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머니는 한겨울 저의 귓볼을 시리게 한 찬바람이었습니까

나이 일흔에 풀어놓는 소소한 이야기(제57편)

* 어머니, 당신은 한겨울 저의 귓볼을 시리게 한 찬바람이었습니까? *



오늘도 울엄마가 똥을 쌌다. 한 군데, 두 군데, 세 군데 닦아가다가 나는 열에 받쳐 소리쳤다.

“할마시, 정말 이럴 거야!”

그러나 멀뚱히 바라보는 걸 보며 입을 다물 수밖에 없었다.


사실 정확히 말하면 울엄마가 똥을 싸긴 했어도 문제가 있는 건 아니었다. 아침에도 싸 속옷을 버린 바람에 팬티만 입혀 놓았는데, 그 사이에 또 똥이 마려워 싸려고 팬티를 내리다가 제대로 내리지 못하고 - 워낙 급해선지, 아님 내릴 힘이 없어선지 - 누다 보니 그만 팬티에 싸버린 것이었다.

문제는 다음이었다. 그걸 처리하지 못하고 화장실에서 나와 이곳저곳 옮겨다니며 방아를 찧다보니 한 군데, 두 군데, 세 군데… 열군데도 넘게 찍고 다녔던 것이다. 소파 위에, 전기장판 위에, 두터운 요 위에, 심지어는 식탁 의자 위까지 다니는 곳곳 찍혀 있는 공룡 발자국 같은 그 흔적…




중풍이 들면 몸의 한 기능이 마비돼 제대로 활동 못한다. 보통 여자들은 왼쪽이, 남자들은 오른쪽이 마비된다는 말처럼 울엄마는 왼쪽이 마비되었다. 그 마비로 인한 후유증은 심각했다. 일단 걷기가 힘들다. 한쪽이 마비되다보니 성한 쪽을 내밀며 발을 옮겨야 한다. 그 모습은 자벌레가 움직이는 것과 같다.

오른쪽 다리를 움직여 한 걸음 내밀면 왼쪽은 그 뒤로 미끄러지듯 당긴다. 그런 과정을 되풀이하면서 목적지(주로 화장실)로 향한다. 그리고 변을 볼 때는 한 곳의 마비로 인해 필연적으로 악성변비가 되고, 콩알만큼의 덩어리라도 나오게 되면 냄새가 온 집안은 물론 밖에까지 배어나간다.


그러나 치매는 그보다 훨씬 더하다. 우선 당신이 한 행동을 잊어버린다. 예를 들어 밥을 먹었으면서도 안 먹었다고 하거나 밥을 먹지 않았는데도 먹었다고 한다. 다음으로 상상력을 너무 발휘한다. 자식(손자)이 있다면 그 자식(손자)을 상상하며 여러 면을 그려낸다. 아직 어린데도 다 큰 성인으로 보이는가 보다.

중학생밖에 안 된 손녀를 날마다 나이를 먹게 하여 결혼하게 만들고, 아이를 낳게 하는 등 상상으로 꾸며내다가 급기야 그 아이(증손녀)의 이름까지 지어낸다. 덕분에(?) 중학생인 남동생의 딸 조카애는 우리 집에 오는 걸 포기했다. 오기만 하면 ‘니 언제 몸 풀었나?’ ‘배가 홀쭉하네.’ ‘몽실이는 와 안 데리고 왔노?’ 이러매 조카애가 기절초풍함은 당연한 일.




아내가 며칠 전 ‘정말 미치겠어요!’ 하며 내게 새로운 사실을 알려주듯 하는 공룡발자국 얘기에 나는 이미 보름 전에 맛본 상황인데도 처음 깨달은 양 들어주며 맞장구 쳐줬다. ‘정말 미치겠네!’ 하고. 아무리 부부라 해도 감추고 싶을 때가 있다. 아내는 시시콜콜 엄마에 관한 얘기는 다 해주지만 나는 하지 못한다.

보름 전에 처음 맞닥뜨렸을 때의 그 당혹감이란! 이전에도 가끔씩 팬티를 버려놓는 경우가 있긴 했다. 그러나 그때는 팬티만 버려놓는 정도였는데 이번에는 그 차원을 벗어나 버렸던 것이다. 다행히 아내가 나가 있는 때 일 저지르면 나는 엄마에게 욕 섞인 소리라도 내지르며 치우면 되지만 아내가 있을 때 일 저지르면 꽤나 난처해진다.


어떤 일에 대한 괴로움을 십 년 가까이 당하면 이골이 생길 만한데 우리 부부는 그렇지 못하다. '중병 삼 년에 효자 없다.'는 말 그대로 삼 년 동안은 둘 다 노력했다. 그 후 삼 년 동안도 일찍 집에 오면 가까운 시장에 모시고 나갔다. 시장 다니는 걸 무척 좋아해서다. 아니 사람이 그리웠던가. 부축한 채 한 바퀴 돌아오면 두 시간쯤.

그러나 7년쯤 지나면서 지쳐갔다. 나는 도무지 호전될 기미가 없는데서 오는 절망감에서, 아내는 다섯 남매나 되면서도 누구 하나 도와줄 사람 하나 없는 시집사람들(불행하게도 다들 먹고사는 문제로 집에 붙어 있는 사람이 한 명도 없다)에 대한 원망이 컸으리라.




난 명색이 (이제는 물러났지만 당시에) 장애인 복지재단 운영이사다. ‘ㅇㅇ장애인복지센터’라는 이름의 건물에서 정신지체장애아들을 위해 일하는 단체인데, 부끄럽게도 그 아이들을 똑바로 바라보지 못한다. 왜냐면 그 속에서 울엄마를 보기 때문이다. 아직도 내게 따뜻함이 부족해서일까.

아내가 보름 전에 허리디스크 수술을 받았다. 다행히 경과는 좋다고 하는데 앞으로 삼 개월 동안 어떤 일도 해선 안 된다는 의사의 지시에 엄마를 작은누나 집에 보냈다. 그날 나는 울었다. 누나는 장사하느라 낮 12시에 나가 밤 12시에 들어온다. 그 동안 엄마는 혼자가 된다.


사실 우리 집에 있을 때도 혼자일 때가 종종이었다. 그런데 왜 나는 엄마가 누나 집에서만 홀로 있다고 생각했을까. 왜 오늘, 더럽게 추적추적 비가 내리는 이 밤에 울엄마가 보고 싶은 것일까. 방을 엉망진창으로 만든 어느 날, 이제라도 죽으면 춤을 추겠다고 악담까지 내뱉았는데 왜 보고 싶은 것일까.

(이상은 2002년 2월 일기장에서 몇 편을 뽑아내 편집한 내용입니다)




*. ‘귓볼’은 사투리며, ‘귓불’이 표준어입니다. 그럼에도 ‘귓볼’을 늘 쓰던 터라 그대로 썼습니다.


**. 이제 울엄마는 한겨울 저의 귓볼을 시리게 한 ‘바람’이 아니라 귓볼을 따스하게 감싸준 ‘귀마개’라는 걸 이제사 알지만 2004년 하늘로 가셔서 곁에 계시지 않습니다. 혹 글벗님들 곁에 부모님이 살아 계시다면 그 자체로 고마움을 느끼십시오. 저처럼 소중한 추억마저 잊지 않도록 말입니다.

그리고 다행히 지금은 나라에서 지원도 활발하여 경제적으로 도움을 받을 수 있습니다만, 당시엔 제 월급의 1/3을 들여야 가능했습니다. 만약 지금이라면 요양시설이나 요양병원으로 꼭 모셔가시기를. 그래야 환자도 살고 가정도 살아납니다.


***. 사진은 모두 '치매 환자'를 주인공으로 한 Jtbc드라마 [눈이 부시게]의 스틸 컷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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