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이 일흔에 풀어놓는 소소한 이야기(제60편)
SK주유소 가까이 이르렀습니다. 잠시 서서 언덕 아래로 내려다봅니다. 세상은 온통 하양 세상입니다. 그저께만 해도 제 빛깔을 지니고 있던 온 누리는 하나의 빛으로 통일되었습니다. 기와집도, 소나무도, 논도, 밭도 모두 하양입니다. 다른 빛깔이 침범할 여지 하나 없이 온통 하양입니다.
문득 어느 화가의 말이 생각납니다.
“만약 우리나라 가을 하늘빛과 겨울 눈빛을 닮은 파랑과 하양 물감을 만들어낼 수 있다면 수채화의 경지를 한 단계 높일 수 있을 텐데…” 하던 말 말입니다.
‘한티 마을’이 바라다 보이는 산등성이에 이르렀습니다. ‘한티’라는 우리 토박이말 대신 마을 들머리 알림판에는 ‘대현(大峴)’이라는 한자어가 보이는군요. ‘한티’에서 ‘한’의 뜻은 ‘큰’이고 ‘티’는 ‘고개’니, 말 그대로 ‘큰 고개 너머 있는 마을’이란 뜻이지요. 이런 참 고운 우리말 이름이 한자어로 사라질 위기에 놓여 있습니다.
제가 사는 ‘달내 마을’도 마찬가지지요. ‘달이 냇물에 비치면 달그림자가 냇물과 함께 흘러가는 아름다운 마을’이란 뜻이 한자어 ‘월천(月川) 마을’로 바뀌었습니다. 그나마 우리 옆마을 이름이 ‘머든 마을’과 ‘늘밭 마을’로 남아 있음을 다행으로 여겨야 할까요?
산등성이 아래로 펼쳐진 마을은 늘 거기를 오가며 본 이들이라야 거기가 마을이라고 여기지 언뜻 지나치는 이라면 모를 정도로 눈으로 덮여 있습니다. 눈보라는 치고 지붕조차 눈으로 덮여 있으니 유심히 보지 않는다면 누가 거기 마을이 있으리라 여기겠습니까.
마을뿐이 아닙니다. 논도 밭도 눈으로 덮여 어디서 어디까지 논이고 밭인지 구별할 수 없습니다. 층계가 져 예쁜 다랭이논과 다랭이밭은 이제 그냥 논과 밭이 됐습니다. 바람에 쏠려 눈이 아래로 모여 층계를 없앴기 때문이지요.
눈은 모든 걸 바꿔버립니다. 아니 눈은 모든 걸 다 감춰버립니다. 그저께만 해도 새마을 입구에 잔뜩 쌓여 있던 시커먼 두엄더미는 야트막한 동산으로 변했습니다.
뿐일까요, 우리말로는 ‘돌골’, 한자어로는 석촌(石村)에 이르니 며칠 전에 이사 온 사람이 내놓은 헌 냉장고와 장롱도 그 모습을 바꿨습니다. 분명히 그저께만 해도 사각의 지저분한 모습이었건만 어느새 추상적이고도 오묘함을 지닌 예술 작품으로 변했습니다.
현상은 겉으로 보이는 모습이라면, 본질은 그 내면 모습을 말하지요. 눈은 현상과 본질을 바꿔놓는 묘한 매력의 소유자입니다. 단순히 바꾸는데 그치지 않고 현상이 무엇이고 본질이 무엇인지를 알 수 없도록 확 바꿔놓습니다.
더욱 눈은 평범한 것을 복잡하고 기기묘묘한 것으로, 더러우면 더러울수록 아름답게 바꿉니다. 차곡차곡 쌓인 건 그냥 차곡차곡 쌓인 것일 뿐이나 울퉁불퉁 어지럽게 쌓인 것일수록 묘한 아름다움을 만들어냅니다. 어느 추상화가에게 이런 능력이 있을까요? 어느 마술사에게 이런 재주가 있을까요?
어떤 이는 이러기에 눈을 싫어한다고 합니다. ‘자기’를 잃어버린다는 거지요. 자기만의 빛깔과, 모습과, 분위기를 다 잃어버려 싫다고 합니다. ‘쓰레기’면 쓰레기여야 하고, ‘꽃’이면 꽃이어야 하는데, 쓰레기도 꽃도 아닌 전혀 새로운 존재가 돼 버리니까요.
그걸 보면서 문득 나의 현상과 본질은 어떨까 하는 생각을 해보았습니다. 남들에게 보이는 모습과 솔직한 제 모습 말입니다. 얼마나 가식적인지 제가 잘 알고 있으니까요. 이런 글로 감추려 하지만 감출 수 없음도 잘 압니다. 그런데도 또 펜을 들었네요.
문득 사진을 찍고 싶었습니다. 아 그런데 오늘 사진기를 들고 오지 않았군요. 늘 들고 다니던 가방에 들어 있는데 오늘은 빈손으로 왔기 때문이지요. 전화기를 들었습니다. 그러나 놓고 말았습니다. 성능이 모자라서가 아닙니다.
아무리 좋은 사진기라도 조물주가 저리도 아름답게 그려놓은 경관을 어쭙잖은 실력으로 찍은들 얼마나 재현할 수 있겠습니까. 어떤 그림쟁이도, 어떤 글쟁이도, 어떤 노래쟁이도, 또 다른 어떤 쟁이도 자연을 그리고, 표현하고, 노래하지만 한계에 부딪치고 말겠지요.
눈길을 그냥 걸었습니다. 그냥 바라보고, 그냥 마음으로만 담아라고 자연은 제게 이르네요. 두 시간을 그렇게 걸었습니다. 둘러봐도 고라닌지 노룬지 모를 발자국과 제 발자국뿐입니다.
아, 다른 발자국도 보이는군요. 집게, 중지, 약지 손가락은 펴고 엄지와 새끼손가락은 모아 눈 위에 찍으면 나타나는 무늬처럼 말입니다. 새 발자국입니다. 꿩은 아닌 것 같고… 아마도 까치 발자국 같습니다. 먹이를 찾아 땅으로 내려온 모양이나 발자국만 남기고 떠났나 봅니다.
이제 산길을 다 내려왔습니다. 앞으로 30분만 더 걸으면 OO네거리에 이르고 거기라면 울산 가는 버스가 다닐 겝니다. 그러면 학교에 제 시간에는 못 가도 종업식엔 참석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나를 찾는 시간,
내 속에서 또 다른 나를 찾는 시간,
아니 내 속에서 나 아닌 부분을 걸러내는 시간.
두 시간에 다할 수는 없었지만 실마리는 찾은 것 같습니다.
*. 오늘 글은 어제에 이어 '목우씨의 일기장(2011년 2월 23일)'을 정리한 내용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