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우씨의 詩詩하게 살자(403)

제403편 : 장하빈 시인의 '달의 수레바퀴를 끌고 간'

@. 오늘은 장하빈 시인의 시를 배달합니다.


달의 수레바퀴를 끌고 간
장하빈

외양간 옆 감나무 가지에
달이 덩그러니 걸렸다
집 나간 송아지 찾아오라고

휘영청, 등불 밝혀 놓은 거다
한밤중 텅 빈 외양간에
달빛 주르르르 흘러들었다
이 집에서 늙은 저 달,
쇠잔등 타고 놀던 그때가 몸속에 사무쳤던 것

달은 소의 그렁그렁한 눈망울 닮았다

그믐 지나 달그림자 보이지 않았다
어미 소가 달의 코뚜레 꿰고서
먼 길 떠나고 나서였다
- [까치 낙관](2012년)

#. 장하빈 시인(1957년생, 본명 ‘장지현’) : 경북 김천 출신으로 1997년 [시와시학]을 통해 등단. 중등학교 교사로 근무하다가 명퇴한 뒤, 현재 팔공산 자락에 ‘다락헌’이란 이름의 글방을 지어 머물며 시를 씀.




<함께 나누기>

처음 달내마을로 이사 왔을 때 이웃 가음댁 어르신과 얘기 나누다 그분이 제게 물었습니다. “정 선상님, 도시에선 애완견이라 하데요. 왜 그런 이름으로 부릅니꺼? 애완견이라 할 것 같으면 애완소가 먼저여야 할 낀데...”
듣고 보니 오래전엔 ‘똥개’에서 그냥 집 지키는 개란 뜻의 ‘집개’로, 집개에서 ‘애완견’으로, 다시 ‘반려견’으로 어휘가 변했습니다. 헌데 소는 변하지 않았습니다. 그냥 그대로 소입니다. 논밭갈이 도와주든, 팔아먹기 위해 키우든 다 소로 불렸습니다. 애완소 반려소가 된 적 한 번도 없는.

시골 사람에겐 참 이상했을 겁니다. 농사에 도움 되는 소보다 양식만 축내는 개를 더 우대해 주는 풍토가. 늘 뒷전이던 소가 안타까웠는지도. 시골 사람과 소의 관계는 지금의 반려견 반려묘나 다름없었습니다. 얼마나 애지중지 보살펴주었는지. (물론 개와 소를 비교하자는 의도는 아닙니다)

시로 들어갑니다.

“외양간 옆 감나무 가지에 / 달이 덩그러니 걸렸다 / 집 나간 송아지 찾아오라고”

예전에 가족 가운데 한 사람이 밤이 깊어도 들어오지 않으면 집 대문에 밤새도록 등불을 달아놓았습니다. 집 나간 송아지가 들어오지 않자 등불 대신 달이 덩그러니 떠 주위를 밝힙니다. 등불을 대신한 달의 비유가 참 멋있습니다.

“휘영청, 등불 밝혀 놓은 거다 / 한밤중 텅 빈 외양간에 / 달빛 주르르르 흘러들었다”

어미 소에게 송아지는 얼마나 소중할까요? 그 안쓰러움을 달래주려고 달빛이 어미소가 머무는 외양간까지 흘러들어 왔습니다. 밖에 나가 아직 들어오지 않은 자식을 기다리는 부모 마음처럼 텅 빈 자식의 방을 몇 번이나 들여다보듯이 어미 소도 빈 외양간을 보고 또 봅니다.

“달은 소의 그렁그렁한 눈망울 닮았다”

소의 눈은 늘 슬픔에 젖어 있는 듯 언제나 그렁그렁합니다. 이웃 가음댁 어르신이 늘 하시던 말입니다. '소는 참 불쌍하다'고. 개의 먹이를 밥이라 하여 ‘개밥’이라 부르나, 소의 먹이는 죽이라 하여 ‘소죽’이라 부른다고. (죽보다 밥을 우선시하던 옛사람의 심정으론 이해 안 되었을지도.)

“그믐 지나 달그림자 보이지 않았다 / 어미 소가 달의 코뚜레 꿰고서 / 먼 길 떠나고 나서였다”

‘어미 소가 먼 길 떠났다’라는 표현에서 팔려갔거나 잔치 같은 큰일이 생겨 사람들 입에 들어갔다는 뜻으로. 천체의 운행 법칙상 그믐 지나면 잠시 달그림자가 보이지 않는 날이 잠깐 생깁니다. 그 당연한 이치를 시인의 눈엔 달리 보입니다.
이렇게 해석하면 이 시는 시골의 전원적 목가적 분위길 불러일으키는 그런 시가 됩니다. 이제 시 해석의 방향을 바꿔 봅니다. 시인에 관한 배경지식을 알고 대입해 보는 방식으로.

‘어미 소가 먼 길 떠났다’를 ‘집 나간 송아지(자식)를 찾아나섰다’로 새겨도 됩니다. 시인에게 이즈음 아들을 잃은 아픔이 있기에. 허면 ‘달그림자가 보이지 않았다’ 함을 애지중지 아꼈던 자식을 잃은 세상을 캄캄한 어둠밖에 없는 현실로 파악함이라고.
그러면 앞에서 넘겨버린 '이 집에서 늙은 저 달'은 어미 소(부모)를 비유한 말이 될 것이고, '쇠잔등 타고 놀던 그때가 몸속에 사무쳤던 것'은 그렇게 사이좋게 지냈던 부모와 자식 간의 정이 흐르던 시절이 사무치게 그립다는 뜻이 되겠지요.

오늘 시는 배경지식을 바탕으로 ‘달과 소의 대응 의미’를 이해하고 읽는 경우와, 시에 쓰인 글자 그대로의 표현에 충실하며 읽는 경우에 따라 느낌이 달라질 것입니다. 당연히 어느 해석이 더 낫다는 말은 아닙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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