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이 일흔에 풀어놓는 소소한 이야기(제53편)
1. 대학입시를 앞둔 1973년 12월 17일
애초 대학 다닐 꿈도 없었고, 형편도 안 되어 공고 화학과에 들어갔는데 하필 냄새에 극히 예민한 체질이라 고3이 되던 어느 날 누나에게 말했다. 어떤 화학공장이든 들어가면 죽을 것 같으니 대학 시험 한 번만 치게 해 달라고. 그땐 가내수공업 운영하던 결혼한 누나의 도움 여부에 운명이 결정되던 처지.
그 시기에 비교적 잘 돌아가던 형편이었던지 선뜻 승낙했다. 대신 입학금만 대주고 나머진 내가 알아서 꾸려나가라고. 3학년 때부터 진학 공부 시작하면서 목표도 세웠다. 그때나 지금이나 없는 집안에서 가장 일어서기 쉬운 길은 고시 통과.
옛날이나 이제나 최고는 서울 법대, 두 번째는 지금과 다르다. 혹 고려 법대나 연세 법대를 떠올릴지 모르나 당시엔 OOO 법대. 그곳은 2차 대학이었고 서울 법대 지원했다 떨어진 아이들이 다시 도전하여 꿈을 키우는 곳이었다.
원서 쓰는 날 담임선생님 앞에 섰다. 이러저러한 사정을 얘기하면서 OOO 법대 진학의 당찬(?) 포부를 밝혔다. 일단 1차 대학으로 가까운 곳 아무 과나 쳐보겠다고 했다. 그러니 연습 삼아 경험 삼아 한번 쳐 보는 걸로. 실력도 없는데 무슨 배짱이었는지...
그때 담임선생님께서 꿀밤을 먹이며, “야 이 녀석아 네 장래를 결정할지도 모르는데 내가 어떻게 아무 과나 써!” 그러자 곁에 있던 국어선생님께서 “야 정OO, 너 국어 잘하잖아. 국문과 써라. 거기도 공부해 볼 만한 과야!”
그렇게 국문과 한 번 쳐보기로 결정했는데 문제는 1차대학 시험 치고 나오는 날 그대로 쓰러져 응급실에 실려갔고, 병명은 장티푸스. 보름간 병원에 강제 격리되어 2차 시험 칠 기회조차 박탈당해, 재수할 형편은 안 되었으니 그걸로 모든 게 끝.
당시 내가 다닐 대학이 남녀공학인 것조차 몰랐으니 국문과가 뭘 하는 곳인가를 알아차리기엔 역부족. 교과서 시 외엔 읽은 적 없고, 소설 역시 무협지 몇 권 읽었을까. 그러니 문학과 전혀 담 쌓고 살았는데...
2. 1970년대 중후반 국문과 시절
그렇게 대학 생활은 시작되었고, 그렇게 문학과 전혀 무관하게 살았던 나는 억지로 문학 수업을 들어야 했다.
다행히, 아주 다행히 신(神)은 나를 불쌍히 봐줬던지 다른 기회를 주었다. 다들 작가 아니면 시인을 꿈꾸었으나 어디 신춘문예가 그리 쉽던가. 대부분 좌절하며 문학에 회의를 느낄 때쯤 새로운 세계가 보였으니 바로 고전문학 중에서도 ‘향가’. 아마 향가 아니었으면 중도탈락했으리라.
국문과가 창작 말고 연구라는 분야가 있음이 얼마나 다행이었던지. 그렇게 향가에 빠져들면서 부산 보수동 헌책방과 대구 반월당 고서점가를 뒤지며 구했던 책들. 계산해 보면 50년 전쯤 일인 데다 당시에 이미 10~20년 지난 헌책이었으니 지금 만지면 부서지는 책도 더러 있을 정도. 그래도 추억과 정이 담뿍 배인 책 아닌가.
허나 몇 년 전 망막박리 수술 뒤부터 눈 상태가 더욱 나빠져 인쇄물 읽기가 힘들다. 아니 십 분만 집중해 읽으면 머리가 아파온다. 날마다 시와 그에 딸린 해설을 써 보낸 지 20여 년, 칠팔 년 전만 해도 직접 시집 사거나 도서관에 가서 빌려 읽은 자료를 바탕으로 했건만, 이제는 컴퓨터에서 인터넷 검색해 올린다.
그리고 눈이 나빠지면서 가끔 한 번씩이나마 들여다보던 50년 가까운 추억 어린 책들을 아예 보지 못한다. 아니 보기야 하지만 읽지 못한다. 눈은 내게서 책을 빼앗아 갔다. 글 쓰는 사람에게 책 읽지 못함은 무척 참담한 일이다. 가끔 시집 보내준다는 이들에게 사정을 얘기하고 조용히 거절할 정도니.
3. 2025년 9월 17일, 책과 헤어지다
재작년부터 책을 떠나보낼 마음의 준비를 끝냈는데 막상 필요로 하는 사람이 나서지 않았다. 전공하시는 분이라면 선뜻 달려들 줄 알았건만. 하기야 이젠 아무리 오래된 옛날 책이라도 다 영인(影印)돼 있거나, 돈만 주면 내려받을 수 있으니 굳이 곰팡내 풀풀 나는 낡은 책이 필요하랴.
하루는 우리 집 앞을 오가는 고물상 아저씨의 트럭을 세워 가져갈 수 있겠느냐 했더니 책 상태를 보고는 고개를 절레절레. 멋지게 양장(洋裝)된 어린이책이나 일단 겉으로 멀쩡한 책이라면 몰라도 이런 책은 안 된단다. 이제 고물상도 기피하게 된 참 억울한 녀석들이다.
그렇게 차일피일 미루다 사흘 전 드디어 결심을 했다. 마지막으로 ‘당근’을 이용해 보기로. 아내는 아무도 가져갈 사람 없다고 했지만. 이번에도 안 되면 그냥 황토방 아궁이에 불쏘시개로 쓸 생각까지 하며 올렸다. 사실 큰 기대는 하지 않은 채.
어 그런데... ‘나눔’으로 올린 지 세 시간만에 세 명이나 신청하는 게 아닌가. 내건 조건 가운데 하나가 ‘국문학 전공자 우선’ 혹 낡은 헌책이라도 구매자가 여럿 나타나면 전공자에게 보내주려는 마음이 통했음인가. 허나 불행히도 다들 전공과는 거리가 멀었다.
첫 사람은 겉이 괜찮은 책만 골라갈 수 있느냐 했고, 다음 사람은 토요일 아는 이를 데려와 보고 결정할 수 있느냐 했고, 세 번째 사람은 차가 없으니 자기 사는 곳까지 가져다줄 수 있느냐 했고...
그렇게 줄 만한 곳이 나타나지 않아 실망할 즈음 여섯 시간이 지나서 한 사람에게서 연락이 왔다. 국문학 전공자라 하면서. 그런 책들이 꼭 필요해 돈을 들여서라도 구입하고 싶다고. 그래서 만났다. 그리고 그날 밤 가장 편한 잠을 잤다.
그분은 현직 국문과 교수였는데 나이로치면 한참 어린 후배. 이런 책들을 구하고 싶던 차 내가 올린 글을 읽고 무릎을 탁 쳤다나. 그렇게 책은 그 교수의 품으로 갔다. 그것도 인연인가.
모두 열일곱 묶음 200여 권 책을 그 교수의 차로 함께 옮기면서 얼마나 기쁘던지. 적어도 불쏘시개나 고물상행은 안 해도 되었으니. 그 교수의 말이 교수연구실에 두고 자기는 심심하면 꺼내 읽어보고, 오가는 제자들이 혹 구경이라도 하면 그걸로 더 큰 교육이 없다나.
헤어지면서 농담 한마디 던졌다.
“교수님, 책을 뒤적이다 제가 30년 전쯤 10만 원짜리 자기앞수표를 넣어두고 찾지 못했는데 혹 나오면 제자들과 간식이라도 드십시오.” 했더니,
“아뇨, 만약 발견하면 돌려드리지요.”
‘아 돌려주지 않아도 됩니다. 수표가 영원히 나오지 않을 테니까요.’ 이는 내 생각.
불쏘시개로나 쓰일 법한 책들이 좋은 주인 만나 좀 더 오래 살기를 희망했던 내 꿈이 마침내 실현되었다. 이 기분에 이번 주는 로또를 사면 최소 2등은 되지 않을까.
*. '잃어버린 책 사진'에 나온 세 권의 책(구글 이미지 활용)은 1980년 초 집에 들른 지인이 몰래 갖고 간 걸로 추정됩니다만 당시만 해도 '책 도둑은 도둑이 아니다'라는 말이 돌았는데다 의심은 갔으나 물증은 없어 추궁할 수도 없었고. ㅠ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