토마토 오이, 고추, 상추... 심으려면 땅을 뒤집어야 한다. 게다가 무성한 곳의 잔디를 옮겨 듬성듬성한 곳에 심으려 할 때도 땅을 뒤집어야 하니 돌이 튀어나올 수밖에.
밭 만들기는 돌과의 투쟁이다. 「바윗돌 깨뜨려」란 동요를 한 번 보자.
“바윗돌 깨뜨려 돌덩이 / 돌덩이 깨뜨려 돌멩이 / 돌멩이 깨뜨려 자갈돌 / 자갈돌 깨뜨려 모래알”
노래처럼 모래알, 자갈돌, 돌멩이, 돌덩이, 그리고 심지어 바윗돌이라 불릴 만큼 큰 돌도 나온다. 어떤 땐 흙보다 더 많지(개수가 아니라 부피) 않을까 할 정도로 수도 없이 나온다. 이걸 골라내면 어딘가 갖다 버려야 한다.
관리기 같은 장비로 땅을 한 번 뒤집어주면 돌만 고르면 되는데 없으니 일일이 삽질을 해야 한다. 시골살이 28년(주말주택 10년 포함) 다 되었건만 삽질은 아직 서툴다. 요령보다 힘으로 밀어붙이다 보니 이내 팥죽땀이 주르륵주르륵 흘러내리고…
한 번은 파도 파도 하도 돌이 계속 나오기에 네가 이기나 내가 이기나 해보자며 돌에게 도전장을 던졌다. 일 미터 가까이 파 들어갔으나 돌이 없어지기는커녕 더욱 큰 돌이 나와 결국 두 손 두 발 다 들고 말았다. 싸울 상대를 보고 덤벼야지.
마음을 비우기로 했다. ‘마음을 비운다?’ 그러니까 돌은 돌이고 나는 나다. 이런 식의 비움? 돌이 아무리 나오든 어차피 녀석은 버려질 존재. 그러나 나는 끝까지 살아남을 존재. 결국은 승자는 내가 아닌가. 이런 식의 헤아림이 얼마나 어리석은지.
돌을 보고는 마음을 비울 수는 없다. 밭에서 돌 골라내면서 마음을 비운다? 혹 누군가 ‘나는 마음을 비웠다.’는 말을 한다면 그에게 이렇게 말하고 싶다. 주변 밭에 나가 돌멩이를 골라 봐라. 마음을 비우면 다 없앨 수 있는지.
좀 더 먹물이 든 이라면 ‘돌을 사랑하라’라고 하리라. 돌을 사랑하라? 사랑할 게 따로 있지, 어찌 돌멩이를 사랑하란 말인가. 돌은 사랑의 대상이 아니라 증오의 대상이다. 적어도 시골에서 밭을 한 번이라도 일궈본 적 있다면.
포기하고 나니 삽질할 때마다 더 돌이 나오는 것 같다. 큰 놈, 더 큰 놈, 작은놈, 더 작은놈. 처음에는 그냥 내버리려 했다. 아마 조금만 나왔으면 적당한 곳에다 갖다 버렸을 게다. 어떻게 처리해야 할지 결정 못해 돌을 일단 한 곳에 모아보았다.
그런데… 아니었다. 버리기엔 너무나 많았다. 과장 좀 하면 얕은 둔덕이 형성될 정도다. 이러면 버릴 데가 없다. 어떻게 할까 고민하며 일하다 보니 돌이 더욱 늘어났다. 더 과장하면 돌집 한 채를 만들 만큼이다.
일단 큰 돌덩이는 버리는 대신 살리기로 했다. 덩치가 크니 쓸모가 많다. 연못을 둘러친 돌담에도, 꽃동산을 만들 때 기초용으로 사용하면 된다. 남은 돌멩이와 자갈돌은 쓸모없으니 버리면 되고. 들통과 구르마를 준비하러 창고로 가다가...
문득 돌덩이만으로 돌담을 쌓으려던 생각에 균열이 생겼다. 군데군데 틈이 벌어져 흙이 삐져나오니 말이다. 그걸 해결하려면 사이사이에 조그만 돌멩이를 끼워 넣어야 한다. 또 언덕 끝에 돌멩이를 쟁여 놓으면 모양도 예쁘고 튼튼하다.
그럼 남은 건 자갈돌뿐인데 이도 필요할 데가 생겼다. 자갈돌은 물 빠짐이 아주 원활하도록 하는데 아주 긴요하다. 잔디밭 끝부분에는 비가 내리는 족족 빠져야 한다. 그러지 않으면 잔디에 이끼 생겨 썩으니까.
이러니 모든 돌은 다 나름의 쓸모가 있다. 다시 말해 '버려야 할 돌'이 없다. 다만 쓰임만 다를 뿐. 파낸 돌을 버리려 하다가 다른 곳에 쓰임을 알게 되니 기분이 참 묘하다. 돌멩이가 싸우는 대상이 아니라 즐김의 대상이 될 수 있음을 발견해서인가.
모래알도 자갈돌도 돌멩이도 돌덩이도 바윗돌도 다 쓰기 나름이다. 이곳에 맞지 않으면 저곳에는 맞다. 쓸모없이 버려져야 할 건 하나도 없다. 참 묘하다. 밭에서 돌 골라내는 일이 아이들 가르치는 일과 어쩜 이리도 닮았을까.
교사들에게 아래와 같은 문제를 내면 몇 번에 답을 할까?
<문제 : 아래 보기에서 교사에게 가장 필요한 것은?>
1. 수업 시간에 잘 따라오도록 이끄는 교수법
2. 어떤 업무든 맡으면 매끈하게 처리하는 능력
3. 반 아이들을 사건 사고 없이 잘 이끄는 통솔력
4. 아이 모두를 쓸모 있는 존재로 바라보는 자세
교사들은 문제를 잘 내므로 답도 잘 찍는다. 출제자의 의도가 4번임을 가리킴을 알기 때문이다. 나도 당연히 4번이라고 답을 했을 것이다. 그런데 실제로 그랬을까. 아니다. 1번 2번 3번은 그럭저럭 따라갔으나 아이들 모두가 쓸모 있는 존재로 바라보진 못했다.
‘저 애는 크게 될 애, 저 애는 아무리 해도 안 될 애’, 이렇게 갈랐다. 이게 가장 후회된다. 그래서 혹 내게 처음 교단에 서는 교사들에게 발언할 기회가 주어진다면 꼭 밭일을 한 번 해보라고 말하고 싶다. 밭에 가 삽으로 돌을 파내보라고. 파낸 돌 가운데 버릴 돌과 버려선 안 될 돌을 골라보라고. 버려야 할 돌이 있다면 왜 버려야 하는가를 생각해 보고, 마침내 버려선 될 돌이 없다는 사실을 깨달아 보라고.
모래알은 물 빠짐이 좋아야 하는, 잔디 심을 아래쪽에 깐다.
자갈돌은 저보다 작은 마사나 흙이 쓸려 내려가는 걸 막아준다.
돌멩이는 돌덩이 사이사이에 끼워 어그러짐을 대비하는데 필요하다.
돌덩이로는 손으로 움직여 만들 수 있는 최대 크기의 구조물을 만든다.
바윗돌은 서 있든 누워 있든 그냥 거기 자리함으로 존재감이 빛난다.
이렇게 귀납법으로 논리를 이으면 ‘모든 돌은 다 쓸모 있다’는 결론에 이른다. 하찮아 보이는 돌도 다 나름의 쓸모가 있는데, 그것과는 도무지 비교 대상이 아닌 사람 가운데 쓸모 없는 사람이 어디 있으랴.
*. 오늘 글은 '목우씨의 일기장(2023. 4. 3)'을 정리한 내용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