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마귀, 그리고 당랑거철

나이 일흔에 풀어놓는 소소한 이야기(제55편)

* 사마귀, 그리고 당랑거철 *



텃밭에 들러 콩밭에 물 주려다 콩잎에 뭔가 붙어 있는 듯해 떼 내려는데 섬찟한 기분에 다시 보니 세상에! 사마귀가 초록 보호색이 돼 붙어 있지 않은가. 자칫했으면 만질 뻔했다. 사마귀를 만졌다고 해도, 아니 물렸다고 해도 상처 입거나 치료를 받아야 할 정도는 아니다. 그래도 징그럽지 않은가.

언젠가 모임에 나가 아는 이들이랑 얘기 나누다 한 분으로부터 이런 말을 들었다.
“선생님, 산골에 어떻게 사십니까? 제 처가가 함양군 산골인데 진짜 가기 싫습니다. 바퀴벌레가 워낙 많아서. 그놈들이 가장 징그러워서...”
그 말을 받아 내가 물었다. ‘그럼 뱀은요? 지네는요? 들쥐는요? 말벌은요? 쉰바리는요? 사마귀는요?’ 이렇게 계속 물으니 일위 이위 없이 다 징그럽고 싫다고 했다. 아마 그분의 말에 동의하는 사람이 대부분이리라. 앞에 거론한 파충류나 곤충은 아무리 봐도 봐도 징그럽고 무서우니까.


(콩잎에 붙은 사마귀)



나도 그렇다. 다만 뱀에 물리거나 말벌에 쏘이면 목숨조차 위험하지만, 나머지는 물려도 대충 약만 바르면 괜찮다. 그래도 진절머리 나기는 마찬가지. 그만큼 녀석들에 대한 이미지는 아주 나빠 가까이 하길 꺼려한다. 그 가운데 사마귀는 우리에게 피해를 거의 주지 않지만 외형 면에서 사람을 쫄게(?) 만든다.


사마귀 생태 가운데 한 가지는 워낙 유명해 다 알리라. 짝짓기 중 암컷이 수컷을 잡아먹는 곤충으로. 특히 교미 직후에 잡아먹는데 이때 머리부터 씹어 먹는 경우가 많다. 이런 사실을 빗대 소설이나 드라마 ㆍ영화 제목에 사마귀가 붙으면 여자가 사내를 잡아먹는(죽이는) 에피소드가 반드시 나온다.
아직 제대로 보진 않았으나 올 9월 5일부터 SBS 금토드라마 [사마귀 : 살인자의 외출]에서도 남자를 죽이는 여자 이야기가 나오리라 추측한다. 왜냐면 이 드라마는 프랑스 [La Mante(사마귀)]의 리메이크작인데, 보통 ‘연쇄살인범’ 하면 남자이나 이 드라마에선 여자이기 때문에.


([La Mante] 스틸 컷)



올여름 사마귀를 제법 오래도록 관찰한 바 있다. 시골살이의 장점은 관찰할 거리가 많다는 점이다. 오늘 글의 글감도 그렇게 얻었다.
일단 녀석은 먹잇감을 포착하면 움직임을 최대한 죽이며 미동도 없이 노려본다. 표적이 자기를 사냥꾼이라 인식하지 못하도록. 그러다 아주 느릿느릿하게 뾰족한 삼각형 머리를 들고 이어 톱날 같은 가시가 박힌 날카로운 앞다리를 든다. 이때도 워낙 느려 알아채기 힘들다.
먹이를 노려보는 사마귀의 초록빛 눈은 어떤 감정도 담지 않고, 그저 본능만이 지배하는 냉혹한 사냥꾼의 눈빛이다. 느릿느릿하던 사마귀의 움직임이 번개보다 더 빨라지면서 가시 박힌 앞다리가 펴졌다 접히는 찰나의 순간 먹잇감의 목덜미를 낚아챈다. 그러면 끝이다. 굼뜬 준비 동작에 비하면 먹잇감을 낚아채는 그 순간이 워낙 빨라 표적물이 인식 못하니까.
마지막 압권은 사마귀가 먹잇감을 입에 넣고 씹어먹는 소리다. 특히 살을 발라 뼈를 갉아먹는 소리엔 모골이 송연하다. 왜 호사가들이 사마귀에 억지스럽게 ‘死魔鬼(죽음으로 이끄는 마귀)’란 한자를 붙였는지 알 정도다. 정말 작은 곤충의 생명을 빼앗는 악마 같은 녀석이다.


(먹잇감을 삼키는 사마귀)



사마귀와 관련된 한자성어로 널리 알려진 당랑거철(螳螂拒轍)을 보자. ‘당랑(螳螂)’이 사마귀라 달려오는 ‘수레(轍)에 항거하다(拒)’라는 뜻을 담았다. 원래 당랑거철은 [장자]란 고전에 나온다. 거기 표현된 사례로 보면 ‘자신의 분수를 모르고 강한 상대에게 무모하게 덤벼드는 짓’을 가리킨다.
고전 원문 그대로 풀이하면 위의 해석이 맞다. 그러나 현대적인 관점에서 조금 뒤집어 생각하면 달라진다. 오늘 글의 주제도 거기서 잡았다.

수레가 달려오는데 사마귀가 앞을 가로막으면 깔려 죽을 수밖에 없다. 그건 진짜 어리석고 바보 같은 짓이다. 헌데 다시 한번 보자. 수레가 최대의 속도로 달려오면 다들 제 목숨 살리려 피할 텐데 자기 힘이 모자람을 잘 알면서도 거기 맞서 싸우려 든다면...


(당랑거철 삽화 - 구글 이미지에서)



1989년 베이징 자금성 남문인 천안문 광장에선 공산당에 반대하는 대규모 민주화 시위가 일어났고 이를 ‘천안문 6ㆍ4항쟁’ 또는 ‘천안문 사태’라 부른다. 이날 이 사건을 기억하는 사람은 얼마나 될지 몰라도 ‘탱크맨’이라 불리는 사람이 한 행동은 다 아실 터. 워낙 뉴스에 많이 오르내렸으니까.

천안문 사태 때 중국공산당은 시위를 저지하기 위해 탱크부대를 몰고 나타나 시위대를 밀어붙이려 한다. 다들 겁먹고 피할 수밖에. 그때 한 남자가 나서서 맨몸으로 밀고들어오는 탱크의 앞을 막아선다. 그래서 붙은 별명이 ‘탱크맨(Tank Man)’이다.
그날 기자에 의해 찍힌 그의 사진 -나중에 퓰리처상 수상 -은 전 세계 민주화 운동에 대한 저항과 용기의 상징이 되어 우리들 기억에 오래도록 남았다. 이 사내에게서, 우직한 탱크맨의 자세에서 당랑거철의 모습이 보이지 않는가. 탱크가 바로 밀고 들어왔으면 시신조차 남지 않고 포가 되었으련만.


(천안문 광장의 탱크맨 - 구글 이미지에서)



무모하기조차 당당한 탱크맨의 사진은 그때 내려받아 내 자료첩에 담겨 있었다. 문득 그의 가족이었다면 그 광경을 보았다면 어땠을까? 내 아들이 내 딸이 그 자리에서 탱크를 막아섰다면 ‘저런 미친놈!’ 하지 않았을까? 아들딸의 용기를 칭찬해주기 전에.
13척의 배로 133척 왜선을 쳐부순 이순신 장군의 업적도 당시로선 당랑거철이었다. 다들 육지로 피하자 했을 때 물러서지 않고 싸우려 나갔으니까. 이런 거창한 예 말고도 중소기업이 기술력을 믿고 대기업에 대든다면 그것도 당랑거철이요, 흙수저가 금수저에 맞서 싸움도 당랑거철이다.

나는 여태껏 단 한 번도 당랑거철의 움직임을 보여준 적이 없다. 목숨이 위태롭다 싶으면 피했다. 아니 목숨까지가 아니라 자리만 위태롭다 해도 몸 사렸다. 누가 비난하는 말만 들어도 가슴이 뜨끔해 슬며시 비켜섰다.

아직까지 독이 있거나 징그러운 곤충과 파충류는 죽인 적은 몇 번 돼도 사마귀 단 한 마리도 상처 입히지 않은 까닭이 거기 있는지도 모른다.


콩잎에 붙은 사마귀가 예사롭지 않게 보이는 오늘이다.


(사마귀 그림 - 구글 이미지에서)



<뱀의 발(蛇足)>

사마귀를 달리 '버마재비’라 하는데, ‘범아재비’를 발음 나는 대로 적은 말입니다. 즉 ‘범아재비’는 호랑이를 뜻하는 ‘범’과 ‘아저씨’란 의미의 ‘아재비’가 결합된 어형으로. 곤충 이름에 최강의 포식자 ‘범’이란 호칭을 붙임으로 봐서 옛부터 우리 선조는 사마귀를 예사롭지 않게 봄이 확실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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