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11화 : 하야리아부대(4) - 갑미 누나, 감당할

제11화 : 하야리아부대(4) - 갑미 누나, 감당할 수 없던 삶의 무게



우리 동네 갑미 누나는 참 예뻤다. 살아오는 동안 직접 마주쳤거나, 또 영상이나 사진을 통해 보았던 수많은 미인들을 젖히고 내 기억 속에 남은 가장 이쁜 여자는 갑미 누나다. 갑미 누나는 나보다 다섯 살 많았다. 갑미 누나에 대한 영상 기억은 내가 중학교 1학년 때 끊겼으니 아마 학교를 다녔더라면 고등학교 졸업반이었을 텐데, 공부를 계속할 처지가 아니었다.

갑미 누나는 얼굴이 갸름하고 목선이 가늘었다. 아니 얼굴보다 목소리가 더 고왔다. 누나는 ‘섬집아기’를 즐겨 불렀다. 가끔씩 그 집 앞을 지나칠 때 “엄마가 섬그늘에 굴 따러 가면 ~~” 하고 조곤조곤 들려오는 노랫소리는 참으로 고았다. 누나의 노래가 들리면 아무리 바쁜 심부름이라도 발을 멈추고 한 곡이 다 끝날 때까지 듣고 갔다.


그 목소리보다 더 아름다운 건 마음씨였다. 언제나 나를 보면 따뜻한 말 한마디를 건넸다. 추운 겨울날엔 지나치는 내 손을 잡으며 ‘아유, 이 손 봐라. 꽁꽁 얼었네.’ 하며 비벼주었고, 여름날 놀다가 들어오는 길에 마주치면 땀이 삐질삐질 흐르는 뺨을 박가분보다 더 하얀 손수건으로 닦아주었고, 봄가을이면 나를 마을 언덕으로 데리고 가 여기저기 핀 꽃들을 보며 하나하나 이름을 가르쳐주었다.

친누나가 셋 있었지만 친누나들보다 더 좋아했다. 어린 마음에도 만약 세상에 천사가 있다면 바로 ‘갑미 누나처럼 생겼을 거야.’ 하고 중얼거리기도 했으니까.


갑미 누나는 중학교를 가지 못했다. 누나만이 아니라 당시 우리 동네 여자 아이들 대부분이 그랬으니까 그건 흉이 아니다. 학교 대신 고무신공장에 다녔다. 그도 전혀 부끄러움이 아니다. 다들 고무신공장 아니면 모자공장, 봉제공장, 가발공장에 다녔으니까.

그런데 갑미 누나네 아버지의 술 취한 주정소리가 높아지는 날이면 공장 다니는 누나의 어깨는 축축 내려앉는 듯이 보였다. 또 누나네 엄마의 악다구니가 이중주의 불협화음을 만들 때면 더욱 그랬다. 나를 보면 분명 웃는 얼굴이었으나 어딘지 그늘이 져 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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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던 어느 날 갑미 누나가 볼그족족한 입술과 무릎을 훤히 드러낸 치마를 입고 가는 걸 마침 엄마와 시장 갔다 돌아오는 길에 보았다. 누나의 얼굴이 입술보다 더 붉어지면서 고개를 푹 숙인 채 처음으로 어떤 인사말도 받지 못한 채 지나쳐갔다. 다만 엄마의 혀를 차는 한 마디만 들었을 뿐.

“아이구 가스나, 팔자가 와 저리 사납노. 저 에린 기, 쯧쯧.”

날이 갈수록 갑미 누나의 치마가 짧아지면서 고개는 점점 올라왔다. 그리고 오물오물 씹던 껌소리가 ‘자작자작’에서 ‘짜작짜작’으로, ‘짜작짜작’에서 ‘쫘악쫘악’으로 변하면서 입술도 생쥐혓바닥보다 더 붉게 변해갔다.



그즈음 갑미 누나의 남자를 보게 된 것 같다. 얼굴은 연탄처럼 시커멓고, 이빨은 분필처럼 흰 할로('미군'을 달리 부르던 말)였다. 내가 둘의 모습을 처음 보았을 때는 누군지 전혀 짐작도 못했다. 그때 나는 아버지의 심부름으로 점방(구멍가게)에 들러 봉초(담뱃대에 넣어서 피울 수 있도록 잘게 썰어 봉지로 포장한 담배)를 사 나오는 길이었다.

저 앞에서 두 사람이 걸어가고 있었다. 한쪽은 전봇대만 하고 한쪽은 이쑤시개만 했으니 꼭 볼때기에 밥풀이 붙어 있는 모습이었다. 누군지 궁금하긴 했으나 엄청난 덩치에 겁을 먹어 조심조심 뒤따를 수밖에 없었는데 만약 그렇게 계속 갔더라면 뒷모습만 본 체 끝났으리라. 그런데 무슨 일이 있었는지 갑자기 밥풀 쪽에서 뒤를 돌아보는 게 아닌가. 아 그때 나는 '볼때기'와 '밥풀'의 정체를 알게 되었다.


그 뒤로 갑미 누나는 할로를 데리고 집으로 자주 왔다. 그래서 그 할로의 이름이 조지라는 것도 알게 되었다. 우리 집에서 빤히 내려다보이는 누나의 집 평상에 앉은 둘을 볼 때도 있었다. 그럴 때면 뭘 하는지 조지의 무릎에 누나는 앉아 있었다. 둘은 떨어져 있는 모습보다 찰싹 달라붙은 모습이 더 자주 눈에 띄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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갑미 누나가 직업을 바꾸면서 이름도 '쥬리'로 바뀌었다. 쥬리로 바꾼 뒤 한 번도 겨울에 언 내 손을 잡아주지도, 여름날 뺨에 묻은 땀을 닦아주지도, 봄가을에 언덕에 핀 꽃 이름을 가르쳐주지도 않았다. 다만 초콜릿과 추잉껌을 주었을 뿐.

그렇게 삼사 년쯤 지났을까, 일 년에 한 번씩 부대를 개방하는 날 쥬리 누나는 조지인가 뭔가를 만나러 갔다가 시체가 되어 나왔다. 그날 아침 마지막 본 누나는 양귀비꽃보다 더 밝은 웃음을 띠었는데 몇 시간 뒤엔 얼어붙은 배추보다 더 푸르죽죽한 시체로 변했다.


동네 어른들의 말로 수영도 못하는 애가 물 위에 둥둥 떠 있었다고 했다. 수영장에 있었으면 수영복을 입고 있어야 하는데 발가벗은 채였다고도 했다. 목이 졸린 흔적이 뚜렷했다고도 했다. 그렇지만 미군 엠피가 다 조사해 나온 결론은 수영 미숙으로 인한 사망이었다고 했다.

가끔씩 길을 가다 서양남자와 우리나라 여자가 걸어가는 모습을 볼 때가 있다. 이제는 전과 달리 둘의 순수한 사랑이 전제된 만남이리라. 그래서 어떤 면에선 아름답기까지 하다. 그런데 나는 가슴이 아프다. 특히 덩치 큰 할로가 작디작은 우리나라 아가씨와 함께 걸을 때는 더욱 그렇다.


갑미 누나가 양갈보가 된 나이는 내가 초등학교 3학년 때니 15살이었고, 죽은 나이는 19살이었다.


*. 커버 사진과 두 번째 사진은 구와바라 시세이의 [기지촌, 문산]에서 퍼왔습니다.

그리고 수필이라 사실 그대로 적어야 하나, 이름과 나이 등을 바꾸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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