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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나무 위에 내리는 비 Mar 05. 2022

백곡마당의 전설

제3부 - 제1화

  

  * 백곡마당의 전설 *

    - 제3부 - 제1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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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8월 15일, 연세대에서 거행된 조국통일범민족청년학생연합(범청학련) 주최 통일대축전 이후 나흘간의 격렬한 저항과 해산의 팽팽한 대격돌이 20일 새벽, 경찰의 종합관 진입 작전으로 마무리 지어졌다.

    공중에서 여러 대의 헬기가 최루액을 뿌리면서 특수진압장비를 갖춘 경찰특공대가 투입되자 학생들은 옥상에서 돌을 던져가며 강력하게 저항했지만 경찰의 물리력에는 역부족이었다.

    건물 안에서 불길이 솟아오르고 1층에서도 진입 작전이 시작된 지 1시간 만에 마침내 학생들은 저항을 멈추고 투항했다.

   이날 진압과정에서 대학생 수십 명이 다치는 불상사와 함께, 한총련 학생들이 던진 돌에 맞아 전경 한 명과 사진기자 한 명이 머리를 크게 다치는 중상을 입었는데, 전경은 현재 생명이 위독하다.

 <1996년 8월 21일, ㅇㅇ 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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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 영기, 너 제정신 있는 놈이야, 없는 놈이야? 여태껏 쌓은 걸 다 포기하고 말겠다는 거야, 뭐야?”

  제 딴에도 민망해선지 고개를 푹 수그리고 선 녀석을 올려다보며 솟구치는 섟을 삭일 수 없어 자리에서 벌떡 일어났다.

  “다른 녀석이라면 나도 이러지 않아. 우리 국문과 온 가족이 너에 대한 기대가 어떻다는 걸 설마 모르지는 않겠지? 그리고 저번에 잡혀 들어갔을 때야 지도교수인 내 보증만으로도 빼낼 수 있었지만 이번에 끌려 들어가면 어떻게 된다는 걸 네 녀석이 더 잘 알잖아.”


  가능한 한 감정을 억제하려 했지만 절로 치미는 배신감에 몸이 부르르 떨려왔다. 녀석은 입학 때부터 흰 고무신과 한복 차림으로 남들의 시선을 끌었다. 사실 그런 종류의 기행(奇行)이야 과거에도 철학과 몇몇 학생들에 의해 저질러졌기에 새삼스러울 게 없었지만 그들의 그런 행동이 다분히 타인 의식의 내보임인데 비하여 녀석에게선 완전히 몸에 밴 생활 그 자체였다.

  그러나 녀석이 우리 교수들의 시선을 끈 것은 그런 겉모습이 아니라 어릴 때부터 제 할아버지로부터 직접 전수받았다는 한학(漢學) 지식 때문이었다. 지금도 안동 예안에서 마지막 유림(儒林)으로 생활하고 있다는 그 어른의 강권에 닦아온 한학에의 소양은 우리 과의 내로라하는 교수들도 손을 들어야 할 정도였다.


  육 년 전 그 해 나는 시간강사의 딱지를 막 떼고 전강으로 임용된 터라 첫 임용의 불같은 정열을 분출할 구멍을 찾고 있던 차 때마침 녀석이 걸려든(?) 것이었다. 나는 녀석의 강점을 살리려는 방향에서 온갖 방법을 다 써 다그쳤고, 그 결과 드디어 3학년 때 중국문학과의 비교연구에 관한 논문으로 전국대학생 논문발표대회 인문과학 분야에서 대상을 수상했다.

  그 일은 자신에게는 물론 지방 삼류대학에 불과한 우리 대학에도 엄청난 영광을 선사하였고, 더불어 내 성취의 기쁨도 더할 나위가 없었다. 그래서 올해 졸업과 동시에 대학원에 진학하게 되어 있고, 학문에의 열정이 식지만 않는다면 학위 취득과 동시에 강단에 서는 건 시간문제로 보였다.


  그런 녀석이 요즘 들어 연구실에 통 들르지 않더니 시위에 가담하고 앞장까지 섰다는 거였다. 그건 정말 믿기지 않는 일이었다. 하도 책만 파고 있기에,

  ‘너무 짧은 시간에 다 이루려고 하지 마라’,

  ‘앞으로 대학원 과정에서 얼마든지 몰두할 시간이 있으니 여자도 사귀면서 생활을 좀 더 부드럽게 해라’,

  ‘젊은 녀석이 너무 겉늙어버리면 매력이 없다’고 나무란 게 얼마 전이던가.

  “도무지 모르겠어. 저 핫바지 녀석이 무슨 바람이 불어 저렇게 변했는지.”

  운동장 쪽으로 열려 있는 유리창을 통해 길게 그림자를 끌면서 사라져 가는 녀석을 내려다보며 혼잣말하듯이 내뱉었다.


  “교수님은 아직 잘 모르시는가 보죠?”

  뒤에서 들려온 조교의 말이었다.

  “뭘 말인가?”

  “왜 있잖아요. 사회학과의 잔다르크.”

  “잔다르크? 잔다르크야 프랑스의 오를레앙에 동상으로나 서 있지 우리 학교에 왜 있어?”

  “교수님도 참. 그러니까 우리 과 학생들이 교수님더러 박창호, 즉 박씨 성을 가진 벽창호라 하지요. 정말 모르세요? 우리 학교 한총련 대표인 그 여학생을 모르면 간첩이라는데…. 참 그저께 최 교수님이 여기 오셔서 얘기하셨잖아요.”


  그 말에 그저께의 일이 생각났다. 오후 두 시쯤 대학신문을 맡고 있는 박 교수가 노크도 없이 벌겋게 상기된 얼굴로 연구실에 들어왔다. 그와는 나이가 같아 만만하게 대하는 사람이었지만 그런 무례는 처음이라 그 연유를 물으려는데 저쪽에서 먼저, “못해 먹겠어!”라는 말과 함께 의자에 털썩 주저앉았다. 좀체 감정의 노출이 없던 사람인지라 궁금하였으나 술집으로 자리를 옮기고서야 그 속내를 털어놓는 거였다.

  평소 윗사람에겐 좀 밉게 보이더라도 가능한 한 학생들의 입장을 이해하려고 노력했다는 그 - 그런 이유에선지 내년도엔 다른 교수가 편집을 맡게 될 것이라는 소문이 나돌았다 -는 한 원고를, 만약 신문에 실으면 틀림없이 필화(筆禍) 사건을 유발할 성질이라는 것이라고 판단되었기에 빼버렸다고 했다. 그랬더니 그 글의 필자인 그 여학생과 학생 간부들이 몰려왔다는데 그날 그의 표정으로 보아 얼마나 저쪽에서 몰아붙였는지 알 만하였다.


  “그 잔다르큰가 뭔가 하는 여학생과 영기가 무슨 관계가 있다는 거야?”

  “둘이 보통 사이가 아니라는 소문이 쫙 깔려있어요”

  “아니 촌무지랭이 녀석이 연예를 한단 말이야?”

  “그건 교수님이 몰라서 하는 말이죠. 잔다르크라면 충분히 그럴 수 있지요. 예쁘죠, 똑똑하죠, 게다가 사람을 끄는 독특한 매력이 있어요”

  나는 그 여학생을 꼭 만나보고 싶었다. 호기심이 전혀 없었다면 빈말이겠지만 역시 영기 때문이었다. 그 녀석은 정말 아까웠다. 좀 더 솔직히 표현하자면 달동네에서 방 한 칸 얻어 자취하는 녀석을 아내에게 싫은 소리 들어가며 집에 데려와 군 생활 3년을 뺀 삼 년 간 먹여주고 재워주는 등 들인 공이 너무 아까웠다.


  그리고 또 한 가진 집단행동 시 평소에 어리숭한 사람이 한번 불이 붙으면 극히 격정적으로 변하는 경우가 종종 있기에 만약 녀석이 그렇게 된다면 책임의 불똥이 우리 과 교수들, 특히 나에게 튈 것은 불을 보듯 환한 일이었다.

  그러나 그 여학생을 만나는 일이 그리 수월치 않았다. 알고 보니 그때 이미 그녀는 1학년 때부터 여러 사건과 시위의 주모자로 수배령이 내려져 있었기에 특별한 경로를 통해야만 했다. 며칠 뒤 영기를 만났을 때 녀석이라면 접촉이 있으리란 짐작에서 그녀를 만나고자 하는 뜻을 전했다. 녀석이 펄쩍 뛰었다. 그리곤 그녀를 전혀 모른다고 시치미를 뗐다.

  그래도 막무가내 들이대니까 처음엔 저의 일로 그런다는 생각보다 오히려 경찰의 끄나풀로까지 의심하는 눈치다가 귀싸대기를 한 대 얻어맞고서야 내 진심을 알았는지 한번 애써보겠다고 했다. 단 그녀와의 대화 중에 내가 절대로 저의 자존심을 뭉개는 말은 하지 않겠다는 조건을 덧붙이면서.


<2011년 칠레 시위 현장에서 대중을 이끌던 칠레국립대 재학 중인 별명이 잔다르크인 발레오(Camila Vallejo)>


  그 여학생을 만나 곳은 그로부터 일주일이 지난 뒤 대학박물관 뒤에서였다. 영기 녀석은 뭐가 쑥스러운지 내게 소개만 시켜주고 슬그머니 사라져 버렸다. 그녀에 대한 첫인상은 소문보다 못하는 느낌이었지만 이지적인 눈망울과 강파른 몸매가 꽤나 당차다는 인식을 심어주기에 충분했다.

  그런데 그런 겉모습과 별도로 딱히 어느 때 어느 곳에서 만났다고 확언할 수 없으나 전에 만난 적이 있다는 인상을 강하게 받았다. 그러나 확실치도 않은 걸 갖고 화제를 삼을 수 없어 영기에 관한 원칙론적 얘기부터 꺼냈다.


  그녀는 내 얘기가 끝날 때까지 누렇게 말라붙은 잔디에 눈길을 주다가 살며시 고개를 드는 것이었다.

  “교수님께서 그 문제 때문에 저를 만나자고 하셨으면 제가 굳이 나올 필요가 없었군요. 영기 오빠와 전 단지 동지적 공감대 아래서 같은 목적을 갖고 행동할 뿐 다른 건 없습니다. 저에게 이성(異性)은 감정의 사치일 뿐입니다. 그리고 이런 문제로 하여 교수님이 직접 나서신 걸로 보아 얼마나 오빠를 아끼는지 짐작이 갑니다만, 그 사람도 스스로의 행위에 대한 판단과 책임을 질 만한 소양을 갖추었다고 믿습니다….”


  할 말이 없었다. 어떻게 들으면 슬쩍 돌려치는 말이었지만 영기와의 관계가 아무것도 아니라는 점을 확인했다는 사실 자체가 대단히 만족스러웠다. 그래서 그만 끝내야겠다는 생각에서 일어나며 지나가듯이 한마디 던졌다.

  “학생의 말을 들으니 단순히 영기와의 문제뿐이었다면 나올 필요가 없었다는 말인데 ….”

  “그를 핑계로 절 만나시려는 줄 알았죠.”

  “학생은 날 잘 모르구먼, 난 운동권과는 인연이 없는 사람이네.”

  “그렇다면 교수님께서 여기 나오신 게 저와의 개인적인 일로 만나려는 목적이 아니었단 말씀이세요?”

  “난 단지 내가 아끼는 제자를 위하려는 마음뿐이었네”

  “그럼 제가 오해했군요. 전 교수님께서 전부터 제 엄마를 알고 계셨기에 그런 일로 해서 일부러 절….”


  “네 엄마? 그렇다면...”

  그제사 그녀가 낯선 얼굴이 아니었던 의문을 풀 수 있었다. 십삼 년이란 세월이 많은 걸 변화시켜 첫눈에 알아보지 못했던 것이다.

  “그래 맞아, 맞아. 네가 소화의 딸이로구나, 어쩐지 낯익다 했더니......”

  저도 모르게 덥석 그녀의 손을 잡았다. 정말 예상외의 해후였다. 그녀는 입학하고 나서 이내 나를 알아보았다고 했다. 가끔씩 대학신문에 실린 내 이름과 사진, 그리고 교정에서 오며 가며 마주친 어림으로 확신했다는 거였다. 그래서 내가 그때부터 알고 있으면서도 모른 척했느냐고 했더니 겸연쩍어하는 웃음으로 얼버무렸다.

  <제3부 제1화 '끝'>


  *. 커버 사진은 국립중앙박물관 소재 김홍도의 [서당도]이며, 글 속 사진은 구글 이미지에서 퍼왔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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