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3화 : 지우고픈 연탄가스의 추억
내 몸이 지닌 오감(五感) 중 성능이 가장 뛰어난 감각이 후각이다. 누구보다 먼저 냄새 맡으며 웬만한 냄새는 그 종류를 금방 알아낸다. 아내는 가끔 나더러 “아무래도 어릴 때 별명이 ‘개코’였나 봐.” 하는데 그런 별명을 가진 적 없으나 냄새만은 잘 맡는다고 다들 인정했다.
아시다시피 냄새 잘 맞는 건 이로울 때가 있지만 그렇지 않을 때가 더 많다. 지금과 달리 공부를 좀 해도 가난한 집 아이들은 공고나 상고를 택했고 나도 예외가 아니었다. 공고 중에서도 화학과로 진학했기에 대학을 갈 수밖에 없었다고 하면 이해가 될까?
냄새 때문이었다. 화학실험실의 그 냄새. 이 길로 가면 제대로 살지 못하고 얼마 안 가 죽을 수밖에 없다는 판단에 대학 진학이라는 무리수를 둬야 했다. 전공도 결국 화학과는 전혀 관련 없는 국문과를 택해야 했고.
그뿐 아니다. 공해 냄새를 누구보다도 먼저 맡는다. 울산이 공업단지라 공해가 많은 곳으로 알려졌지만 내가 근무했던 곳은 중공업 바로 곁에 자리하고 있으나 냄새가 별로 풍기지 않아 괜찮았다. 그러나 날이 흐린 날 기압이 낮아지면 장생포 너머 화학공단 쪽에서 냄새가 날아온다.
하수구 썩는 듯한 냄새가 나는데 남들은 그 냄새를 못 느끼다가 아주 심해져야 “야 이거 무슨 냄새야?” 하고 말을 꺼내는데, 나는 그때쯤이면 ‘오늘은 아황산가스가 암모니아가스보다 많이 포함됐네, 아니면 오늘은 암모니아가스가 더 많이 섞였구나.’라고 분석까지 하는데...
어릴 때 우리 마을에 칠공주집이 있었다. 말 그대로 딸이 일곱인 가정이다. 그러다가 나중에 막내로 아들이 하나 더 불면서 칠공주집이란 말이 쑥 들어가고 ‘기호네집’이 되었다. 오랫동안 오공주집, 육공주집, 칠공주집 하고 써오던 이름이 아들 하나 태어나면서 '기호네집'으로 통일되었다.
두 말할 필요 없이 그 애는 가족의 사랑, 아니 걔 아버지의 사랑을 독차지하면서 자랐다. 걔는 우리보다 두 살 어렸지만 함께 놀았다. 사내답다기보다 꼭 계집애처럼 생겨 녀석을 끼워주지 않으려 했으나 또래의 놀이에 끼워준 건 순전히 걔 아버지 때문이었다. 아니 틈틈이 가져다주는 과자의 힘이었다고 함이 더 정확한 표현이리라.
그 시절에는 다들 연탄을 피웠다. 나중에 연탄을 이용한 '온수온돌' 난방으로 발전되기 전까지는 연탄불길이 직접 방고래를 따라 들어와 데우는 구조로 돼 있었다. 그러니까 이전에 장작불 땔 때의 구조를 바꾸지 않고 그대로 이용했다는 말이다. 그러니 연탄의 불길이 잘 들어와 방은 뜨거웠지만 방바닥이 부실하여 가스가 새는 경우가 흔했다.
동네에는 겨울이면 많은 집에서 연탄가스 중독사고가 생겨났다. 죽는 사람도 생기고, 머릿속을 가스가 한 바퀴 휘돌다 간 탓에 바보가 된 사람도 있었다. 다행히 우리 집에선 연탄가스로 인한 사고는 한 번도 일어나지 않았다. 나 때문이었다.
아버지와 함께 자던 방은 부엌에서 바로 이어지는 곳이었는데, 나 때문에 한 사람도 가스 중독이 되지 않았다. 아무리 깊이 잠들었어도 연탄가스를 조금만 맡아도 깨어났다. 냄새에 유난히 예민했던 비강 구조가 가족을 살렸다고나 할까.
산동네를 책임지던 연탄 배달부는 한 사람이었다. 우리 동네에 연탄을 배달하려면 아랫동네까지 리어카로 싣고 와 지게에 지고 올라와야 했다. 한동안 우리 동네에 연탄을 잘 배달해 주던 아저씨가 어느 날 배달하지 않겠다고 선언했다.
이유는 아랫동네보다 산동네가 더 힘이 드는데도 돈을 같이 받을 수 없다는 것. 결국 아랫동네보다 좀 더 돈을 덧붙이기로 약속한 상태에서 다시 배달을 재개했다. 잘 사는 아랫동네보다 못 사는 산동네 사람들이 더 비싸게 연탄을 들여놓아야만 하는 역설이 그렇게 생겨났다.
기호네 집은 방이 두 개였다. 그 집에서 밥을 먹을 때와 잠을 잘 때 보면 재미있다. 방 하나에 아버지와 아들이, 또 다른 방 하나에 딸 다섯이, 요즘 같으면 거실(사실 거실이라기보다는 부엌을 쪼개 만든 공간)에 엄마와 딸 둘이 잤다. 밥 먹을 때는 아버지와 아들이 조그만 상에서 먹고, 엄마와 딸 일곱은 돌가루포대를 깔아놓은 곳에 밥과 반찬을 놓고 먹었다. 반찬도 달랐음은 물론이다.
어느 해 겨울 시골에 살던 기호네 할머니가 돌아가시는 일로 가족이 모두 시골로 갔다 며칠 머물렀다가 밤늦게 돌아오는 일이 생겼다. 며칠 비웠기에 당연히 연탄이 꺼져 있는 데다 연탄까지 딱 떨어졌던가 보다. 웬만하면 하룻밤 좀 춥더라도 이불과 서로의 체온으로 버텼으련만 기호 때문에 걔 아버지는 연탄 소매점에 가 두 장을 갖고 왔던가 보다.
가다귀(불이 잘 옮겨 붙을 만한 잔가지로 된 땔나무)를 구해 불을 피우고 거기에 연탄을 붙이는 등 애를 써서 겨우 연탄불을 피웠다 한다. 물론 아버지와 아들만 자는 방에만. 그리고 다음날 아침 사건은 크게 벌어졌다.
기호 엄마의 비명 소리에 놀란 마을 사람들이 몰려갔을 때는 기호는 이미 숨이 끊어져 있었고, 걔 아버지는 기식이 엄엄했던 모양이다. 동치미 국물을 들이붓고 야단도 그런 야단이 없었다. 덕분에 아버지는 살아났고. 허나 살아도 산 것 같지 않은 삶.
다음 날 개 아버지가 한 말이 마을을 떠돌아다녔다.
“아이고, 저 놈의 고추를 내가 우찌 맹글었는데, 우찌 맹글었는데...”
그다음 날이 되자 기호는 뒷산에 묻혔고, 점점 우리들의 기억 속으로 사라져 갔다. 우리들은 더 이상 기호 이름을 떠올리지 않았다. 가끔 걔 아버지가 갖다 주던 과자맛을 떠올렸을 뿐.
*. 커버 사진은 <KBS 뉴스>(2017년 2월 17일)에서 퍼왔습니다.
그리고 이 글이 수필이니까 있는 그대로의 사실을 적어야 하나, 이름과 나이 등은 다 바꿨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