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향가 이야기(제17편)

제17편 : 우적가(遇賊歌)

♤ 향가 이야기 ♤



- 제17편 「우적가(遇賊歌)」 -


오늘은 ‘도적(賊)’을 ‘만난(遇)’ 이야기를 노래로 만든 영재라는 이가 지은 「우적가」를 소개합니다. 「영재우적가」, 「도둑 만난 노래」, 「도적가」 등으로도 불리는 원성왕 때 나온 10구체 향가입니다.

먼저 배경설화부터 살펴봅니다.

“승려인 영재는 재주가 뛰어나고 재물에 관심 없고 향가를 잘 하였다. 그가 늙어 은거하려고 산중을 찾아가는데 대현(청도군 ‘한재’)에서 도적떼가 나타나 칼을 들이대도 조금도 두려워하지 않자, 도적들이 이상하게 여겨 그의 이름을 물으니 영재라 하였다.
도적들은 오래 전부터 그 이름을 알고 있어 그에게 노래를 지으라고 명하자 영재가 이 노래를 지어 불렀다. 그 노래를 듣고 도적들이 감동하여 자신들의 행동을 뉘우치고 비단 두 필을 주고자 하자 영재가 '재물은 죄악의 근본'이라고 하며 받지 않았다.
이에 도적들은 더욱 감동하여 칼과 창을 버리고 머리를 깎고 영재의 제자가 되었으며, 지리산에 들어간 뒤 다시는 세상에 나오지 않았다고 한다.”


(영재가 도적 만났다는 경북 청도군 '한재')



이어지는 노래는 다음과 같습니다. (이 향가는 빠진 글자가 많아 학자들마다 해석의 차이가 많은데, 김완진 교수의 해독을 옮깁니다.)


“제 마음의
모습이 볼 수 없는 것인데,
일원조일(日遠鳥逸) 달이 달아난 것을 알고
지금은 수풀을 가고 있습니다.

다만 잘못된 것은 강호(强豪)님,
머물게 하신들 놀라겠습니까.
병기(兵器)를 마다하고
즐길 법(法)을랑 듣고 있는데,

아아, 조만한 선업(善業)은
아직 턱도 없습니다.”

좀 더 쉽게 풀어봅니다.

“지금 나는 내 마음 속 세속의 번뇌를 벗어버리고, 깊은 산중으로 수도를 하러 가는 수도승이다.
너희들 칼에 내가 찔리면 좋은 날이 바로 올 것이라 슬플 것이 없지만,
아직도 정진해야 할 길은 멀리 남아 있는데,
그렇게 무참히 명을 끊을 수 있겠느냐.”


「우적가」의 배경설화에서 나타난 내용으로 유추해 볼 때 이미 영재 스님은 향가 가수로 이름난 분이셨습니다. 요즘 식으로 말하면 당대 인기가수(?) 이를 통해 알 수 있는 사실이 둘입니다. 하나는 향가가 꽤 유행하여 노래 부른 이를 다 안다는 사실입니다. 이는 향가 성격 규정에 중요한 내용이 됩니다. 즉 향가는 당시 일부 계층이 아니라 신라인들이 모두 즐겼다는 사실.
다른 하나는 도적들까지도 향가를 좋아했다니 이 시절에는 불교노래가 절 안에서만 불렀던 게 아니라, 바로 민중의 생활 속에 그들의 삶과 함께 하고 있었다는 사실입니다. 즉 불교노래를 항시 부르며 생활했다고 봅니다.


('한재'가 지금은 미나리로 유명함)



끝내면서 이향아 시인의 「우적가」란 시를 덧붙입니다.

- 우적가(遇賊歌) -
이향아

만약, 대낮에 도적과 마주치면
나는 아마도 시선을 피하게 될 것 같다
그가 도적이라는 것을 아직 모르고 있는 척,
그것을 믿게 하려고 나는 그에게 아첨할는지도 모른다
오밤중에 도적을 만나면 나는 눈을 뜨지 않을 것이다
더 깊은 밤 속으로 빠져 있는 듯 잠꼬대를 지어낼 것이다.
밤이고 낮이고 도적을 만나건만 나는 만나지 않을 것이다
목숨을 도둑맞지 않기 위해 소리치지 않을 것이며
내 것을 도둑맞지 않으려고 도둑을 도울는지도 모른다

나는 도둑보다 더 추워 떨고 도둑보다 열 배나 불행할 것이다.
나는 도둑보다 먼저 고발당할 것이며 유구한 세월 징역을 살 것이다.
나는 오히려 편안할 것이다
나의 도피는 끝이 났다고, 본래의 고향을 찾았다고
나는 드디어 한 기다림의 끝을 바라보게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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