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고뿔이 남의 중병보다 아프다

나이 일흔에 풀어놓는 소소한 이야기(제47편)

* 나의 고뿔이 남의 중병보다 더 아프다 *



십여 년 전 부정맥이 심해 심장 관련 시술받으러 서울◯◯병원에 갔을 때의 일이다.

시술하기 하루 전 입원한 뒤 몇 가지 검사를 받느라고 검사실을 오갈 때였다. 앞에 나 또래의 남자가 서 있어 자연적으로 얘기를 나누게 되었다. 그는 가끔 가슴에 손대면 심장이 팔딱팔딱 뛰는 게 느껴져 무슨 나쁜 병이 아닌지 검사받으러 왔다며 혹 중병을 선고받을까 봐 안절부절못하고 있었다.


심장 관련 병을 앓은 경험이 있는 이라면 별일 없다는 걸 눈치챌 테고, 별일 있다고 한들 진짜 별일 아닌 가벼운 이상으로 나올 공산이 아주 크다는 걸 잘 안다. 그러자 문득 저 사람과 나의 처지가 바뀌었으면 얼마나 좋을까 하는 생각을 했다.

그 남자야 검사 한 번만으로(?) 끝나겠지만 나는 당장 내일 심장을 전기로 지져대는 시술이 예약돼 있지 않은가. 그러니 그가 하는 걱정은 옛날 중국 ‘기(杞) 나라 사람이 하는 근심(기우 : 杞憂)’, 즉 밖에 나가 걸어 다니다 땅이 푹 꺼지거나 하늘이 무너져 내릴까 하는 걱정, 정말 아무 쓰잘데기 없는 걱정으로만 여겨졌다.




다음날 '전자도극 절제술'이라는 이름만으로도 무시무시한 시술을 마치고 중환자실에서 하루를 보낸 뒤 입원실로 갔다. 아시겠지만 입원실엔 비슷한 환자들끼리 모인다. 그러니 내가 들어간 입원실도 모두 심장 관련 수술이나 시술받은 환자들만 있는 곳이다.

여섯 명의 환자가 있는 방에 출입문 왼쪽에 배당받았다. 내가 거기 눕자마자 옆 침대(그러니까 가운뎃줄 왼쪽침대)의 환자가 무슨 수술받았냐고 묻기에 시술 이름을 댔다. 속으로는 나보다 심각한 상황에 놓였던 사람은 없거나 있더라도 비슷한 정도이겠지 하며.


그의 첫말이 “에이, 호리뺑뺑이잖아!(경상도 사투리로 ‘별것 아니잖아’란 뜻. 그 환자는 진주 출신)”였다. 남은 생사를 넘나드는(?) 시술을 받고 왔는데 그냥 내뱉는 말에 화가 났으나 신참의 처지라 못 들은 척 넘겨버리려 했다.

그런데 그 사람은 입원실 동료 다섯 명의 병명을 친절하게 설명해주는 게 아닌가. 자신은 심장혈관성형술 뒤 스텐트 (의료용 금속으로 제작된 작은 망 튜브)를 두 개나 박았고, 내 맞은편의 젊은 환자는 길 가다가 갑자기 쓰러져 앰뷸런스에 실려와 응급수술을 받았으며, 바깥 창 쪽의 두 환자는 예전에 한 번 수술받았는데 재발하여 다시 받은 상태며, 입원실 들어간 이래 일어나지도 앓고 계속 산소호흡기를 달고 오른쪽 침대에 누운 환자는 수술 후 경과가 좋지 못하다고 하면서 고개를 살며시 젓는 게 아닌가.


그러니까 그 사내 말의 요지는 내가 가장 가벼운 상태라는 거였다. 그럼 그의 정보가 나에게 위로가 되었을까? 아니다. 그들이 아픈 건 그들이 아픈 거고 내가 아픈 건 내가 아픈 거니까.




잠이 들 무렵에 통증이 찾아왔다. 아시다시피 통증은 잠들 무렵 몰래 과수댁 찾아가는 홀아비처럼 잘도 찾아온다. 아프니까 당연히 신음을 했다. 무통주사 수액을 달고 있건만 허벅지에 구멍 두 개를 뚫어 심장까지 전선을 끼워 지져댔으니 아무리 수술이 잘 끝났다고 해도 아프기는 아프다.

그때 떠버리 사내가 한마디 하는 게 아닌가. “아이구 아재요, 엄살 참 대단하시네.” 조금만 덜 아팠더라면 정말 한 대 쥐어박고 싶었다. 뭐 저런 인간이 있나 하는 생각에 입원실 잘못 들어왔구나 했다.


다음날 아침 심각한 상태의 환자가 중환자실로 옮기자, 이내 다른 환자가 들어왔다. 이번에는 40대 초반의 사내였다. 헌데 그 환자는 원래 우리 입원실에 와야 할 환자가 아니었다. 그는 갑상선 이상으로 수술받았으니 내분비내과 입원실에 가야 했으나 거기에 환자가 꽉 차 이쪽 심장내과 입원실로 왔다는 거였다.

중학교 다님직한 아들딸과 에리에리(사실 30대 후반이었으나 처음엔 그렇게 보였음) 한 아내, 이렇게 네 가족은 첫눈에도 행복해 보였다. 헌데 아들딸이 가고 아내만 남은 밤이 되면서 그는 달라졌다. 가관이었다. 얼마나 앓는 소리를 내는지…

“아이구, 아야!”, “아이구 아야!” 소리를 입에 달았다. 다분히 아내를 의식한 신음임을 알면서도 가만있을 수 없어 내가 한 마디 했다.

“마 좀, 엄살 그만 피우소!”

떠버리가 내게 했던 말을 그대로 전해준 셈이다.




나와 형 아우 하며 지내는, 막일하며 벌어먹고 사는 이가 있다. 그는 작년에 오른쪽 어깨가 고장 나 ‘회전근개파열’로 수술을 받았다. 이 병을 겪은 이나 가족 중 수술한 이를 본 사람이라면 다 알리라. 이 병은 수술 후 적어도 6개월은 통증이 있어 일을 제대로 못한다. 막일하는 이에게 일을 못하게 하니 치명적인 병이다.

뻔히 아는 그의 처지를 생각하면 직접 돈을 줘 도와주고 싶은데 그러지도 못해, 생각하다 아파도 대충 할 수 있는 일을 일부러 맡기곤 했다. 한 번은 지붕 물 새는 곳 때우는 공사를 맡긴 뒤, 일을 마치고 잠시 이야기 나누던 중에 그가 이렇게 말했다.


“형, 요즘 내 소원이 뭔 줄 아오?”

짐작이 잘 안 가 잠시 그를 보자,

“할 수만 있으면 형처럼 사는 거요.” 하는 게 아닌가. 한동안 멍했다. 솔직히 충격이었다. 내가 그의 이상형이 되다니…

‘재산이라곤 꼴랑 시골집 한 채, 자식 결혼해도 집 사주기는커녕 고작 전세 얻을 때 몇 푼 보태 줄 형편밖에 안 되는 나를…’

그러다가 문득 그의 입장에서 생각해 봤다. 전셋집도 아닌 달셋방에다 하루 벌지 않으면 굶어야 하는 그의 입장에선 집 있고 꼬박꼬박 연금 나오는 생활을 하는 내가 부러울 수 있다.

‘그래도 그렇지 어찌 내가 남의 부러움 대상이 되겠는가. 연금 빼면 재산이라곤 꼴랑 시골집 한 채뿐인데…'




살다 보면 힘들 때가 많다. 나도 그랬다. 결혼할 때부터 빚을 안고 시작했으니 힘들지 않을 수 있겠는가. 그래서 아내랑 경제적 문제로 다툴 때면 입을 닫는다. 그 빚이 빌미가 되어 40년 가까이 직장 생활했으나 끝내 울산에 번듯한 집 한 채 마련하지 못해 시골로 쫓겨온 처지가 아닌가.

그나마 산골로 왔기에 400평 가까운 땅과 집을 가지고 살 수 있는데…. 그런 내가 그의 이상형이 되다니… 그날 나는 충격을 받았다. 그리고 그동안 내가 가진 게 없다는 생각을 아예 지워버렸다.

누군가가 부러워할 생활이라면 나도 내 생활을 그리 아파할 필요가 있을까. 가만 생각해 보자. 나보다 나은 이를 보면 한없이 내 처지가 슬퍼진다. 헌데 아래로 보면 나보다 못한 이가 수두룩하다. 비록 아들 녀석이 포기한 재산이지만.


언젠가 아들과 술 한 잔 하면서 얘기를 나눈 적 있다. 그때 농담 삼아,

“아빠는 나중에 전 재산을 사회에 환원하고 하늘로 갈 거다.” 하니까,

잠시 심각한 얼굴이더니,

“도대체 얼만데요?” 하기에, “3억 채 안 된다.”라고 했더니,

“아이고, 꼴랑…. 마 줘 버리소. 얼마 안 되는 거.” 했다.




고뿔은 ‘고+ㅅ+불’로 나눠지는데 옛말에 ‘고’는 ‘코’를 가리키는 말이었으니, ‘고뿔’은 ‘코에 불이 남’ 즉 ‘감기’를 뜻한다. 그러니 ‘나의 고뿔이 남의 중병보다 더 아프다.’라는 속담은, 남 보기에 나는 고작 감기에 걸렸을 뿐이지만 남이 앓는 중병(重病 : 암 정도의 병)보다 견디기 힘들다는 뜻이다.

즉 ‘남의 괴로움이 아무리 크다고 해도 나의 작은 괴로움보다는 마음 쓰이지 아니함’을 이르는 말이다. 육체의 병이든, 마음의 병이든 내가 앓고 있는 병은 어느 누구의 병보다 더 아프다.


헌데 둘러보면 나보다 더 아픈 이들이 많다. 나보다 덜 아픈 이만 바라보면 그 아픔이 더 클 수 있지만, 나보다 더 아픈 이를 보면 아픔을 덜 수 있어야 하지 않은가. 아직도 덜 수련되었는지 나를 이상형으로 삼는 동생뻘 되는 이의 아픔을 보면서 잠시 아픔이 좀 덜한 것 같더니만 아주 잠깐뿐이었다.

‘나의 아픔보다 더 큰 아픔은 없다.’

불행히도 아직까진 이 사고를 뛰어넘지 못하고 있다.


*. 오늘 글은 목우씨의 일기장(2010년 2월 4일)을 정리한 내용이며, 사진은 모두 구글 이미지에서 퍼왔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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