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십 리 눈길을 걸으며(제1부)

나이 일흔에 풀어놓는 소소한 이야기(제59편)

* 사십 리 눈길을 걸으며(제1부) *



눈 내리는 기척에 일찍 눈을 떴습니다. 불을 밝혀 밖을 내다보는 순간 아찔했습니다. 길 흔적이 전혀 보이지 않고, 나무에 핀 눈꽃만이 바람에 ‘후루루’ 떨어지고 있습니다. 이 정도면 눈이 무릎까지 왔다는 말이고, 그러면 어떤 차도 다닐 수 없습니다.

함께 눈을 뜬 아내가 오늘 그만 학교 가지 말라고 합니다. 저도 그러고 싶습니다. 허나 하필 오늘은 종업식 날입니다. 1년 동안 함께 한 우리 반 아이들과, 또 내가 가르친 다른 반 아이들과 헤어지는 날입니다. 게다가 새로 맡을 학급과 업무 분장이 발표되는 날이기도 하구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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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백이(풍산개)의 집 앞을 치우고 사료를 챙겨주고, 밥상머리로 와 차려진 떡국을 먹고 양복 대신 등산복을 갈아입습니다. 그러자 아내가 다시 가지 말라고 합니다. 해도 그럴 수 없지요. 아내도 그런 사실을 알고 있지요. 교사 남편과 같이 산 지 30년이니까요.

말없이 옷을 챙겨 입고, 무릎 위까지 오는 긴 장화를 신고, 오랜만에 검은 가죽장갑을 낍니다. 그제야 아내가 단념하는지 “조심해서 다녀오세요.”라고 합니다. 헌데 툇돌 아래 첫 발을 디디는 순간 그만 미끄러졌습니다.


눈으로 덮여 있지만 밑바닥이 얼어 있다는 사실을 깜빡했기 때문이지요. 다행히 엉치뼈를 다치는 일도, 바닥을 짚은 손목을 다치는 일도 생기진 않았습니다만. 그 소리에 다시 문을 연 아내가 이제는 적극적으로 가지 말라고 합니다. 그러나 손을 가벼이 흔들어주고 다시 걸음을 옮깁니다.


6_349Ud018svc9ygtzeh4q9ho_149gk0.jpg (우리 집 100년 된 뽕나무에 내린 눈)



사십 리 눈길을, 어떤 이의 발자국도 없는 눈길을 걸어본 적 있나요?

어떤 길이든 두 시간 반 동안 앞만 보고 걸어본 적 있나요?

몰아치는 바람을 맞으며 함께 하는 이 없이 홀로 걸어본 적 있나요?

모든 것을 잊고 스스로를 잊을 정도로 푹 빠진 눈길을 걸어본 적 있나요?


눈이 만들어낸 세상을 보고 싶어 이곳저곳 눈을 돌리려 하나 눈바람이 너무 세군요. 이제 주변으로 눈길을 돌리지 않고 오직 앞만 보며 걷습니다. 다른 때 같으면 들리던 ‘까악 까악’ 하며 울던 까치 소리도, ‘쿨렁쿨렁’ 하며 홰치는 꿩의 소리도 들리지 않습니다.

그럼 아무 소리도 들리지 않을까요? 가만 귀 기울입니다. 세 가지 소리가 들려오는군요. 감나무에 내려 뭉쳐진 눈이 어느 정도 쌓이면 ‘툭’ 하고 떨어지는 소리, 대나무가 눈 무게를 못 이겨 ‘탁 탁 탁’ 하며 부리지는 소리, 눈으로 덮여 있지만 얼음 밑으로 흐르는 개울물 소리. 아 또 있군요. 바로 제 발자국 소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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눈바람은 경사가 심해질수록 세찹니다. 이제 귀를 막습니다. 앞만 보다 보니 눈도 막힙니다. 그런데… 참 이상하군요. 그냥 무심코 앞만 보고 걸으니 아무것도 생각나지 않고, 아무것도 생각하고 싶지 않습니다. 그렇게 걸었습니다.


눈을 잊었습니다.

바람을 잊었습니다.

걷는 걸 잊었습니다.

나를 잊었습니다.


혹 성현들이 얘기한 무념무상(無念無想), 무장무애(無障無礙), 물아일체(物我一體), 물심일여(物心一如), 주객일체(主客一體)의 경지에 이른 건 아니겠지요. 그러나 본디 속물인지라 얼마 안 가 눈이 뜨였고, 귀가 뚫렸고, 생각의 문이 열렸습니다. 뒤를 돌아보았습니다. 내 발자국뿐입니다. 앞을 보았습니다. 아무 발자국도 없습니다. 사실은 고라닌지 노룬지 동물의 발자국이 있습니다만 인간의 발자국은 없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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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득 예전에 들은 이야기가 생각납니다. 아마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이들이라면 한 번쯤 들어봤을 겁니다.

믿기지 않겠지만 하늘나라에도 비디오방이 있답니다. 그곳은 에로틱한 내용의 영화를 틀어주는 곳이 아니라 자신이 살아온 발자취를 보여주는 곳이랍니다. 그래서 하늘나라에 간 이들은 꼭 들른답니다.


이 세상에서 어렵게 살면서도 착한 일을 많이 한 이가 하늘나라에 갔습니다. 그도 비디오방을 찾아가 자신의 테이프를 재생해 보았습니다. 눈길에 찍히는 자신의 발자국과 그 옆에 함께 찍히는 또 다른 발자국을 보며 흐뭇해하면서 말이지요. 눈길은 어려운 삶을 상징하며, 함께 찍히는 발자국은 예수님의 발자국이라는 걸 이미 알고 있었지요.

한참을 흐뭇한 마음으로 보던 중 깜짝 놀랐습니다. 갑자기 한 사람의 발자국이 없어져버린 거지요. 그가 비디오에 찍힌 그때의 연대를 보니까 자신이 가장 힘들 때였습니다. 사업에 실패하고, 아내가 병들고, 하루 한 끼 먹기가 수월치 않은, ‘그렇게 가장 힘들 때 한 사람의 발자국이 없다?’


그는 화가 나 예수님을 찾아가 따졌습니다. “왜 제가 가장 힘들 때 저 혼자 걷게 했습니까?” 하면서 말이지요. 그때 예수님께서 이렇게 말씀하셨다지요.

“그 발자국은 네 발자국이 아니라 네가 하도 힘들어하기에 너를 업고 간 내 발자국이니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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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 발자국을 돌아봤습니다. 제 발자국은 깊이 패지 않고 그냥 평범합니다. 그러니 두 사람의 발자국은 분명 아닙니다. 조금은 섭섭한 마음에서 고개를 돌려 걷던 중 앞에 다시 고라닌지 노룬지 또 한 마리의 발자국이 보입니다. 그 발자국을 밟지 않으려 조심하면서 걸었습니다.

한참을 가도 앞에는 녀석의 발자국이 계속 보입니다. 다시 돌아봤습니다. 아 그런데… 둘의 발자국이 보입니다. 혼자 걷는다고 생각했던 그 길을 둘이 걸었던 겁니다. 모양은 다르지만 혼자의 발자국보다 둘의 발자국이 훨씬 이뻐 보입니다.


저는 가끔 혼자라고 여길 때가 많았습니다. 집에서도, 직장에서도, 다른 모임에서도 분명 여럿이 하건만 혼자라고 여길 때가 많았습니다. 아니 혼자라고 여기려 했습니다. 그런데 아무리 혼자라고 해도 혼자가 아니었습니다. 오늘 내가 걸어온 길, 두 시간 반 동안 혼자 걸었다고 여긴 그 길이 사실은 혼자가 아니었음에도 혼자라고 여긴 것처럼 말입니다.

어떤 길을 혼자 걷던, 혼자라고 외로워할 필요가 없음을 오늘 깨달았습니다.


*. 오늘 글은 '목우씨의 일기장(2011년 2월 23일)'을 정리한 내용입니다. 내일 2부가 이어지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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