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애는 우리 집 바로 아래아래 살았다. 나보다 한 살 어리니까 지금쯤은 아이들의 엄마로, 아니 어쩌면 할머니가 됐을지도 모르겠다.
신애는 중학교에 가지 못했다. 요즘 들어 ‘안 했다’ 대신 ‘못했다’를 써야 할 때면 종종 망설인다. 둘의 쓰임은 분명히 다르기에 그에 따라 맞춰 쓰면 되련만 선뜻 하나를 택하지 못한다. 스스로가 택할 수 없어 주어진 환경에 어쩔 수 없이 따라야만 했을 때, 그 선택을 강요받은 이의 입장을 헤아리노라면 ‘못했다’란 말이 쉬 나오지 않는다.
신애는 중학교 가는 대신 신발공장 시다로 들어갔다. 위로 두 살 많은 오빠의 중학교 등록금을 걔가 된다는 소문이 금방 우리 집에 전해졌다. 울엄마 말대로라면 아래 두 살 어린 남동생도 내후년에 중학교 가게 되니 그 학비도 담당해야 할 것 같다고 했다.
신애가 신발공장에 들어가기 위해 최초로 한 일은 법을 어기는 일이었다. 그때도 고용 최소 연령의 제한이 있었는지 신애는 저보다 네 살 많은 봉제공장 다니던 정애 언니의 호적초본을 넣었다. 그러니까 법을 좋아하는 이의 표현대로라면 공문서를 위조한 위장취업인 셈이다.
당시 부산에는 신발공장이 잘 돌아갔다. 검정고무신을 맨 처음 생산한 기차표 '동양고무'와, 타이어 상표가 뚜렷한 '보생고무'와, 왕자표의 '국제화학', 범표의 '삼화고무', 그리고 어떤 마크인지 생각나지 않으나 '진양고무'도 있어 여자아이들이 취직하기에는 좋은 조건이었다.
신애는 학교 가는 나보다 두 시간 일찍 나갔는데 돌아오는 시간은 훨씬 더 늦었다. 날이면 날마다 잔업을 하니까 언제 들어오는지 알 수 없었다. '철야'란 이름으로 작업할 때는 말 그대로 밤새워야 했다.
(국제화학 신발공장 - <국제신문> 2014년 4원 30일)
토요일이라고 별 수 없었다. 나야 한 시쯤이면 집에 왔으나 공장에는 토요일이 없었다. 일요일도 나가야 할 때가 많았다. 그러니 둘이 마주칠 기회가 별로 없으련만 신애는 일주일에 한 번은 꼭 우리 집에 왔다.
신애는 책 읽기를 참 좋아했다. 우리 누나나 내가 읽으려고 갖다 놓은 몇 권 안 되는 책을 빌리기 위해 시간을 내었다. 다른 애들은 시간 나면 놀러 다니거나 아니면 잠을 잔다던데 신애는 조금이라도 짬이 나면 쉬는 대신 꾸준히 책을 읽었다. 신애는 책 읽는 게 너무 재미있다고 했다. 노는 것보다, 옷 사러 다니는 것보다, 잠자는 것보다, 군것질하는 것보다 책 읽는 게 좋다고 했다.
고등학교 다닐 때 우연히 들른 신애랑 저번 주 우리 집에서 빌려간 책에 관해 얘기 나누다가 깜짝 놀랐다. 나도 읽었지만 줄거리나 겨우 기억하는 책의 내용을 완전히 꿰뚫고 있었고, 상당히 많은 구절구절을 어떻게 외웠는지 눈을 슬며시 감고 얘기하는 게 아닌가.
대학교 다닐 때도 마찬가지였다. 국문과 다니는 나랑 비교해도 훨씬 많은 책을 깊이 있게 읽었다. 얘기 나누다 보면 어떤 땐 자존심이 상하기도 해 학교에서 얻은 지식을 내세워 억지를 부린 적도 있었다. 그러나 여대생뿐 아니라 남학생들도 피하는 니체와 칸트와 사르트르 철학을 얘기할 때면 나는 입을 다물어야 했다.
그러던 어느 날 신애가 대학교 뺏지('badge'의 정확한 외국어 표기는 '배지')를 하나 구해 달라고 했다. 나는 별생각 없이 구해다 주었고, 그리고 잊어버렸다. 그런데 동네 애들 사이에 신애가 연애한다는 소문이 나고, 사귀는 애가 대학생이라는 얘기가 들려왔다. 처음 그 얘기를 들었을 때는 말도 안 되는 소리라 여겼다. 국졸이 대학생과 사귀다니? 나 자신 아무리 여자애가 마음에 들더라도 국졸이라면 쳐다보지도 않을 텐데 하며.
소문을 들은 지 얼마 지났을까, 어느 일요일 목욕탕 가는데 저만치 걸어가는 깔끔하게 차려입고 한 손에 책을 들고 걷는 여자의 뒷모습을 보았다. 우리 동네에는 저렇게 멋지게 빼입고 책을 들고 가는 여자가 없는데 하는 생각에 발걸음을 빨리 하여 나란히 서 슬쩍 옆을 보았다. 바로 신애였다. 그 순간 내가 사준 뺏지가 옷깃에 달려 있는 걸 보았다. 신애는 얼른 손에 든 두터운 영어원서로 뺏지를 가렸고, 나는 혀를 차며 돌아섰다.
(<가톨릭뉴스> 2014년 10월 15일)
몇 달이 지났을까, 신애가 ‘전국 쥐 잡기 날’을 위해 동사무소에서 배급된 쥐약을 먹고 자살을 시도한 사건이 터졌다. 이내 그 집에 갔다 온 엄마가 전해준 얘기를 듣는 순간 결국 일이 터지고야 말았구나 했다. 다행히 목숨은 건졌으나 위장을 버려 평생 고생하며 살아야 한다는 얘기도 함께.
신애가 가족 몰래 부은 적금을 타 그 대학생의 학비로 주었나 보다. 허나 그놈은 졸업할 무렵 신애를 차버렸고. 삼류영화의 주인공처럼 신애는 몸도, 마음도, 학비도 다 빼앗긴 채 버림받았고…. 쥐약을 먹을 수밖에 없었다 해야 하나.
신애는 병원에서 돌아온 다음 날 집을 나가고 말았다. 걔 엄마는 아직 몸도 회복 안 된 년이 죽으려 환장했다고 울음을 터뜨렸고, 걔 아버지는 제 엄마더러 ‘딸년 교육 제대로 못 시켜 남세스럽다’며 문을 닫고 들어갔다.
신애는 지금 어느 하늘 아래서 살고 있을까? 대학 국문과 나온 나보다 더 열심히 책을 읽었던 소녀, 니체를 칸트를 사르트르를 가르쳐줬던 소녀, 마음이 한없이 따뜻했던 소녀, 가진 것 없어도 부자였던 소녀, 그러나 비극의 주인공이 된 소녀.
부디 좋은 인연 만나 행복하게 살고 있기를, 그게 아니면 제발 그때 얻은 후유증이나마 다 사라져 위장만은 정상 회복되어 건강하게 살고 있기를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