댓글, 상처 주거나 보듬거나

나이 일흔에 풀어놓는 소소한 이야기(제49편)

* 댓글, 상처 주거나 보듬거나 *



@. 오늘 글은 '목우씨의 일기장(2022. 4. 25)'을 정리한 내용입니다.


열흘 전 4월 25일, 한 뛰어난 글쟁이 한 분이 세상을 떠났습니다. 바로 소설가며 시인인 이외수!

이 작가만큼 호불호가 갈리는 사람도 별로 없을 겁니다. SNS에 한 마디 할 때마다 호응과 비난이 공존한 사람. 싫어하는 사람은 외모가 너무 어지러워서(?), 쓰는 글이 너무 진보적이라서... 좋아하는 사람은 현실을 날카롭게 파고드는 시각이 시원해서, 가진 자보다 없는 자의 편에 서서.


오늘 이 작가 얘기를 꺼내는 까닭은 좋아하거나 싫어하는 내용을 적자는 게 아닙니다. (저는 좋아합니다만) 2009년 이외수 작가가 자신의 글에 댓글을 단 한 누리꾼을 고소한 바 있습니다. 문득 그분의 죽음에 그때 일이 다시 떠올랐습니다.

처음 자신을 헐뜯는 댓글에 한 번 더 쓰면 고소하겠다는 경고의 글을 올렸는데 그 누리꾼이 사과문을 올렸답니다. 그런데 그 사과문이 문제였습니다. 저도 그때 그 기사를 읽으면서 '이만한 일로 고소하다니... 평소 작가답지 않은데~' 하며 작가를 오해했습니다.


그런데 가만 보니 댓글의 무서움이 그 사과문 속에 숨어 있더군요. 지금은 글 쓰는 사람이라면 알지만 당시엔 생소한 ‘세로 쓰기’ 기법. 있는 그대로 읽으면 사과하는 면이 보이고, 공손한 면도 보이고… 그러나 맨 앞 글자만 떼 내어 세로로 읽으면 전혀 다르지요.

한 번 보시지요.


48-1.jpg


위 댓글을 아래처럼 정리하면,

"점에 대해 반성합니다. 나이가 많은 분에게 의도가 어찌 되었던, 게시판이 어디였든 선생님이 볼 수 있었던 점, 어른에 대한 기본적인 예의가 결여되어 있었던 점에 대해 반성합니다. 이번 상황도 그때쯤 발단으로 선생님께 누를 끼치지는 않았는가, 무례한 점은 없었던가 하는 생각이 다시금 들고 있습니다. 죄송합니다. 내일도 변함없이 반성문과 사과문을 작성하겠으며 시간 간격은 말씀해 주신 대로 4시간에 한 번씩, 발전된 내용으로 글을 올려 단순히 같은 내용을 반복하는 일이 없도록 하겠습니다."


제가 정리한 내용대로 읽으면 사과문으로써 흠잡을 데 없어 보입니다. 허나 제시된 표에서 문맥의 맨 앞글자만 따오면(붉은 부분) 전혀 달라집니다. 앞 글자만 떼 내 세로로 읽어봅니다.

“점나(참 나), 어이없내, 시발”

사과하는 듯하지만 사실은 상대를 욕하고 있음이 드러납니다. 이외수 작가도 처음엔 몰랐다고 합니다. 다행히 작가를 따르는 젊은 사람이 일러줘서 알았다더군요. 알고 나니 화를 참을 수 없어 누리꾼을 고소했고, 그게 뉴스에 뜨면서 저도 읽게 되었습니다.


다음은 뒤에 사과문이라고 쓴 글도 보십시오.


48-2.jpg


역시 멋모르고 읽으면 사과문처럼 보입니다. 허나 앞부분만 떼놓고 읽으면 무시무시(?)합니다. 특히 이번엔 '세로 쓰기 기법'에다가 '거꾸로 읽기 기법'까지 첨가된, 달리 말하면 업그레이된(?) 표현. 거꾸로 읽으면 역시 욕입니다. "이외수 조까지 마" 이렇게 교묘하게 자신의 마음을 감추면서 상대를 비판하는 내용을 담을 수 있습니다.


아래 예를 보십시오. 어떤 정책에 반대하는 사람이 반대 의사를 공개적으로 표하면 매장될까 봐 찬성하는 것처럼 했지만 사실은 반대한다는 내용입니다. 이는 원래 자료를 제가 풀어 따로 만들었습니다.


48-3.png


역시 앞 글자만 떼 내 가로로 펼치면 ‘반대한다’가 됩니다. 언뜻 보면 찬성한다는 내용 같지만 속은 분명히 ‘반대한다’입니다.


그런데 가만 생각해 보면 댓글이 꼭 남을 상처 주는 내용으로만 쓸 게 아니라 오히려 이를 이용해 마음을 보듬는 댓글도 있을 수 있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래서 연습 삼아 만든 글이니까 한 번 읽어보세요.


48-4.png


오늘 짬 내 마음을 터놓지 못해 속으로만 끙끙 앓고 있는 님이 계시면 한 번 시도해 보시길. 다만 위의 내용을 그대로 인용하면 저작권에 걸리니까, 혹 인용하실 분은 제게 미리 아메리카노 한 잔 사주시면 됩니다. ㅎ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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