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이 일흔에 풀어놓는 소소한 이야기(제54편)
시골에 살다 보니 아무래도 도시 살 때보단 벌레를 많이 본다. 개미, 콩벌레, 지네, 쉰발이(학명은 ‘그리마’), 귀뚜라미... 어떤 놈이든 성가시다. 여름에 모기, 나방이 하도 들끓을 때는 좋은 벌레든 나쁜 벌레든 한꺼번에 깡그리 없애고 싶어 약을 칠까 하다가 결국 참고 만다.
'가까이하기엔 먼 당신'이지만 그래도 한때 베르나르 베르베르의 [개미]를 읽고는 개미에 푹 빠져 생태를 관찰하기도 했고, 우화 쓰려 자료를 찾다 장수풍뎅이를 만나서는 거기에 재미 붙이지 않았는가. 이러고 보면 나는 끈기가 참 부족한 사람인가 보다. 조금 진득하게 한 가지를 물고 늘어지기보단 변덕이 심하니까. 베르베르처럼 한 가지에 몰두했으면 책 한 권 만들었을 텐데...
몇 년 전 [한겨레신문]에 ‘새가 사라지면 거미가 지배하는 세상이 온다’는 제목의 기사를 읽고선 거미로 방향을 틀었다. 거미가 지배하는 세상이란 말에 어느 정도 고개를 끄덕였기 때문이다. 아직 다른 벌레에 콩깍지 씌지 않았으니 당분간 거미에 매달리지 싶다.
시골에는 거미가 참 많다. 그나마 겨울에는 칩거하는데, 요즘 비가 잦아지면서 군데군데 거미줄이다. 장마철이 아님을 다행으로 여길까. 장마철엔 사흘쯤 집을 비우고 와보면 집 주변에 거미줄 천지다. 납량(納涼) 특집 찍기에 딱 좋다.
거미는 집안에도 간혹 보인다. 언제 어떻게 들어왔는지 주로 화장실 천장에 붙어있지만, 아주 가끔 안방 머리 위에도 보일 때가 있다. 안이든 밖이든 까만색의 집거미류가 대부분이나 노랑과 검정이 골고루 섞인 호랑거미도 가끔 보인다.
거미가 ‘줄을 침’은 생존을 위해서다. 작은 곤충 같은 먹잇감이 걸려들게 만들고, 다른 곳으로 이동할 때도 필요하고, 새끼 곁을 떠나야 할 일이 있을 때 거미줄은 훌륭한 보호막이 된다.
잘 모르는 이들은 거미가 가로 세로 아무렇게나 치는가 보다 하겠지만, 뚜렷한 규칙이 있다. 즉 세로줄을 먼저 치고, 다음에 가로줄을 친다. 세로줄은 점성이 없고, 가로줄은 점성이 있기 때문이다.
헌데 거미도 가끔 이 과정을 까먹을 때가 있나 보다. 사람이 건망증이 심하면 늘상 하는 일의 순서를 잊어버리듯이 거미도 가끔 잊는다. 그러면 자기가 쳐놓은 거미줄에 걸려 애를 먹는데, 혹 거미줄 위에서 온몸을 뒤트는 경우를 본다면 가로줄을 밟았기 때문이다. 그래서 거미는 세로줄만 밟고 다닌다.
거미가 처음 줄을 칠 때는 그냥 몸을 허공에 던진 뒤 천천히 내려오거나 옆으로 옮겨간다. 처음 동작을 보면 마치 높은 곳에서 번지점프 하듯이 툭 자신을 던진다. 두려움 없이 세상에 자신을 던지는 그 장면에 잠시 숙연해진다.
가끔씩 헛발질도 하고, 어디 붙을 데를 못 찾아 대롱대롱 매달려 아찔한 순간이 연출되기도 하나 그래도 발길질을 멈추지 않는다. 아슬아슬하게 곡예하듯 지평을 늘려간다. 한 줄 친 다음 그 곁에 평행하게 또 친다. 처음과 마찬가지로 자신을 내던진다.
우리가 보면 아주 짧은 거리이나 거미 덩치에 비하면 열 배 스무 배, 어떤 땐 백 배나 긴 거리다. 그러니 험난한 세상을 향한 도전이다. 거침없는 도전이다. 헌데 세로줄을 치고 난 뒤 가로줄을 칠 때면 꽤나 조심스러워진다. 줄과 줄 사이의 짧은 거리만 가면 되는데도 말이다.
세상을 알게 되었음인가? 그래서 몸사림인가? 세로줄 위로 한 땀 한 땀 엮어가는 그 모습이 너무너무 조심스럽다. 한 발 한 발 옮기는 모습이 안쓰러울 정도다. 그냥 옮겨 걸으면 걷는 대로 길이 되고 집이 되는데 …
우리들도 나름의 줄을 친다. 나도 거미처럼 줄을 친다. 내 세계를 찾기 위해 처음 칠 때는 거미처럼 무모하게 헛발질하기도 했다. 일부러 여기저기 부딪치기도 했다. 어떤 땐 제법 큰 상처를 입기도 했다. 그래도 다음날이면 또 덤벼들었다. 헌데 지금은 다 잊었다.
세로줄을 칠 때 그렇게 용감했던 거미가 가로줄을 치면서 조심하듯이 나도 신중하다 못해 비겁해 보이기까지 한다. 그러다 보니 거미가 너무 신중하여 자기가 쳐놓은 줄에 걸려 애를 먹듯이 나도 내가 쳐놓은 줄에 걸려 꼼짝달싹 못할 때가 있다. 분명히 내가 편하도록, 내게 맞도록 쳐놓은 줄이건만 뻔히 보면서도 내가 쳐놓은 그것에 걸려 낭패를 보곤 한다.
거미는 줄을 약하게도 강하게도 아닌 적당하게 친다. 너무 약하게 치면 메뚜기 같은 좋은 먹잇감은 다 빠져나가고, 너무 강하게 쳤다가 혹 작은 새라도 걸리면 큰일이다. 새 크기라면 그냥 가만있을 리 없으니 빠져나가려고 몸부림칠 것이고, 그러면 애써 만들어놓은 거미줄이 다 망가지고 자칫하면 잡아먹히기도 하니까.
나는 늘 내가 쳐놓은 거미줄 안에서만 논다. 거미가 자기가 쳐놓은 거미줄 안에서 놀 듯이. 새로 칠 공간이 많건만 꼭 눈에 보이는 그 안에서만 움직인다. ‘툭’ 하고 던질 곳이 있어도 몸 사린다.
요즘 내가 쳐놓은 거미줄을 가끔씩 본다. 너무 강하게 친 게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든다. 강하게 친 거미줄일수록 다시 망가뜨리고 새로 시작하기 어렵다. 적당히 느슨해야 탄력성이 붙어 이리저리로 옮겨갈 수 있는데 너무 단단하게 고정돼 있다. 뜯어내기 힘들 정도로.
이상하다. 왜 내가 움직일 공간을 스스로 부자연스럽게 만들까? 안에서 놀고 싶으면 놀고 밖으로 빠져나가고 싶으면 나갈 수 있도록 적당히 느슨한 거미줄로 갈아치울 결심을 왜 하지 못했을까?
이젠 다른 세계로 나아가려는 마음을 잊었을 뿐 아니라, 누가 내 세계로 들어오는 것조차 막고 있다는 생각이 든다. 큰일이다. 정말 확 걷어내야 할 텐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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