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우씨의 詩詩하게 살자(427)

제427편 : 문창갑 시인의 '집 밖의 사내'


@. 오늘은 문창갑 시인의 시를 배달합니다.

집 밖의 사내
문창갑

사내는 오늘 알았다
제 몸의 입이
아기를
아귀로 읽는다는 것을

봄날, 꽃그늘 밑 유모차에 실려 가는 아기
꽃들보다 백배, 천배 이뻐서
어구구 이쁜 아기 까꿍 까꿍 이쁜 아기
불러보았는데

와서, 붉으락푸르락 씩씩대며 아기 엄마가 와서
아기에게 왜
아귀라는 막말을 하느냐고
손톱 발톱 다 세우고 한참 짹짹거렸다

집 나온 지 오래
품속에 무덤 같은 밥그릇 하나 품고
밥 동냥 길 떠돌다 보니
그 사내 이제
아기라고 읽지 못하고
아귀라고 읽는다
- [시와소금](2020년 가을호)

#. 문창갑 시인(1957년생) : 서울 출신으로 1989년 [문학정신]을 통해 등단. 삶의 진지함과 절실함이 가득 차 있는 시를 쓴다는 평을 들으며, 경기도 고양시에 살면서 [작가연대] 편집위원으로 활동.




<함께 나누기>

지난주 금요일, 오랜만에 지인들과 만나 즐거운 시간을 가졌습니다. 부부모임이었지만 예전에 한 달간 함께 여행했던 처지라 꺼려할 화제가 없는 아주 흐뭇한 시간이었습니다. 다들 나이가 나이인지라 '60년대 추억에 관한 얘기가 오가던 중, 한 벗이 이리 말했습니다.
"옛날 건빵 참 맛있었는데..."
이 벗의 ‘건빵’ 발음이 어땠든 간에 한 사람을 제외하곤 다들 그렇게 알아듣고 건빵에 대한 추억을 이어나갔습니다.

그 속에 들었던 별사탕부터 그걸로 죽 끓여 먹었다는 아픈 얘기까지. 여기까지 듣고 있던 다른 벗의 부인 - 유일한 표준어권 출신 - 궁금해하며 물었습니다.
“금방을 먹어요? 금 파는 금방을 어떻게 먹어요?”
처음엔 무슨 말인가 하다가 그 뜻을 파악하자 순간 모인 이들 입에서 다들 폭소가 터졌습니다. 오랜만에 근심 없이 한참이나 터뜨린 함박웃음. 여태 다들 ‘건빵’에 대해 얘기하고 있었건만 그 부인에게는 ‘금방’으로 들렸던가 봅니다.
그 뒤 건빵과 금방에 관한 화제로 화기애애한 분위기가 더 이어졌지만 생략합니다.

시로 들어갑니다.

“사내는 오늘 알았다 / 제 몸의 입이 / 아기를 / 아귀로 읽는다는 것을”

한때 서울 사람이 경상도 사람과 얘기하다 보면 발음 때문에 기겁할 일이 종종 생겼지요. 경상도 사람은 분명히 ‘쌀’이라고 했건만 서울 사람 듣기엔 ‘살’로 들린다는 사실.
그러니까 ‘쌀을 먹는다’ 하면 ‘살을 먹는다’로 들리니 경상도 사람은 졸지에 식인종이 돼 버립니다. 이 시행은 물론 그런 발음의 오류를 지적함이 아닙니다. 말하는 사람의 차림과 듣는 사람의 자세에 따라 달리 들리는 세태를 비판하고자 함이니.

“봄날, 꽃그늘 밑 유모차에 실려 가는 아기 / 꽃들보다 백배, 천배 이뻐서 / 어구구 이쁜 아기 까꿍 까꿍 이쁜 아기 / 불러보았는데”

전에 텔레비전에서 '뉴스 뒷얘기'를 담은 프로그램 본 적 있는데, 허름한 차림의 한 노인이 아장아장 걸어가던 아이가 하도 이뻐 저도 모르게 아이의 머리를 쓰다듬으며,
“아이구 요녀석, 참 밉상이네.”
그 말을 듣던 애엄마가 발끈하며 왜 우리 애를 밉상이라 하느냐고 따지더랍니다. 그 표현이 적당한지 아닌지 두 패널이 주고받는 토론 형태.
분명 노인네가 웃으며 한 말일진대 그 말에 발끈했다니 어처구니가 없습니다만 참 말을 조심해서 해야 함을 보여줍니다. 만약 시아버지가 이리 말했다면, 그리고 그 노인네가 멋진 신사복을 입은 상태였더라면 과연 애엄마는 그렇게 반응했을까요?

“집 나온 지 오래 / 품속에 무덤 같은 밥그릇 하나 품고 / 밥 동냥 길 떠돌다 보니 / 그 사내 이제 / 아기라고 읽지 못하고 / 아귀라고 읽는다”

어쩌면 노인네가 한 말을 애엄마가 들었을 때 아기보다 아귀(餓鬼)에 더 가까웠을지 모릅니다. 사투리를 쓰다 보면 그렇게 들리기도 하니까요. 허나 여기서 중요한 점은 화자의 관찰 대상인 노인네의 '입성'입니다. 문맥으로 보아 아마도 그는 노숙자인 듯.
거지 노인네가 자기 애를 칭찬하는 말이지만 그런 사람이 말했으니까 발끈했으리라는 합리적 의심이 듭니다. 여기서 아귀(餓鬼)는 죄를 지어 지옥에 떨어진 귀신인데 몸이 앙상한 데다 목구멍이 바늘구멍 같아 음식을 먹을 수 없어 늘 굶주려 혐오감을 주는 얼굴의 소유자를 비유합니다.

먹고살기 위한 밥그릇 하나 품고 밤 동냥길 떠돌고 있는 한 노인네. 살기 위한 치열한 생존경쟁에서 허물어져 굴욕과 멸시를 당하며 살아갑니다. 그런 가운데 꽃 피는 봄날, 꽃그늘 밑 유모차에 실려 가는 아기를 보니 문득 손주가 생각나 꽃보다 백 배, 천 배 이뻐서 '이쁜 아기 까꿍 까꿍!' '이쁜 아기!' 하며 불러봅니다.
순간 젊은 애엄마로부터 예상 밖의 봉변을 당합니다. 견디기 힘든 모욕과 굴욕과 치욕의 업신여김이 노인네의 머리 위로 쏟아집니다. 이제 귀여운 아기를 봐도 그냥 지나쳐야 합니다. 괜히 오지랖 넓게 귀여워해선 안 됩니다. 특히 저처럼 지나치게 늙은이라면 더더욱.



*. 둘째 사진은 AI로 만들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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