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92편 : '개밥바라기'를 바라보며
며칠 전, 저녁 늦게까지 밭일하다가 고개를 드니 제법 어둠이 밀려들었다. 일할 때는 거기 집중하느라 어둠이 다가오는 줄 몰랐는데... 허리 펴 기지개를 켜다가 문득 서쪽 하늘을 보자 달 대신 반짝이는 별이 보였다. ‘개밥바라기’였다.
개밥바라기는 개가 배고파 저녁밥을 바랄 무렵에 서쪽 하늘에 잘 보이는 별이라고 해서 붙여진 이름이다. 예전 태백이(풍산개)가 살아 있을 때 저녁밥 주러 나가면 보던 별이었다. 그랬는데... 태백이가 하늘로 가면서 개밥바라기를 잊고 살았다.
산골 사는 장점 하나는 별을 실컷, 그리고 또렷이 볼 수 있다는 점이다. 집 앞 가로등 불빛만 살짝 가리면 별도 은하수도 훤히 보이니까. 덕분에 별자리 이름도 별 이름도 몇 개는 주절주절 나불거릴 수 있게 되었다. 괜히 아는 체하다 고수에게 걸리면 창피당하지만.
개밥바라기는 우리 아는 이름으로는 ‘금성’이다. 금성은 아시다시피 우리 지구와 가까이 있는 행성으로 저녁이나 새벽에 선명한 빛을 내뿜는 별이다. 아마도 태양계 행성 가운데 금성은 가장 많은 이름을 가졌으리라. 뜨는 시간에 따라서, 지방에 따라서 여러 이름으로 불리니까.
금성이 저녁때 서쪽 하늘에 보일 때는 ‘개밥바라기, 태백성, 어둠별, 장경성(長庚星)’ 등으로 불린다. 그러다 별이 질 즈음 즉 새벽하늘에 잠시 보일 때는 ‘샛별, 명성(明星), 계명성(啟明星)’으로 불린다.
우리나라에선 여러 이름 가운데서도 '샛별'과 '개밥바라기'가 가장 널리 알려져 있다. 이러니 이런 이름을 글감으로 시 또는 소설로 썼다. 개밥바라기를 글감으로 쓴 소설 가운데 가장 기억에 오래 남는 작품은 황석영 작가의 [개밥바라기별]이다.
이 작품은 '성장소설'로, 성장소설은 주인공이 아픔을 겪으며 성인으로 성장해 가는 과정을 묘사ㆍ서술함이 일반적이다. 이 소설도 그렇다. 주인공인 유준이 군에 입대해 베트남 전쟁에 차출되어 가기 전 ‘특별휴가’를 나와 어머니와 동생이 있는 서울집에 올라오면서 시작된다.
장편소설이니 줄거리를 일일이 언급함은 내가 쓰는 글과는 거리가 멀 뿐이라, 다만 개밥바라기와 관련 있는 부분만 뽑아본다.
“비어 있는 서쪽 하늘에 지고 있는 초승달 옆에 밝은 별 하나가 떠 있었다. 그가 덧붙였다. 잘 나갈 때는 샛별, 저렇게 우리처럼 쏠리고 몰릴 때면 개밥바라기. 나는 어쩐지 쓸쓸하고 예쁜 이름이라고 생각했다.”
잘 나갈 때와 못 나갈 때 부르는 이름이 다르다는 사실이 우리를 슬프게 한다. 아니 아프게 만든다. 경찰을 ‘경찰관님’ 하고 부르던 시절과 ‘짭새’라 부를 때는 다르다. 범죄자를 잡으러 다니는 새란 뜻의 잡새에서 짭새로 변했다 한다.
요즘 검사를 비하해 ‘검새’라 낮춰 부르기도 한다. 예전 '검사님'보다 더 극존칭인 '영감님'(조선시대 정3품 이상 고위 관리를 지칭하는 존칭)이라 대접받았는데... 이렇게 호칭도 길짐승(주로 개)이 들어가면 낮춤말이 되었다가, 이제는 조류가 그 자리 차지함이 씁쓸하다.
어느 누구의 귀에든 샛별보다 개밥바라기가 듣기 좋지 않을 터. 만약 금성에게 이름 선택의 기회를 준다면 개밥바라기보단 샛별을 모다 원하리라. 다행히 금성의 외국어는 다 이쁘다. 로마신화에서는 ‘베누스’ 여신으로 나온다. 영어로 바꾸면 미의 여신인 ‘비너스’가 되고.
그리스어로는 ‘아프로디테’라 하며, 일본에서는 ‘하지로보시(緞白星, 단백성)’라 하는데 ‘백색의 비단 별’이라는 뜻이 담겼다. 또 터키어로는 목동들이 이 별이 뜰 무렵 깨어나 양떼를 이끌고 고원으로 올라갔다 해가 넘어간 뒤 다시 이 별이 뜨면 집으로 돌아갔다는 데서 ‘목동별’이라는 이름이 붙었다.
이로 보면 금성을 부르는 이름은 대부분 좋은 뜻을 가졌으나, 개밥바라기처럼 애달픈 이름을 붙인 건 우리네뿐이리라. 분명 샛별은 부르기도 좋고 의미도 좋은데. ‘샛’이 동(東)을 뜻하니 '동쪽 하늘에 아침을 열며 반짝이는 별'이란 뜻이므로.
조선 영조 때 영천군수를 지낸 이재의 시조를 보자.
“샛별 지자 종다리 떴다 호미 메고 사립 나니 / 긴 수풀 찬 이슬에 베잠방이 다 젖는다 / 아이야 시절이 좋을 손 옷이 젖다 관계하랴”
뭔가 활기차고 생기가 폴폴 나지 않은가. 당장이라도 샛별 보며 바깥에 나가 일하고 싶지 않은가. 그래서 샛별에 더 정감이 가리라.
허지만 내게는 개밥바라기가 아직 더 좋다. 왜냐면 태백이가 떠오르기 때문에. 녀석이 하늘로 간 지 6년이 다가오는데 아직도 내 눈에 선하다. 워낙 사랑해서? 아니 워낙 푸대접한 죄책감으로 하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