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8화 : 하야리아 부대(1) - 동요 아닌 욕 노래

제8화 : 하야리아 부대(1) - 동요 아닌 욕노래



미군부대 근처 사는 아이들은 동요를 배우기 전에 '19금(禁) 노래'부터 배웠다.


내가 살던 곳 가까이에 하야리아부대가 있었다. 원래 이 부대는 광복 직후 주한미군 부산기지사령부였는데, 거기 초대사령관이 자신의 고향 마을 이름을 따 '하야리야 부대'로 부른 게 계속 이어졌다 한다.

우리는 거기서 다른 지방 아이들이,

“산토끼 토끼야, 어디를 가느냐? / 깡충깡충 뛰면서 어디를 가느냐…”라는 신나고 발랄한 노래를 배우기 전에,

“양갈보 똥갈보 어디로 가느냐? / 깡충깡충 뛰어서 할로한테 갈 테야.” 하고 부르며 놀았다.


이 노래를 다 익히고 나면 다음 노래로 “… 뻐꾹 뻐꾹 뻐꾸기의 노래가, 뻐꾹 뻐꾹 은은하게 울리네 …” 하며 이어지는 우아하고 서정 어린 <뻐꾸기 왈츠>를, 작곡가 요나손이 아마 가사의 뜻을 알았더라면 기절초풍했을 내용으로 바꿔 불렀다.

“할로 할로 ㅈ몽디가 성하나,

할로 할로 ㅈ몽디가 성하나 … ”



노래의 어원은 ‘놀다’의 어근인 ‘놀’에다가 접사 ‘애’가 붙어 만들어진 말이다. 즉 노래는 놀이 문화의 하나인 셈이다. 따라서 아이들의 노래는 아이들의 놀이문화다. 그런데 왜 나는, 아니 우리 동네 아이들은 이렇게 담긴 뜻도 모르면서 몹쓸 노래를 부르며 놀아야 했을까?

하야리아 부대 정문과 후문 쪽에 즐비하게 늘어선 여자들을 고용한 술집 - 그때는 그런 술집을 ‘빠’라 함-과, 외출날이면 여기가 한국인가 미국인가 의심스러울 정도로 짝 깔리는 할로들과, 또 거리엔 입술을 빨갛게 칠하고 팬티가 보일 정도로 짧은 미니스커트를 입고 다니는 헤아릴 수 없이 많은 양갈보들.

할로가 있고 양갈보가 있으니 그런 노래가 나올 수밖에 없는 환경이었으리라. 바로 우리가 살고 있는 터전에서 보고 듣고 배우는 게 그것밖에 없으니 맹모의 '삼천지교'를 들먹이지 않더라도 아이들에게 맞는 아이다운 노래를 부르지 못했다.


2.png (<KBS뉴스> 2017년 8월 23일에서)



연지동(蓮池洞)은 이름 그대로 '연지초등학교'가 지어지기 전의 그 터에 ‘연꽃이 빽빽이 들어 찬 못’이 있어서 붙여진 이름이다. 거기는 봄날 연잎에 물을 부으면 수은처럼 도르르 말리면서 보드라운 옥구슬을 만들어내는 곳이었다.

여름엔 연분홍의 예쁜 꽃을 보며 절로 ‘야, 직인다!’란 탄성을 터뜨리고, 비라도 올라치면 그 잎으로 우산 대신 머리 위에 쓰며 잰걸음을 옮기기도 했다. 또 가을이면 연잎 대궁이에 볼록 솟아난 고소한 연밥을 따먹는 재미와 못 속에 발을 넣어 비비다 까칠까칠한 감촉이 오면 고개 숙여 건져낸 말밤을 삶아 먹는 재미도 쏠쏠했다.


겨울도 다른 계절 못지않다. 아이들은 너도나도 썰매를 갖고 연지에 모여든다. 그곳은 썰매 타기 더없이 좋은 곳이었다. 조그만 도랑에서 썰매 타던 재미를 넓은 못에서 타는 재미에 비길 수 있을까?

더욱 겨울이 끝날 즈음 얼음이 약간 녹을 무렵의 고무얼음일 때면 재미가 절정에 다다른다. 얼음이 흔들리며 뿌직 뿌직 소리를 내면 아이들은 위험보다 너울너울 흔들리며 춤추는 듯한 그 맛을 더욱 즐겼다. 위험하기에 재미있다는 역설을 당시의 아이들은 이미 깨달았던 것이다.



자연스럽게 자연을 벗하며 자연 속에 놀며 자연을 배우던 아이들이기에 다른 곳 아이들보다 반지빠르지도 못했고, 어리석을 정도로 착했다. 약한 애를 건드리지도, 못 사는 애를 깔보지도, 다 떨어진 옷을 입어도 흉보지 않았다. 그런데 왜 그런 노래를 불러야 했을까?

아무리 똘똘한 아이들이라도 노래의 가사를 바꿔 만들 수는 없었을 게다. 가사 내용을 보면 아이들이 쉬 이해할 수 없는 부분이 많으니까. 누군가 뒤에서 의도적으로 조종한 이가 있다면 짓궂은 어른들이 아니었을까?


그렇게 조종한 어른들의 장난은 농도를 한층 더 짙게 만들었다. 양갈보든 아니든 생쥐 입술처럼 빨갛게 칠하고 짧은 치마만 입은 여자만 지나가면 아이들은,

"솥 때우소 냄비 때우소,

지나가는 양갈보 ㅂㅈ 때우소 … "

한다. 단지 짧은 치마에 입술연지 진하게 발랐다고 이런 욕노래를 듣게 된 것이다.

이걸로 끝이 아니다. 할로들의 이름 중에 우리나라 철수처럼 가장 흔한 이름인 '조지'란 이름을 갖고도 희롱한다.

“조오지는 ㅈ이 길어서 조오지라 하지요,

조오지는 ㅈ이 길어서 조오지라 하지요 … ”


1.png <디자인정글>(2011년 2월 17일에서)



“자주 꽃 핀 건 자주 감자. 파 보나 마나 자주 감자.

하얀 꽃 핀 건 하얀 감자. 파 보나 마나 하얀 감자.”


이렇게 아름다운 노래를 배우지도 부르지도 못하고 아이들은 할로, 양갈보, 아니면 남녀 성기를 직접 들먹이는 노래를 불렀다. 아니 노래로 끝나지 않고 놀이를 하면서도 불렀다. 비석치기 할 때 상대방의 실수를 유도하려고 불렀고, 다방구나 깡통차기를 할 때는 술래를 놀려 혼란스럽게 만들려고 불렀다.


언젠가 밤늦게까지 술을 마시고 아침에 일어났을 때 아내가 나더러, “당신 어젯밤에 불렀던 노래가 뭐예요?” 하는 게 아닌가. 기억이 잘 안 나 “내가 무슨 노래 불렀지?” 하자, “노래인지 욕인지 모를 희한한 노래를 다 부르던데 …” 하며 아주 어처구니없다는 표정이 아닌가. 한 번 불러보라고 하자 자기 입에 올리기엔 상스러운 노래였다는데 대충 짐작해 보니 아무래도 어릴 때 불렀던 노래인 것 같다.


동요를 잃어버린 세대는 어린 시절의 소중한 체험을 잃어버린 거나 마찬가지다. 아무리 잊으려 해도 어릴 때의 경험은 무의식 중에 드러난다. 동요 대신 욕노래를 불러야 했던 안타까움은 지난 세대의 이야기로 끝나야 한다. 다시는 그런 노래를 불러야 할 시기가 와선 절대로 안 된다. “아름다운 노래, 정든 그 노래가 우리 마을에 메아리쳐 오는” 그런 날만 이어지기를...


*. 커버 사진은 <뉴시스> 2016년 12월 28일에서 퍼왔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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