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415편 : 박주택 시인의 '새벽이 온다'
@. 오늘은 박주택 시인의 시를 배달합니다.
새벽이 온다
박주택
저렇게 새벽이 밀려 들어오면 밤을 의지하던 사람들은
어디로 가라는 것인가. 어둠 속에서, 어둠의 마음속에서
몽롱한 노래들이 몸을 비벼주었건만
저렇게 소리 없이 새벽이 밀려와 거뭇한 자세로
사람들을 세워두면 이들은 또 어디로 숨어들란 말인가.
어둠에 몸을 풀고 어디론가 흩어지는 사람들
새벽은 아가리를 벌려 하늘의 수많은 별을 잡아먹고
핏빛 광선을 세상에 흩뿌리는데, 어둠이 사라지자
사람들이 제 속에 어둠을 만들어놓고 한사코 그 속에
스며들고 있는데, 아아, 아가리가 있는 것은 무섭다
- [카프카와 만나는 잠의 노래](2006년)
#. 박주택 시인(1959년생) : 충남 서산 출신으로 1986년 [경향신문] 신춘문예를 통해 등단. 밝음보단 어둠을, 희망보단 절망 속에 사는 이들에 눈길 주는 시를 많이 쓰며, 제20회 ‘소월시문학상’을 수상했으며 현재 경희대 국문과 교수로 재직.
<함께 나누기>
우리 대부분은 ‘어둠을 헤치고 밝은 해가 떠오르다’, ‘어둠이 지나면 아침이 오듯이 암울한 날이 끝나면 희망의 날이 온다’ 하는 식으로 어둠을 부정하고 아침을 예찬합니다.
그동안 시인들도 주로 그런 류의 시를 써왔고. 저도 처음 '새벽이 온다'란 제목만 봤을 땐 ‘그런 주제의 시이겠지’ 하며 넘겨버리려 했습니다. 허나 한 행 두 행 읽다가 무릎을 쳤습니다. ‘아, 이런 역발상!’ 누구도 생각지 못한 발상의 시를 읽게 되었습니다.
‘새벽이 밀려 들어오면 밤을 의지하던 사람들은 어디로 가라는 것인가’ 이 시행의 역발상에 바로 꽂혀 붙잡았습니다. 역발상은 아시다시피 기존의 고정관념이나 통념을 깨고, 일반적인 생각이나 현상에 대해 반대 방향으로 거꾸로 생각하는 것을 의미합니다.
시로 들어갑니다.
“저렇게 새벽이 밀려 들어오면 밤을 의지하던 사람들은 / 어디로 가라는 것인가”
밤을 좋아해서가 아니라 어쩔 수 없는 상황에서 밤의 생활을 쫓아야 하는 사람들도 간혹 있습니다. 고깃배가 야간작업하다가 해 뜰 무렵이면 들어오고, 새벽시장에 물건 내놓기 위해 밤을 새워 트럭 몰고 농산물시장으로 달려온 사람도 있습니다.
그나마 밤을 낮 삼아 일하는 사람이야 괜찮지요. 일만 열심히 하면 먹고사는 데는 지장 없으니까요. 허나 절망에 빠져 사는 사람에게 밤은 그를 숨겨주지만 새벽이 오면 드러나니까, 또 힘든 하루가 펼쳐지니까 과연 새벽이 반가울까요?
“어둠 속에서, 어둠의 마음속에서 / 몽롱한 노래들이 몸을 비벼주었건만”
고통스럽고 절망적인 상황에서도 그래도 위안이 되었던 ‘몽롱한 노래’, 이 노래는 진짜 노래라기보다 잠시 현실을 잊게 해주던 헛된 망상 혹은 공상을 뜻한다고 봅니다. 하지만 ‘몸을 비벼주었건만’이라 했으니 그런 위안조차 진정한 해결책이 되지 못하고 공허함만 남았다는 뜻으로 새깁니다.
“새벽은 아가리를 벌려 하늘의 수많은 별을 잡아먹고 / 핏빛 광선을 세상에 흩뿌리는데”
새벽은 통상 ‘새로운 세상’을 비유하는데, 이 새로운 세상이 온화하거나 평화롭지 않는 대신 무자비하고 엄청난 폭력이 될 수도 있습니다. 살기 힘들 때 ‘콱 마, 세상 뒤비지삐라!’ 하고 가래침을 뱉는 사람도 있지만 ‘아이구 마, 더 힘든 세상이 안 왔으면...’ 하고 바라는 사람도 있으니까요. 한 예로 새롭게 뜯어고치자는 ‘개혁’이 어떤 경우엔 새로운 폭력이 됨을 여러 차례 봐 왔기에. 그래서 새벽이 더 무서울 수도 있습니다.
“어둠이 사라지자 / 사람들이 제 속에 어둠을 만들어놓고 한사코 그 속에 / 스며들고 있는데”
사람들이 한사코 어둠에 스며들려 함은 새로운 변화(세상)가 더 두렵기 때문입니다. 두렵기에 벗어나려 하기보단 더 깊이 빠져들고자 하고. 내가 믿고 있는 가치관과 이념이 무너진다고 여길 때는 그게 옳으냐 옳지 않느냐 따지기보다 그 무너짐을 두려워하여 먼저 방어하려는 본능이 작용함을 지금 우리 사회 곳곳에서 볼 수 있지 않습니까.
“아아, 아가리가 있는 것은 무섭다”
해가 있다가 어둠이 몰려오면 밤의 아가리가 입을 벌리듯이, 어둠이 물려가고 동이 트면 이번엔 새벽의 아가리가 입을 벌립니다. 어둠의 아가리든 새벽의 아가리든 무섭기는 마찬가지나 화자에게는 새벽의 아가리가 더 무섭습니다. 밤은 경험해 본 적 있다면 새벽은 경험해 본 적 없는 세상이기에.
오늘 시는 저 혼자 읽으면 와닿는데 막상 해설하려니 읽는 이가 이해할지 모르겠군요. 그래서 다만 제 해설은 참고만 하시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