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402편 : 조은 시인의 '동질'
@. 오늘은 조은 시인의 시를 배달합니다.
동질(同質)
조은
이른 아침 문자 메시지가 온다
- 나 지금 입사시험 보러 가. 잘 보라고 해줘. 너의 그 말이 필요해.
모르는 사람이다
다시 봐도 모르는 사람이다
메시지를 삭제하려는 순간
지하철 안에서 전화를 밧줄처럼 잡고 있는
추레한 젊은이가 보인다
나도 그런 적이 있었다
그때 나는 잡을 것이 없었고
잡고 싶은 것도 없었다
그 긴장을 못 이겨
아무 데서나 잠이 들었다
망설이다 나는 답장을 쓴다
- 시험 잘 보세요, 행운을 빕니다!
<시집 [생의 빛살](2010년)>
#. 조은 시인(1960년생) : 경북 안동 출신으로 1988년 계간 [세계의문학]을 통해 등단. 현재 서울 사직동의 작고 허름한 한옥에 혼자 살면서 도시 변두리 사람들의 아픔을 노래한 시를 많이 씀.
여담입니다. 인터넷에 조은 시인의 시를 찾으려 ‘조은 시’ 하고 쳤더니, ‘조은 시인의 시’ 대신 ‘좋은 시’만 잔뜩 나타났습니다. ‘조은’ 시인은 ‘좋은’ 시를 많이 쓰는 시인입니다.
<함께 나누기>
휴대폰의 공해만 가득한 세상에 에피소드 하나 붙들어 시인은 참 고운 시를 만들었습니다. 입시와 입사의 계절이 서서히 다가옵니다. 누구는 합격의 영예를, 누구는 실패의 아픔을 겪게 됩니다.
그 가운데서도 올 졸업생보다 취업 못한 작년, 재작년 졸업생에겐 정말 '행운'이 찾아오기를 간절히 비는 시기이기도 합니다.
화자는 지하철 타고 볼일 보러 가는데 웬 문자가 뜹니다.
"- 나 지금 입사시험 보러 가. 잘 보라고 해줘. 너의 그 말이 필요해 -"
이런 문자를 받으면 대부분 그냥 지워버릴 겁니다. 아니면 ‘잘못 보내셨군요.’ 하고 답장 보내는 조금 친절한 사람도 몇 분 계시겠지만. 화자도 그냥 지우려다가 지하철에서 '전화를 밧줄처럼 잡고 있는 추레한 젊은이'를 봅니다.
평소라면 아무렇지 않게 넘겼으련만 잘못 보내온 문자가 준 여운이 그 젊은이를 다시 보게끔 합니다. 화자의 눈에 이제 그 젊은이는 낯선 사람이 아니라 어느 회사에 원서를 넣어놓고 거기로부터 합격의 전화를 기다리는 이로 비칩니다. 그 순간 그 젊은이는 남이 아닙니다. 바로 젊었을 때의 자신과 닮은, 즉 동질감(同質感)을 느끼게 하는 존재입니다.
“그때 나는 잡을 것이 없었고 / 잡고 싶은 것도 없었다 / 그 긴장을 못 이겨 / 아무 데서나 잠이 들었다”
누구나가 젊을 때 한 번쯤은 겪게 되는, 아무것도 확실히 보이는 미래가 없고, 땅에 발을 디뎌도 닿지 않을 것만 같고, 절망감보다 더 무서운 무력감에 절어야 했던 그 시절의 '나'가 젊은이 모습으로 투영됩니다. 즉 바로 나 자신이 됩니다.
“시험 잘 보세요, 행운을 빕니다!”
이 한 마디 격려의 말이 얼마나 따뜻한지요. 요즘 세상엔 남의 일에 관심을 가지지 않습니다. 관심 가지는 사람이 바보 취급받는 시대이니까요. 혹 모임에 가더라도 남의 이야기를 들으려는 이는 보이지 않는 대신 자기 말만 늘어놓으려는 사람들로 가득차 있습니다.
경제가 어려워 졸업생들의 취업이 어렵다고 해도 자신과 가족이 관련 없으면 남의 일입니다. 물론 입으로야 나라와 경제 걱정하는 말을 때때로 늘어놓겠지만. 저도 그렇습니다. 자식이 결혼하고 직장 가지고 집 사고 화려하진 않아도 나름 중간쯤 사니 집 걱정 취직 걱정은 하지 않습니다.
모르지요, 손주들이 고등학교 다니면 진학 뉴스, 더 자라 취직할 때가 되면 그때 다시 취직 관련 뉴스 한참 보겠지만.
몇 년 전에 아는 이로부터 들은 엉뚱한 문자 받은 일화를 덧붙입니다.
“당신 사는 아파트 앞을 지나다 그냥 한 번 눌러봤다.”
처음에는 매우 황당했답니다. 전화번호부에 없는 사람이라 어떤 사람인지, 특히 무수히 염문을 뿌렸으니 수많은 여인들의 얼굴이 스쳐갔고... 첫사랑 둘째 사랑 셋째 사랑... 아무리 녹슨 머리를 굴려 봐도 잘못 부쳐온 듯했답니다.
왜냐면 일단 자기는 아파트 아닌 주택에 살고, ‘눌러봤다’는 반말투가 보낸 이가 남자라는 느낌이 들어서. 그래서 무시하려다 아주 조심스럽게 답했답니다. 또 다음에 이런 문자가 올까 봐 막으려는 의도였다고 보면 되겠지요.
“문자를 잘못 보낸 것 같습니다. 저는 현재 주택에 살고 있으며 환갑 다 된 늙은 남자랍니다. ”
몇 초도 안 돼 바로 답이 왔답니다.
“아 죄송합니다. 제가 번호를 잘못 눌렀군요. 다시 한번 죄송합니다.”
그러고 끝났는가 싶었는데 십 분쯤 뒤에 또 문자가 왔답니다.
“죄송하지만... 아주 죄송하지만 제 문자 지워줄 수 없겠는지요.”
다음 이어지는 이야기는 생략하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