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이 일흔에 풀어놓는 소소한 이야기(94)
한 달 전쯤 산책길에 이사 온 지 얼마 안 된 이웃 사람을 만나 얘기 나누던 중 그가 물었다.
“선생님 댁에선 개구리 소리가 들리지 않습니까?”
“들리긴 합니다만... 왜... 요?”
“아 미치겠어요, 그놈들 때문에 잠을 못 자겠어요.”
그 말에 씽긋 웃었다. 무슨 뜻인지 이해되었기에. 그분의 집은 논 바로 곁이다. 논 옆에 집이 위치한다는 게 문제다. 도시 사는 사람은 개구리 울음소리 때문에 잠자기 힘들단 말을 이해하기 어렵겠지만 그 소리가 정말 시끄럽다, 예민한 사람에겐 특히.
잠깐잠깐 들리는 소리는 자장가처럼 아름다울지 모르나 밤새도록 울대가 찢어지도록 여러 마리가 울어댄다면 일반 사람에겐 정말 미칠 지경이리라. 우는 개구리는 수컷이다. 우는 까닭은 짝지으려 암컷을 유혹하려고. 암컷과 만나는 장소는 물이다. 시골에 항시 물에 잠긴 곳은 논이니 바로 곁에 집이라면 알쪼 아닌가.
세상에는 남녀의 성비가 맞지 않은 나라도 있지만 그래도 남자 한 명 여자 한 명이 각각 짝을 이룰 수 있어 심각할 정도로 문제 일으키는 나라는 없다. 허나 동물의 세계는 다르다. 암수 마릿수가 비슷하더라도 인간처럼 ‘1:1’이 아니라 ‘1:多’로 짝짓기 하니까.
한때 '물개불알(海狗腎 : 해구신)'이 정력에 좋다 하여 사내들이 눈에 불을 켜고 찾아다닌 까닭도 거기 있다. 사람처럼 1:1이면 문제없으나 경쟁에서 이긴 수컷이 암컷 30~60 마리를 거느린다고 하니 그 상식을 횔용해 물개 생식기를 탐내었으리라.
개구리 사회도 물개랑 마찬가진가 보다. 능력 있는 수컷 개구리가 여러 암컷을 거느리니까. 다만 그 방법이 물개와는 다르다. 얼마나 멋지게 울음소리 내느냐에 따라 암컷을 차지하니. 인간 세계에 비유하면 노래 잘 부르는 사내에게 혹해 따른다는 표현으로 바꿀 수 있을까.
이러니 수컷은 암컷을 유혹하기 위해 별의별 수단을 다 동원하여 소리를 낼 수밖에. 예를 들면 ‘개-굴- 개-굴-’이 평범한 소리 표기라면 ‘개↗굴↘ 개↗굴↘’ ‘개↘굴↗ 개↘굴↗’, ‘개~~굴 개~~굴’, ‘개굴~~ 개굴~~’처럼 변화를 주며.
그 가운데 덩치 크고 힘이 강한 수컷의 소리는 사람으로 치면 중저음(重低音)으로 운다고 한다. 그 소리에 암컷은 절로 끌려 그쪽으로 가게 되고. 중저음 소리로 암컷을 독차지한다는 사실을 알게 된 덩치 작고 약한 수컷이 비상수단으로 그 소리를 익혀 원래 자기 소리 아닌 중저음 소리를 내기도 한다.
암컷이 무심코 그 소리에 이끌려 도착했을 때는 전혀 다른 외모라 달아나야 하지만 그땐 이미 끝. 허니 우리가 보면 일종의 사기술 아닌가. 헌데 이런 사기술은 1회로 끝나고 만다. 이를 관찰한 학자가 토로한 바에 따르면 무슨 이유에선지 모르지만 다음에도 그 수컷에게 온 암컷을 본 적 없다니까.
내 생각엔 한 번 사기당한 암컷이 저희들 단톡방(?)에 그런 수컷의 정체를 밝혀 피하도록 만들지 않았을까. 예를 들면 ‘달내마을 정선생 댁 주변에 울어대는 수컷 가운데 짜가가 많으니 주의할 것’ 하는 식으로. 물론 이는 우스개다.
이미 우리 사회는 외모지상주의에 푹 젖어 있다. 예전에 한 번 다뤘지만 40년 전 공고에 근무할 때 모 여상 선생님 만난 얘기를 다시 풀어본다. 그때 당시 생활지도과에 적을 두는 바람에 ‘합동 교외생활지도’를 자주 나가게 돼 거기서 만난 또래의 선생님이다.
어느 날 전화가 왔기에 받으니 술 한 잔 된 음성으로 무작정 나오라 했다. 망설이다가 멀리 시내까지 오라 함은 까닭이 있을 터. 만나 술 한잔 하는 내내 그는 열 받아 못 살겠다고 하면서 “이 더런 놈의 세상!”이란 한탄 섞인 말을 연발했다.
자기 반 제자를 취업시킬 때였단다. 제법 괜찮은 자리가 나 두 학생을 보냈다. 자리는 하나이지만 기업에서 둘을 보내라 해 어쩔 수 없이 그리 했고... 한 학생은 3년 개근에다 공부도 잘하고, 착하고, 매사에 열성적인 전형적인 모범생, 다른 학생은 가출도 한 적 있고, 공부보다는 거울 보는데 더 시간을 보내고, 담임 말도 잘 안 듣는 애.
그러니 그 둘을 보낼 때는 앞의 애를 취업시키고자 하는 마음이 다분했다. 면접관도 다 똑같으리라 여겨 안심(?) 했건만... 결과는 뒤의 학생만 합격했다. 하도 어처구니없어 알아보니 합격한 애는 키 크고 늘씬한 데다 이쁜 외모였으나 떨어진 학생은 그와 정반대였다나.
그날 여상 선생님은 술에 잔뜩 취해 이렇게 말했다.
"정 선생, 이제 나는 애들에게 뭐라고 얘기해야 할까. 공부 열심히 해라. 착하게 행동해라. 결석하지 마라. 다 소용없는 말이잖아. 내일부터 나는 이렇게 말할 거다. 다른 것 필요 없고 얼굴 가꾸기에만 목숨 걸어라고."
취업이나 결혼을 앞두고 성형수술은 필수라 한다. 지금도 ‘신체발부(身體髮膚)는 수지부모(受之父母)라’ 하는 식의 성인 말을 따르는 이가 있을까. 즉 ‘몸ㆍ머리카락ㆍ피부’는 부모께 물려받은 것이니, 이를 손상하지 않는 것이 효도의 시작이라고.
몸이든 머리카락이든 피부든 고쳐서 취업이 되고 좋은 이성과 결혼한다면 그것만큼 다행일 수 없다. 따지고 보면 부모를 선택해 태어난 자식이 없으니 외모는 부모로부터 그대로 물려받을 수밖에 없다. 키가 크든 작든, 미남 미녀든 추남 추녀든.
그러니 성형으로 외모를 바꾸어 좋은 결과 얻으려는 노력을 나무랄 수 없다. 다만 흔히 말하는 경력(스펙)을 위조한다면 다르지만. 석사ㆍ박사 학위를 위조하거나 성적을 위조하여 진학하거나 취업하거나 결혼한다면 이는 범법 행위니 처벌받아 마땅하다.
그럼 왜소한 개구리 수컷이 암컷의 구애를 얻기 위해 한 덩치 하는 수컷 소리를 위조함은 범죄일까 선택일까? 인간의 관점에서 판단할 수 없으니 개구리의 관점으로 돌리면 어떻게 판단내릴지 자못 궁금하다.
요즘 가을이 깊어지면서 개구리 울음소리가 아주 뜨문뜨문 들린다. 이제는 이웃을 만나도 그 울음소리 때문에 잠 못 잔다는 말은 듣지 않으리라. 만약 내가 'AI'를 제대로 활용할 능력 얻게 된다면 덩치 크고 강한 수컷의 목소리를 녹음했다가 그 소리에 혹해 찾아오는 암컷을 잡아 연약한 수컷 곁에 두고 싶다.
약한 사람이라서 약한 개구리의 설움을 잘 안다고 해야 하나. 한 번도 갑의 위치에 서본 적 없는 ‘을의 입장’을 너무나 잘 아니까.
"덩치 작고 힘 약한 수컷들이여, 다 내게로 오라! 내가 너희들의 월하노인 (중매의 신)이 되어 주리니"
이러면 수컷 개구리 세계에서 표창장 하나쯤 받지 않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