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5화 : 소눈깔 아줌마
우리 집 건너 건너에 상구 형이 살았다. 상구 형은 나보다 두 살 많았는데, 두 살 나이 차이에도 불구하고 같이 놀았다. 상구 형 가족은 엄마와 형 단 둘이다. 그러니까 우리 동네에서 가족수가 가장 적은 셈이다.
마을 아저씨들을 부르는 호칭은 '누구 아버지' 하는 호칭과 '김, 이, 박...' 하는 성에 씨를 붙인 호칭보다 직업을 이용한 호칭이 더 자주 쓰였다. 즉 '연탄집 아저씨', '쌀집 아저씨', '만화방 아저씨' 등. 대신에 아주머니들도 쌀집 아줌마 등으로 불리는 이도 있지만 그냥 '누구 엄마'로 불리는 게 통상이었다.
그런데 직업과 관계없이 별명을 가진 아주머니가 한 사람 있었다. 바로 상구 형의 엄마였다. 상구 형의 엄마는 ‘소눈깔 아줌마’로 불리었다. 자동적으로 상구 형은 ‘상구’란 이름보다 ‘소눈깔네 아들’이었고.
상구 형은 그 호칭을 너무너무 싫어했다. 그 앞에서 동갑이나 나이 어린애들은 절대로 불러선 안 되는 호칭이었다. 무심코라도 사용했다간 주먹이 매운 상구 형에게 떡이 된다. 나이 많은 형들도 함부로 부르지 못했다. 자칫 운 나쁘면 짱돌로 머리에 구멍 날 지도 모르기에.
상구 형의 엄마가 소눈깔로 불리게 된 건 바로 오른쪽 눈 때문이었다. 일반적으로 유난히 눈알이 굵을 때 소눈깔만 하다고 한다. 그럴 경우에도 눈이 다른 이들보다 조금 더 크고, 대신에 두 눈의 크기가 같다.
그러니 눈이 커서 소눈깔로 불린다면 화를 낼 필요가 없을 것이다. 그러나 상구 형이 화를 낸 이유는 엄마가 진짜 소눈깔이었기 때문이다. 아니 이 말은 분명히 잘라 말할 수는 없다. 소눈깔인지 개눈깔인지는 확인된 사항이 아니었으니까.
상구 형의 엄마는 한쪽 눈, 즉 오른쪽 눈이 유난히 컸다. 남들보다 조금 더 큰 정도가 아니라 누구라도 보면 정상적이 아니라고 여길 만큼 컸다. 동네 어른들은 오른쪽 눈알을 뺐다 넣었다 하는 걸 보았다고 얘기하곤 했다.
어린 우리들로선 처음 그 얘기를 듣고 도무지 믿기지 않았다. 눈알을 뺄 수 있다니…? 또래의 아래아래집 민기는 저도 눈알을 빼보고 싶다고 했다가 진짜 눈알이 빠질 정도로 제 아버지에게 얻어맞았다는 말을 들었다.
상구 형의 엄마는 아침맏 재첩국을 팔러 다녔다. 새벽에 부전시장에 가 사온 재첩국을 동이에 이고 다니며 “재첩국 사이소! 재첩국 사이소!” 하며 외고 다녔다. 가끔씩 뉘 집 대문 앞에 동이를 내려놓고 어깨를 두들기는 모습을 보는 건 드물지 않았다. 매일 그렇게 무거운 동이를 이고 다니며 얼마나 버는지 모르지만 상구 형과 두 식구인데도 가난하긴 우리나 다름없었다.
그런데 상구 형은 엄마를 무척이나 싫어하였다. 엄마가 부를 때 대꾸하는 걸 한 번도 본 적 없었고, 또 저가 엄마라고 부르는 걸 본 적도 없었다. 뿐인가, ‘ㅆㅂ년’이란 말을 붙여 가며 욕을 할 때도 있었다. 아버지는 그런 후레자식과는 절대로 놀지 말라고 했지만 상구 형의 주먹이 무서워서 그럴 수도 없었다.
상구 형은 중학교 졸업하자마자 어디론가 가버렸다. 제 엄마에게는 한마디 말도 안 한 대신 “ㅆㅂ년 보기 싫어서 집 나간다.”는 말을 우리들에겐 던졌으니 요즘 식으로 말하면 가출을 통고한 셈이나 우린 상구형의 엄마, 소눈깔 아줌마에게 알리지 못했다.
그날 저녁 동네에선 오직 상구 형의 엄마가 아들을 찾아다니며 울부짖는 소리만 들려왔다. 다음날 그렇게 여겨선지 아줌마의 눈은 진짜 소눈깔처럼 커 보였고, 토끼눈깔보다 더 빨갰다. 그리고 아줌마의 눈에 눈물은 사라졌지만 그 자리를 사슴눈처럼 슬픈 눈이 자리 잡았다.
내가 상구 형의 소식을 다시 들은 건 그로부터 훨씬 뒷날의 일이다. 아줌마는 그때 재첩국 장사에서 얻은 후유증으로 허리를 상하여 집에서 용돈이나 버는 잔일을 하고 있었던 모양이다. 그런데 형사 한 사람이 아줌마 앞에 나타나면서 상구 형의 소식이 알려지게 되었다.
내가 대학교 2학년이던 여름날이었다. 그 해 유월 인천에서 집단폭력배들끼리 세력 다툼이 있었는데 그 과정에서 여러 사람이 중상을 입고 한 사람은 죽는 사건이 일어났다 한다. 그때 가해자 중 한 명이 바로 상구 형이었는데 형사가 주소지를 찾지 못해 한참이나 애써다가 겨우 찾아왔다나.
전해 준 이들의 말에 따르면 아줌마는 한순간 말문을 닫았다 한다. 허나 그래도 죽은 줄 알았던 아들이 살아있는 것만 해도 어디냐 하면서 일어서더란다. 그날 이후 상구 형의 엄마는 동네를 떠났다. 들려오는 말로는 아들 뒷바라지하려고 인천으로 올라갔다는 얘기만 있었을 뿐 그 뒤로 소식을 들은 바는 없다. 다만 가장 가까이 지낸 동동주집 아줌마가 전해 준 이야기가 동네 사람들의 입에 오르내렸을 뿐.
소눈깔 아줌마가 떠난 뒤 눈에 얽힌 사연이 알려졌다. 상구 형이 아주 어릴 때 미군부대 근처에서 놀다가 지프차가 지나가며 튕긴 돌에 맞아 한쪽 눈이 잘못돼 애꾸눈이 될 수밖에 없는 처지에 놓였다고 한다.
미군부대에서 이식수술은 해주겠으나 이식할 눈이 있어야 한다는 말에 그의 엄마가 자신의 눈 하나 떼 내어 이식시키고, 그 자리에 다른 것을 박아 넣었다고 한다. 이게 당시의 의학으로 가능한지 어떤 지는 잘 모르겠다. 그때는 누군가 실제든 가짜든 얘기하면 그 말이 옳다고 믿었으니까.
동동주집 아줌마로 하여 그 뒷얘기가 더 이어진다. 두 아줌마는 서로 연락을 하였나 보다. 상구 형 엄마는 올라간 뒤부터 형무소 바로 앞에다 집을 얻어 날마다 면회를 갔으나 만나주지 않았단다. 제 엄마 얼굴 보기 싫다면서.
그 뒤 소눈깔 아줌마의 몸이 좋지 않다고 연락 온 날 동동주 아줌마는 인천으로 올라갔다. 그런데 내려올 때는 상구 형의 엄마가 죽었다는 소식을 안고 왔다. 그날 저녁 동동주를 한 잔 들이켰는지 동동주 아줌마는 없는 상구 형을 마치 앞에 앉아 있는 양 삿대질하며 욕을, 온갖 욕을 퍼부었다. 제 어미를 잡아먹은 호로자식이라고. 그리고 상구 형에 관한 얘기는 끝난다.
지금 마을에서 소를 볼 때 가끔 상구 형 엄마가 떠오른다. 그 아줌마의 큰 눈이. 그리고 모자의 끝을 알 수 없는 다음 이야기를 만들어본다. 상구 형은 뒤늦게 자신의 눈이 제 엄마의 눈이었다는 걸 알고 참회의 눈물을 흘렸다고.
*. 커버 사진은 구글 이미지에서 퍼왔으며, 수필은 사실 그대로 적어야 하나, 이름과 나이 등을 다 바꿨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