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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나무 위에 내리는 비 Mar 01. 2022

백곡마당의 전설

제2부 - 제2화


     * 백곡마당의 전설(제2부) *
               - 제2화 -


  시장 입구의 참기름집부터 샅샅이 훑어 내려가기 시작했다. 양복 차림으로 난전을 이리저리 기웃거린다는 게 조금 어색했지만 그건 아무래도 좋았다. 그렇건만 거의 시장이 끝날 때까지 그녀가 보이지 않았다. 어머니가 일부러 장소를 잘못 가르쳐주지 않았나 하는 생각까지 들어 실망하며 막 시장을 빠져나오려던 참이었다.
  있었다. 시장 맨 끝머리에 구석에서 대야 속에 고기 몇 마리를 담아두고 앉아 있는 그녀를 보았다. 마침 그녀가 반대쪽에 눈을 주고 있어 슬며시 비켜나 철물점 옆에 몸을 숨겼다. 아직 확실한 사정을 모르는 터에 직접 부딪히는 것보다는 옆에서 관찰하는 게 나을 듯싶어서였다.

  그녀는 전날 보았을 때와 다름없는 몰골과 차림새였다. 역시 제법 따뜻한 날씨인데도 수건으로 얼굴을 반쯤 감쌌는데, 고개를 돌릴 때마다 언뜻언뜻 보이는 낯은 갈퀴 같은 걸로 긁어놓았는지 엉망진창이었다.
  몇 번이나 유심히 살펴보았으나 어릴 때의 모습은 아무리 찾아보려도 찾아볼 수 없었고, 또 설령 얼굴이야 어떤 사고로 그렇게 됐다손치더라도 몸매나 전체적인 윤곽이 도무지 그 옛날 선녀 같던 그 모습과 연결시킬 수 없었다. 그래서 누나와 어머니가 잘못 알고 있지 않느냐는 의문이 치솟았다. 그러나 한 사람이라면 몰라도 두 사람이 다 인정하는 사실을 무조건 부정할 수는 없었다.

  거의 한 시간을 눈을 떼지 않고 지켜보자 철물점 주인이 의아한 눈빛을 보냈으나 관계치 않고 시선을 계속 그쪽에 고정시켰다. 그런데 장소도 후미진 장소지만 다른 장사치처럼 손님을 끌려는 의지가 통 보이지 않아 사람들이 거의 오지 않을 뿐 아니라 댓 명 들른 손님마저 그냥 가버려, 지켜본 시간 내내 한 마리도 팔지 못하여 숨어서 지켜보는 사람이 더 답답했다.
  ‘결혼은 했는가?’
  ‘남편은 어떤 사람인가?’
  ‘저렇게 난전에 나와 있지 않으면 안 될 정도로 생활이 어려운가?’
  ‘바우는…?’
  ‘무당할머니는…?’

  이런 의문 속에 다시 십여 분이 지났을 때였다. 좌판 앞으로 한 열 살쯤 돼 보이는 여자애가 가방을 멘 채 쪼르르 달려오더니 옆에 쪼그리고 앉아 그녀를 제치고 오고 가는 손님들을 불러대었다. 갑자기 긴장되었다. 여자애는 영락없이 어릴 때의 그녀를 빵틀에서 찍어낸 붕어빵처럼 똑같았다.

  그 애의 덕으로 고기 일여덟 마리가 팔려나갔다. 그러는 중에 무슨 말인지 잘 알아들을 수 없었으나 그녀와 여자애 사이에 실랑이가 있었다. 나는 또 긴장하였다. 유난히 또렷이 들린 그 애의 입에서 나온 ‘엄마’란 단어를 통하여 두 사람이 모녀 관계라는 걸 알았기 때문이다. 다시 머릿속이 혼란스러웠다. 학교 가방을 메었으니 아무리 적게 잡아도 여덟 살은 넘는데, 그렇다면 그녀가 스무 살도 채 안 된 나이나 갓 스물쯤에 낳았다는 결론이 아닌가.

  다시 두 사람의 실랑이가 있었고, 이번에는 그 애가 못 이겼는지 가방을 메고 일어섰다. 잠시 망설이다 그 애의 뒤를 따르기로 작정했다. 아무래도 그녀를 통해 얻을 것보다 그 애를 통해 얻을 게 많을 것 같은 직감에서였다.
  골목길을 거쳐 무허가 건물이 난립해 있는 산동네로 오르는 길로 접어들었다. 나 사는 곳과는 그리 멀리 떨어지지 않은 곳이었건만 이렇게 후진 동네가 있다는 걸 보고 들은 적이 전혀 없었다.
  도중에 그 애를 불러 세울까 했으나 이왕이면 집을 알아두는 게 좋을 듯싶어 계속 뒤를 따랐다. 그 애가 발을 멈춘 곳은 산동네에서도 가장 꼭대기에 있는 금방이라도 바람 불면 날아갈 듯한 천막집이었는데 철거대상 건물임을 알려주듯 붉은 줄이 그어져 있다.




  왔던 길로 내려가 가게에 들러 과자종합선물세트를 하나 샀다. 그리고 다시 올라와 문을 열고 들어섰다. 그 애는 밥을 먹고 있던 참인지 숟가락을 든 채 엉거주춤 일어나며 불청객을 바라본다. 말없이 방문 앞으로 가 상 위를 들여다보았다. 꽁보리밥에 김치 한 보시기뿐이다.

  “누구세요?”
  놀라는 애를 무시하고 문턱에 앉아 방 안을 둘러보았다. 비키니옷장 하나와 앉은뱅이책상이 놓여 있을 뿐. 서지도 앉지도 못한 채 엉거주춤해 있는 애를 바라보았다. 가까이서 보니 초롱초롱한 눈망울이 어릴 때의 그녀보다 더 빛난다.

  “너 몇 살이니?” 하고 과자상자를 들이밀며 물었다.
  “아홉 살이에요. 그런데 아저씬 누구세요?
  여전히 경계심을 품은 말투였지만 아까보다 훨씬 늦춘 듯하다. 적어도 외모에서 저를 해칠 사람은 아니라고 판단해서일까.
  “네 엄마 이름이 한소화니?”
  “아저씨가 어떻게 우리 엄마 이름을 아세요?”
  놀라는 그 애보다 내가 더 놀랐다. 그래도 설마 했는데 흉측한 몰골의 그 여자가 옛날의 소화임이 확실해졌다. 마음을 진정시키려고 숨을 깊이 들이마셨다.

  “우리 엄말 잘 아시는 분이세요?”
  그 애의 말에 얼른 먼 친척이 된다고 소개한 뒤 알고 싶은 사항을 캐물었다. 그러나 그 앤 첫인상대로 여간 영리한 게 아니었다. 여전히 경계심을 품고 선뜻 얘기해주지 않더니 그 애의 외삼촌인 바우, 아니 ‘한석호’란 이름을 대고 나서야 비로소 친척임을 인정한 듯 대답해주었다.
  하지만 궁금증은 대략적인 얘기를 듣고 난 뒤 더 심하였다. 외삼촌이 서울에 산다는 사실만 알 뿐 무당할머니도 심지어 제 아버지에 대한 일은 전혀 알지 못하였다. 혹시 알면서도 숨기려는 게 아닌가 하고 의심해보았으나 그 애의 표정으로 보아 모르는 게 사실인 듯했다. 
  증조모 뻘인 무당할머니를 모르는 거야 그 애가 태어나기 전에 돌아가셨다면 이해가 가나 제 아버지에 대해 전혀 모른다고 하는 덴 어떤 추론도 불가능했다. 결국 나는 그 애가 다니는 학교와 학년ㆍ반ㆍ이름, 그리고 외삼촌이 근무하고 있다는 장소가 새겨진 빈 성냥갑만을 들고 그 집을 빠져나오고 말았다.


  집에 돌아와 어머니와 마주했다. 그리고 소화의 딸에게서 얻은 정보를 바탕으로 넘겨짚어가자 못 이긴 체 얘기하였는데, 삼 년 전 우연히 장을 보러 시장에 갔다가 마주쳤다는 거였다. 당신도 처음엔 누군지 몰랐는데 그쪽에서 아는 체하기에 물어보았더니 얘기해주더라는 것이다.
  그러나 자세한 내막을 모르긴 당신도 마찬가지셨다. 다만 한 가지 목 안이 상했는지 소리는 낼 수 있으나 이쪽에서 무슨 말인지 제대로 알아듣기 힘들다는 얘길 들은 게 수확이라면 수확이랄까. 그것은 대단히 충격적인 사실이었고, 아까 낮에 시장에서 둘이 실랑이를 벌일 때 그 애 말은 분명히 알아들을 수 있었으나 그녀의 말을 제대로 들을 수 없는 이유가 해명되었다.


  다음날 누나에게 끌려 저번 선본 여자를 만나러 다시 나갔다. ‘끌려’란 표현을 썼지만 사실은 그쪽에서 제시한 또 하나의 조건에 이끌려서라는 표현이 옳을 것이다. 내가 원하기만 한다면 이번엔 유학까지 보내주겠다는 것이었다. 누가 정보를 흘렸는지 모르지만 그것은 확실히 구미 당기는 조건이었다.
  그즈음 나는 윗사람의 눈총, 수업에 결손이 생긴다고 대학원 진학을 못마땅해하는 교장의 눈총을 받아가며 겨우 석사과정을 마쳤다. 그대로 박사과정까지 마치려 했으나 내 전공인 비교문학 분야는 국내에서의 학위 취득자를 알아주지 않아 대학 강단으로 자릴 옮기기란 쥐 발로 소 잡는 만큼이나 어려운 대신 외국에 나가 학위를 따오면 쉽게 얻을 수 있는 추세였다.


  그러나 그녀를 다시 만나는 순간 현실적인 욕망에도 불구하고 또다시 뛰쳐나오고 말았다. 그러자 사생결단을 내려고 덤벼드는 누나에게 결국 속마음을 얘기할 수밖에 없었는데 어느 정돈 이해해 주리라고 꺼낸 말이 오히려 불난 데 기름 붓는 결과를 가져왔다.
  누나는 그따위 알량한 자존심을 갖고 어떻게 이 험한 세상을 살아가겠느냐 하면서, 어릴 때 그처럼 대차고 악착같던 녀석이 어쩌다가 저런 얼간이로 변했는지 하며 혀를 차기까지 하는 거였다.
  그래도 관계찮았다. 어차피 순탄하게 처리될 일이 아니라고 생각했으니깐. 다만 내가 그 문제에 관한 한 조금도 굽히지 않자, 누난 두 번 다시 우리 집에 발 들여놓지 않겠다는 말을 남기고 떠났다. 이어서 어머니로부터 또 욕을 들어먹었지만 스스로의 결정을 수정할 수는 없다고 마음을 다잡았다.


  가을이 되어 이 학년 학생들이 수학여행을 가는 길에 끼어 따라갔다. 원래 나는 담임을 맡고 있지 않았기에 갈 자격이 없었으나, 통상 담임 외 주임교사 몇이 더 따라가도록 되어 있었는데 마침 우리 과 주임에게 일이 생겨 대신 따라가게 된 것이다.
  일정은 설악산에서 이틀 자고 서울을 거쳐 현충사로 가 그 근처에서 일박하도록 짜여 있었다. 그러나 나는 설악산에서 하룻밤을 지낸 후 곧장 서울로 갔다. 어차피 담임이 아니기에 개인행동을 해도 상관없지만 유학 대신 차선책으로 정신문화원에 들러 진학 절차를 알아보고 책도 몇 권 구입해 보고자 하는 계획에서였다.

  그 일은 시간을 많이 소모하는 일이 아니라서 금방 처리하고 하룻밤을 서울에서 보내게 되었는데 고등학교 때 절친했던 동기가 생각났다. 직장에 전화하여 얻은 하숙집 번호로 전화를 거니 마침 집에 돌아와 있어 무교동 어느 술집에서 만났다.



  그리고 내일 오전 열한 시 경까지 약속된 지점으로 가 설악산에서 오는 버스를 타면 되었기에 코가 비뚤어지도록 마셨다. 일차로 소주 네 병을 해치우고 이차는 입가심으로 맥주 몇 병을 더 마신 뒤 그래도 미련이 남아 나이트클럽에 가 발바닥이나 비비자는 동기의 말을 듣는 순간 별안간 뇌리 속을 스치는 게 있어 지갑을 꺼내보았다.
  있었다. 저번 날 소화의 딸에게 건네받은 성냥갑의 주소가 거기 적혀 있었다. 그 순간 그동안 마신 술로 하여 어린 취기가 확 깨었다. 동기에게 그 나이트클럽의 이름을 댔더니 마침 잘 아는 곳이라기에 택시를 탔다.


  @. 사진 둘은 모두 구글 이미지에서 퍼왔으며, 그림은 아는 이가 보내줬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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