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2화 : 막내누나의 달비

제2화 : 막내누나의 달비



내게는 딸과 아들 남매가 있다. 둘은 연년생이라 그런지 어릴 때부터 엄청나게 싸웠다. 보기만 하면 싸웠다. 별것 아닌, 하등 싸울 일이 아닌데도 싸웠다. 누나 되는 큰애가 양보하면 될 텐데 하면서도 작은놈이 하는 짓을 보면 싸울 수밖에 없구나 한다. 그래도 너무 싸우니까 늘 야단을 쳐야 했고 늘 매를 들어야 했다.

그런데 대학 가면서 둘은 싸움을 그쳤다. 그럼 사이좋아진 것이냐? 아니다. 싸우지 않는 대신 데면데면한 사이가 되었다. 둘은 서울에서 세든 같은 집에 살기에 안부가 궁금하여 큰 애에게 “동생 들어왔니?” 하고 전화하면, “몰라.”란 답이 나온다. 작은애한데 “누나 들어왔니?” 해도 마찬가지다. 같은 학교 다니면서 같은 집에서 둘만 4년 넘게 사는데도 여전했다.



내게는 형이 없는 대신 누나가 셋이다. 막내누나와 나는 나이 차가 열 살이다. 그 사이에 딸 하나 아들 셋이 더 있었다는데 다 어릴 때 죽었다 한다. 나이 차가 하도 나니까 누나와 싸울 수가 없었다. 초등학교 때는 더욱더 그랬다. 만약 대들었다가는 박살 난다. 나보다 훨씬 힘도 센 데다 아버지가 언제나 누나 편이었다. 누나가 벌어오는 돈으로 생활을 했으니 역학관계로 보면 너무도 당연한 일.

40년 전에 초등학교를 다닌 이라면 지금은 맛볼 수 없는 경험을 갖고 있을 게다. 기성회비를 못 내 학교에서 쫓겨나는 경우. 학교에서 쫓겨나면 어떤 이유든 기분 나쁠 텐데 그때는 당연하게 여겨 선생님이 “집에 가 기성회비 가져왓!” 하는 말이 떨어지면 교실을 나선다. 또 교실 쫓겨나는 일이 그리 부끄럽지 않다. 절반 이상이 거기 속했으니까.


대부분의 선생님들은 기성회비 낼 날짜를 못 박는다. 그날까지 못 내면 부모님 호출. 그러고도 못 내면 쫓아내고. 1교시 시작 전부터 쫓겨난 아이들은 집으로 가지 않는다. 집에 가 봐야 돈 나올 곳이 없는 걸 뻔히 알기에. 다들 학교 바로 옆 동산으로 간다. 야트막하면서도 무덤이 많아 놀기에 적당하다. 게다가 무덤가에는 잔디가 심어져 있어 뒹굴기 좋다.

수업이 끝날 무렵이면 그제사 다시 학교로 간다. 그러면 선생님께서 돈 갖고 왔느냐고 묻는다. 그럴 때 아이들의 입에서 나오는 말은 크게 같고 조금 다르다. 울먹이는 투로, “아부지는 돈 벌라고 멀리 가셨고, 어무이는 아파 누워있심니더.” 선생님은 거짓말인 줄 다 알면서도 “내일 꼭 갖고 오너라.”란 말로 끝내셨다.


4.png (대한민국 정책브리핑 : 소아암 환자 돕기 머리카락 기부 2022년 2월 3일)


막내 누나의 머리카락은 참으로 길었다. 뒤에서 보면 엉덩이까지 덮을 정도로 길었다. 그러니 머리 감을 때는 다른 사람보다 훨씬 시간이 오래 걸렸다. 아버지는 다른 이유로 야단이었다. 뜨거운 물을 많이 쓴다고. 엄마는 머리카락이 방 안 구석구석에 뒹군다고 싫어했다. 나도 싫었다. 머리를 감고 난 뒤 머리카락 말릴 때면 손으로 받쳐줘야 할 경우가 있었기에.

누나의 긴 생머리는 천덕꾸러기였지만 언제나 예쁘게 가꾸어져 있었다. 빗을 때 올이 성긴 빗으로 시작해서는 참빗으로 마무리했다. 어디서 구했는지 이상한 기름을 바르면 검은빛에 윤기가 자르르 흘렀다. 뿐이랴, 세 갈래로 요리조리 엇갈리게 땋은 머리는 뒤에서 보면 하나의 작품이었다.


날이면 날마다 아침등교 오후등교로 두 번씩 등교하는 날이 계속되면서 엄마를 졸랐다. 나도 공부하고 싶다고. 솔직히 공부하고 싶다기보다는 동산에서 노는 것보다 교실과 운동장에서 동무들과 놀고 싶은 마음이 더 강했지만. 그럴 때마다 엄마는 “쪼매이만 참아라.”는 말로 달랬다.

누나는 그즈음 공장 경기가 좋지 않아 쉬고 있었다. 누나만 공장에 다녔어도 수업받을 수 있었을 텐데 하는 마음에 원망의 눈빛을 보냈다. 그러니까 나의 채근은 엄마를 향한 게 아니라 누나를 향한 거였다.

어느 날 집 밖에서 “달비 사이소!” “달비 사이소!” 하는 달비장수의 외침이 들려왔다. 하루에도 몇 번이나 들려오는 소리라 그냥 한 귀로 흘려들었다. 사고팔러 다니는 게 한두 개라야 관심두지, 조금 있으면 등쪽엔 멜빵을 배쪽엔 북을 맨 아저씨가 지나간다. 아저씨는 북소리 ‘동동’에 이어 “구리모!”란 말을 덧붙였다. 그러니 아저씨는 ‘동동 구리모 장수'였다.



다음날 아침 식사 시간이었다. 그날도 누나는 집에서 쉬고 있었고, 나는 학교 가 봐야 어차피 또 쫓겨날 거라는 생각에 찌푸린 얼굴로 숟가락만 튕기는데 누나가 말했다.

“ㅇㅇ야, 누나 머리 긴 게 좋니? 짧은 게 좋니?”

나는 별생각 없이 “짧은 게 좋아.” 그렇게 한 마디 던지고 가방을 들고 일어섰다. 속으로는 짧든 길든 다 안 좋아.' 하고 싶었지만.


그날 여기저기 떠돌다 좀 늦게 들어왔더니 누나의 머리는 확 바뀌어 있었다. 머리가 여학생처럼 짧아진 게 아닌가.

“야 누나, 깔쌈하다.”

정말 내 보기에는 전의 긴 머리도 좋았지만 색다른 짧은 머리가 더 어울리는 것 같았다. 내 말에 누나는 얼굴을 붉게 물들인 채 고개를 숙였고, 엄마는 부엌에다 눈을 주고 있었다.

“누나 뒤로 돌려 봐.”

엉덩이까지 내려오던 모습이 어떻게 변했는가 하여 뒷모습이 보고 싶었다. 그러나 누나는 고개를 숙이고 있을 뿐 돌리려 하지 않았다. 그래서 누나 뒤를 보려고 일어서 발을 옮기려는데 평소 화를 잘 내지 않던 엄마가 꽥 소리를 질렀다.

“이 문디 자슥아! 아모리 철이 없다 캐도 …”

그리고는 더 말을 잊지 못했다. 나는 그 서슬에 누나의 뒷모습 보는 걸 포기해야 했다.


다음날 나는 기성회비를 들고 학교에 갔다. 그리고 한동안 쫓겨나지 않고 수업을 받을 수 있었다.


*. '구리모'는 화장품인 'cream'을 우리나라에선 크림이라 읽으나 일본식으로 읽으면 구리모가 됩니다.

그리고 '달비'는 잘린 긴 머리카락 댕기머리]를 뜻하는 경상도 사투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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