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7화 : 아이스케키 장사와 소나기

제7화 : 아이스케키 장사와 소나기



여름날이면 예나 제나 아이들은 아이스크림을 찾는다. 더위에 한 입 가득 담고 빨아먹는 맛을 그 무엇에 비기랴. 옛날의 아이스케키와 이제의 아이스케키는 이름과 모양 면에서 차이가 있지만 아이들이 좋아하는 정도는 같았다.

그때나 지금이나 초등 나이의 아이들이 할 수 있는 아르바이트 자리가 그리 흔하지 않았다. 신문배달이야 하려 들면 쉬 얻을 수 있었지만 아침에 일찍 일어나야 하는 부담감과 노력에 비해 수입이 적어 택하는 이가 적었다. 즐기면서, 먹으면서, 돈 버는 일로 으뜸이 여름에는 아이스케키 장사요, 겨울에는 찹쌀떡 장사였다.



내가 아이스케키통을 어깨에 맨 까닭은 물론 용돈 때문이었다. 어른만 돈이 필요한 게 아니라 아이도 필요했다. 어른은 살기 위해서라면 아이는 놀기 위해서라는 점이 달랐지만…. 아이들은 구슬을 사야 했고, 딱지를 사야 했고, 과자도 사 먹어야 했다. 그러나 집에서 돈을 얻기란 별똥이 떨어진 지점을 찾는 일만큼이나 어려웠다.

아랫집 경찬이는 만나기만 하면 나를 세뇌시켰다. 아이스케키통을 매기만 하면 돈을 벌 수 있다고. 필요로 하는 돈이 들어올 수 있다는 기대와 아버지나 누나에게 들키면 끝장이라는 갈등 속에서 며칠을 망설이다가 결국 돈을 택했다.



아이스케키 장사를 하려면 우선 도매상을 찾아간다. 그런데 거기는 신문팔이처럼 빈손으로 갈 수 없다. 일정한 돈을 맡겨야 한다. 혹 아이스케키통을 깨뜨리거나 갖고 튈 때를 대비한 통값과 50개 분량의 아이스케키 값을 선납해야 한다. 그러니까 미리 돈을 주고 통과 아이스케키를 사 오는 셈이다.

갈등은 잠깐, 실천은 금세였다. 아버지가 쓸 돈을 넣어두는 천장 위 작은 구멍 속으로 손을 뻗쳐 십 원을 빼냈다. 겁이 나기는 했지만 빨리 벌어와 저녁에 아버지 돌아오기 전에 거기 넣어두면 된다는 생각이 겁을 덜게 했다.


장소는 북성극장 주변을 택했다. 거기는 서면 극장가에서 유일하게 외화를 개봉 상영하다 보니 사람들의 드나듦이 많은 곳이었다. 경찬이와 함께 거기 아이스케키 도매상으로 갔다. 장사를 잘하려면 잘 파는 것보다 잘 녹지 않도록 하는 게 더 중요했다. 녹은 아이스케키와 그렇지 않은 아이스케키는 비교할 수 없었으니...

그런 점에서 아이스케키통을 잘 골라야 했다. 그때의 아이스케키통은 겉은 나무로 돼 있고, 속에 코르크나무가 얇게 덧대진 형태였다. 그런데 간혹 덧대진 코르크가 떨어져 나가고 나무로만 된 통도 있어 경험이 많은 애들은 그 통을 피했는데 경험이 적은 우리는 나무로만 된 통을 배정받았던가 보다.


아이스케키 판매고는 통과 더불어 억양도 한몫했다. 첫 음절에 강세를 주느냐 둘째 음절에 강세를 주느냐 셋째 음절에 강세를 주느냐에 따라 손님에게 주는 인상이 차이 났다. 즉 '아~이스케키', '아이~스케키', '아이스~케키'에 따라 달랐다.

신출내기인 우리 둘은 부끄러움이 채 가시지 않아 그런 걸 제대로 읽어낼 줄 몰랐다. 그래도 처음 몇 개는 잘 팔렸다. 허나 시간이 가며 아이스케키 녹은 물이 통 밖으로 새 나오면서 일이 커졌다. 50개 한 통을 받아 겨우 열 개 남짓 처리한 터에 녹아내리니….

할 수 없이 한 개 10환 하던 걸 두 개로, 세 개로, 나중에는 다섯 개까지 했지만 사가는 사람이 없었다. 마침내 열 개로까지 늘려보았지만 꼬챙이에만 살짝 달라붙은 걸 사려는 사람이 나서지 않음은 당연한 일.


2-1.png (영화 <아이스케키>에서 화면 캡쳐)



주인아저씨에게 통값으로 미린 낸 돈 대신 아이스케키 30개를 사정사정하여 다시 매고 나왔다. 그때도 통 문제라고는 생각 못했다. 사람들이 빨리 사지 않아 그렇다고. 그러나 역시 이번에도 몇 개 못 팔아 다 녹아버렸고. 나는 두 시간 만에 아버지 몰래 훔쳐온 돈을 다 날리고 말았다.

아버지에게 맞아 죽거나, 집을 나가거나 둘 중 하나를 선택해야 할 지경에 이르러 한 가지 방법이 더 떠올랐다. 집으로 갔다. 아무도 없었다. 다시 천장 구멍 속으로 손을 넣었다. 이번에 잘 팔면 돈을 채울 수 있으리라는 기대감에서.


다시 아이스케키통을 매었다. 이번에는 기대를 저버리지 않고 스무 개가 순식간에 팔렸다. 이제 드디어 돈을 벌 수 있겠구나 하는 심정에 불알에 요령 소리 나듯 뛰어다니는데, 아… 갑자기 하늘이 캄캄해지면서… 소나기가 내리는 게 아닌가.

극장 앞 간판 아래로 비를 피했지만 빗줄기만큼이나 통 아래로 아이스케키 녹은 물이 줄줄 흘렀고, 내 눈에서도 눈물 콧물이 하염없이 흘러내렸다. 하필 소나기가 십 분도 아니고 이십 분도 아니고... 무려 한 시간이나 따뤘으니...



그날 우리 둘은 가출을 했다. 가출했다고 하나 동네 뒷산 우리들의 아지트로 갔을 뿐. 그곳은 낮에 놀 때 햇빛을 가리고 비를 피하기 위해 오리나무 등으로 서까래를 만들고 칡넝쿨을 덮어 만들어놓은 움집 같은 곳이었다.

둘은 누웠다. 산속의 밤이 깊어가면서 좀 무서웠지만 둘이 있다는 사실에 서로 껴안고 얘기하다 저도 모르게 어느새 잠이 들었던가 보다. 갑자기 들려온 소리와 불빛에 눈을 뜨는 순간 나는 멱살이 잡혀 저절로 일어났다. 아버지였다.


아버지는 내가 들어오지 않자 친구들을 불러 물었는가 보다. 친구들을 통하여 저지른 잘못으로 집에 들어오지 못해 어딘가 피신했음을 짐작했을 테고, 그곳을 다시 수소문했던 모양이다. 어두운 불빛 아래서도 화가 잔뜩 난 아버지의 얼굴이 들어오는 순간 진짜 죽었구나 하는 생각이 아찔해졌다. 그리고 이내 마당까지 끌려와 땅에 패대기 쳐졌다.

그런데 아버지의 매가 떨어지기 전에 내 뺨에 불이 났다. 누나였다.

“누가 너더러 돈 벌어오랬나!” 하는 소리에 이어 마구마구 욕을 하면서 다시 반대쪽 뺨에 불이 났다. 누나의 손찌검에 이어 엄마가 나섰다. 엄마 역시 뺨을 때리고 “이런 놈은 맞아 죽어야 된다.” 하며 마구 야단을 쳤다. 아마 태어나 처음으로 누나와 엄마에게 맞았을 게다.



나는 누나와 엄마가 저리도 화를 내는 걸 보고 정말 아버지에게는 죽었구나 하는 마음에 간이 점점 작아져 좁쌀만 해졌다. 누나와 엄마 두 사람의 체벌과 욕을 고스란히 받던 중 아버지의 소리가 들렸다.

“마, 고마 해라! 내가 야 직일 줄 알고 너거가 먼저 그러제. 됐다 마. 니는 퍼뜩 씻고 들어가라.”

그걸로 끝이었다. 불안감으로 방에 가서도 재빨리 이불을 뒤집어쓰고 누웠는데도 내 옆에 가만히 눕는 아버지의 기척만 느껴졌을 뿐. 다음날도 아무 일 없었다. 정말 아무 일 없었다. 사건은 엄청났지만 정말 아무 일 없이 지나갔다.


*. 커버 그림은 아는 이가 그려줬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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