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우씨의 詩詩하게 살자(404)

제404편 : 채호기 시인의 '세상보다 어미가 필요했던'

@. 오늘은 채호기 시인의 시를 배달합니다.


세상보다 어미가 필요했던
채호기

아주 오래전 아들 녀석이 유치원 다닐 때 길가에서 병아리 한 마릴 사 왔다. 병아린 줄 알고 사 왔겠지만 오리새끼였다. 한나절 내내 귀엽다고 같이 놀더니만, 어느새 녀석은 다른 놀이에 빠져 오리는 구석을 굴러다니는 노란 실뭉치가 되었다. 그다음부턴 오리가 내 발뒤꿈치와 떨어지지 않으려 했다. 방으로 가면 방으로 따라오고, 마루에 가면 마루로 따라왔다. 제법 소리를 내기도 하고 중심을 잡으려 날개 같지도 않은 날개를 펼치기도 하면서 잠깐도 떨어지려 하지 않았다. 다리를 펴고 앉으면 발뒤꿈치에 머리를 기대고 잠이 들었다. 오리는 내 발뒤꿈치를 제 어미라고 생각한 것일까? 자신의 한 부분이라 생각한 것일까? 언젠가 자신의 본모습을, 자신의 삶의 처지를 알아채고 홀로 오리가 되어 세상을 살아가지 않을까 기대했는데, 겨울의 어느 오후에 죽음으로 독립했다. 햇빛 드는 마루에 노란 잔디를 입힌 무덤 한 채가 되었다. 세상보다 어미가 필요했던 오리, 어떻든 나 혼자 살아가야만 하는 지금 갑자기 생각난다.
- [레슬링, 질 수밖에 없는](2014년)

#. 채호기 시인(1957년생) : 대구 출신으로 1988년 [창작과비평]을 통해 등단. 18년 동안 [문학과지성] 대표이사를 역임했고, 오랫동안 서울예술대학 문창과 교수로 계시다 퇴직.




<함께 나누기>

오리농장 유튜브를 보다가 새끼 오리들이 그 집에 사는 진돗개를 어미처럼 졸졸 따라다니는 모습을 보고 의아해했습니다. 알고 보니 오리는 태어나서 2, 3주 안에 본 움직이는 대상을 어미로 인식하고 따라다니는 '각인 현상'이란 본능을 지닌답니다.
노벨 생리학·의학상 수상자 콘라트 로렌츠 박사는 동물이 태어나서 처음 본 움직이는 대상을 부모로 여기는 현상을 ‘각인’이라고 명명했는데, 각인은 오리만이 아니라 다른 조류에게도 나타나고, 각인 박힌 동물은 즉각적으로 대상과 유대 관계를 형성해 생존에 필요한 기술을 터득한답니다.

시로 들어갑니다.

오늘 시는 맨 앞에 언급해 놓았듯이 행과 연의 구별 없이 줄글로 죽 이어진 산문시입니다. 이런 산문시는 일상적 표현과 시적 요소를 결합해 읽는 이에게 감성적 느낌을 주어 스스로 그 장면을 떠올리며 읽게 만든답니다.

“한나절 내내 귀엽다고 같이 놀더니만, 어느새 녀석은 다른 놀이에 빠져 오리는 구석을 굴러다니는 노란 실뭉치가 되었다.”

‘노란 실뭉치’, 이 표현에서 느껴지는 뭔가가 있습니까? 노란빛은 당연히 오리 새끼의 빛깔이겠지만. 예전에 우리네 여인들은 실뭉치를 쓰고는 제대로 정리하지 않고 그냥 놔두는 경우가 많았습니다. 그러면 실뭉치는 방구석에 밀려나 있고. 그러니까 현재 새끼오리의 처지로.

“그다음부턴 오리가 내 발뒤꿈치와 떨어지지 않으려 했다. 방으로 가면 방으로 따라오고, 마루에 가면 마루로 따라왔다.”

앞에서 설명한 ‘각인 현상’이 그대로 엿보이는 장면입니다. 오리 새끼는 방 한구석으로 밀려나 천덕꾸러기가 되었습니다. 그다음 오리 새끼가 나아갈 방향은 뻔하지요, 자신의 어미를 임의로 만드는. 바로 어미로 선택된 이가 화자입니다.

어미의 자격은 따로 없습니다. 사람이 가장 좋겠지만 사람 아니어도 반려견 반려묘 같은 다른 동물도 됩니다. 아니 심지어 움직이는 기능을 지닌 장난감 인형도 가능하다고 합니다. 누가 실험하니 배터리를 장착한 토끼 인형이 가는 데로 따라가더랍니다.

“언젠가 자신의 본모습을, 자신의 삶의 처지를 알아채고 홀로 오리가 되어 세상을 살아가지 않을까 기대했는데, 겨울의 어느 오후에 죽음으로 독립했다”

화자 입장에선 자기가 무한정 어미가 돼 줄 수 없으니 스스로 독립하길 바라며 조금 떨어뜨리려 했던가 봅니다. 그게 치명타가 되었고. ‘죽음으로 독립했다’라는 표현에 참 먹먹해집니다. 어미로부터의 독립보다는 죽음이 차라리 더 편해서일까요.

“세상보다 어미가 필요했던 오리, 어떻든 나 혼자 살아가야만 하는 지금 갑자기 생각난다”

오리에게 필요한 건 스스로 삶의 길을 찾아 나서는 독립이 아니라 끝까지 곁을 지켜주는 어미였습니다. 오리의 마음과 사람의 마음이 서로 어긋나는 장면입니다. 하기야 사람이 사람을 이해하기도 힘든데 어떻게 동물의 마음을 이해할 수 있을까요?

몇 년 전 뉴스에서 본 내용입니다.
겨울이 되자 어렵게 사는 사람에게 대한 경제적 지원 대책이 쏟아지던 그때, 한 기자가 쪽방촌을 찾아 거기 사는 사람을 인터뷰했습니다. 그때 거기 사는 한 어르신의 답이 제 가슴을 세게 치는 바람에 그 대사를 잊지 못합니다.
“정부에선 우리를 제대로 이해하지 못하는 것 같다. 물론 돈도 양식도 필요하지만 가장 필요한 건 외로움을 덜어줄 지원이라고.”



*. 첫째는 강아지를 어미로 인식하여 따르는 장면, 둘째는 고양이를 어미로 인식하여 품에 파고드는 새끼오리입니다. 둘 다 구글 이미지에서 퍼왔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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