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1화 : 똥구멍이 찢어지다
어려운 삶을 얘기할 때면 늘 들먹이는 초근목피(草根木皮)는 우리말로 풀이하면 ‘풀뿌리와 나무껍질’이다. 여러 풀뿌리 중에서는 칡뿌리가 대표가 되며, 나무껍질 중에서도 소나무껍질이 그 대표다.
내가 살던 곳에서 다니던 (부산시 동래구 소재) 중학교로 가려면 두 가지 방법이 있었다. 하나는 전차를 타고 가는 방법과 걸어서 가는 방법. 전차를 타고 가는 방법도 서면까지 20분쯤 걸어가 전차 타고 학교 앞 정류장까지 가는 방법과 하마정(지금의 거제동)까지 30분쯤 걸어가 전차 타는 두 가지가 있었는데, 둘 다 시간은 한 시간 정도 걸렸다.
순전히 걸어서만 갈 때는 지름길로 가도 세 시간이 걸렸다. 그러니 아침 등굣길에는 엄두도 못 내나 하굣길, 특히 토요일에는 가끔 그리 했다. 걸어서 가는 그 길에 만덕고개가 있었다. 그 고개를 넘어가는 도중에 먹을 게 참 많이 나왔다. 겨울에야 먹으거리가 나오는 게 없지만 여름과 가을에는 숱한 나무열매를 먹으면 될 터. 그런데 봄이 문제였다. 그걸 해결하도록 해준 게 바로 송기와 칡이었다.
봄날 물이 잔뜩 오른 소나무 가지를 꺾은 뒤 겉껍질을 벗기면 뽀얀 속살을 드러내는데, 가만히 보면 속껍질이 어른어른 보인다. 그 속껍질이 바로 송기다. 두 손으로 소나무 끝을 잡고 입을 댄 다음 하모니카 불 듯이 왔다갔다 훑으면 달큼한 맛이 입안에 가득 고인다.
칡도 마찬가지다. 씹으면 약간 쓴 맛 나면서 물이 많은 물칠기와 씹으면 고소한 맛이 나면서 조금 퍽퍽한 가루칠기 모두 먹을 만하다. 파기가 어려운데 그것도 언덕 쪽에 묻혀 있거나 아래로 깊이 박히지 않고 옆으로 뻗어 있는 걸 고르면 쉽다.
송기든 칡이든 적당히 먹으면 심심풀이로서 나무랄 데 없다. 그러나 이를 한 끼 식량으로 대신하면 탈이 난다. 흔히 보릿고개라 일컬어지는 시기에 먹을 양식이 부족하여 주식 대신 그 둘을 이용할 경우가 종종 있었다.
송기는 말렸다가 도구통에 콩콩 찧어 가루 내면 떡으로 만들거나 밥에 얹어 먹는다. 칡도 마찬가지다. 물에 불러 간 뒤 체로 거르는 과정을 거쳐 내린 앙금을 말려 떡을 만들 수 있다. 헌데 송기든 칡이든 적당히 먹으면 모르나 끼니 삼아 먹으면 반드시 악성변비로 이어진다.
산동네에서는 아래쪽이면 형편이 좀 낫고, 위쪽일수록 어렵다. 우리 집 바로 윗집인 나보다 두 살 어린 길수네가 우리보다 가난한 건 당연한 일. 그러니까 그 집에선 가끔 송기떡이나 칡떡을 끼니 대신 먹어야 할 때가 있었다.
어느 날이던가, 갑자기 길수의 비명이 찢어질 듯이 들려왔다. 처음에는 이 녀석이 어디 부딪쳐 크게 다쳤거나 아니면 횟배를 앓아 견딜 수 없어 내는 소리라 여겼다. 그러나 비명은 그치지 않고 더욱 소리가 높아져 궁금한 마음에 가보지 않을 수 없었다.
길수네 마당을 들어섰을 때 길수의 얼굴보다 댓돌 바로 앞에 높이 쳐들린 엉덩이가 먼저 들어왔다. 옆에는 제 엄마가 젓가락을 들고 있고. 길수는 비명 지르는 가운데서도 나를 봤는지 손짓으로 쫓아내려 했지만 궁금증이 녀석의 엉덩이보다 높이 더 솟구친 터라 다가갈 수밖에.
길수의 똥구멍에는 숯이, 분명 내게는 숯처럼 보인 그게 박혀 있었다. 똥의 빛깔은 누런데 시커멀 수 있을까? 엄마는 그 숯을 젓가락으로 파헤치고 아들은 비명을 아프다고 지르고. 아무리 조심해도 똥구멍은 찢어질 수밖에. 그날 나는 똥구멍이 찢어지게 가난한 현장을 두 눈 뜨고 지켜보았다.
대부분의 가정에서는 설과 추석에 소고기를 먹었다. 아니 소고깃국을 먹었다. 엄밀히 말하면 소고깃국이 아니라 소고기기름국이었다. 고기는 보이지 않고 기름만 둥둥 떠 있으니. 문장 능력이 뛰어난 싱거운 이의 표현을 빌리면 소가 물을 건너갔다는 뜻의 ‘한우도강탕’이니 소발이 물에 살짝 닿았다는 뜻의 ‘우족접수탕’이었다. 한우도강탕이니 우족접수탕이니 해도 일주일에 한 번만, 아니 한 달에 한 번만 먹을 수 있다면 …
이런 사정이니 불고기, 고기를 불에 구워 먹는다는 건 상상할 수조차 없는 일이었다. 그런데 우리 집보다 못 사는 길수네의 집에 불고기를 해 먹은 일이 있어 한바탕 소동이 일었다.
길수가 나보다 어리다 보니 내가 저를 찾아갈 때보다 저가 나를 찾아올 때가 많았다. 해도 꼭 필요한 게 우리 집에 없고 걔네 집에 있거나, 어른이 시키면 찾아갈 수밖에. 아버지가 살강(그릇 따위를 얹어 놓기 위하여 부엌의 벽 중턱에 드린 선반)의 늘어진 철사를 조이다가 철삿줄이 그만 끊어지고 말았다. 철사를 사 오자니 시간이 걸리고 하여 혹 길수네에 철사 있으면 좀 얻어오라는 심부름을 시켰다.
길수네 대문에 이르렀다. 사립문을 열고 들어가기 전에 이상한 냄새, 너무나 고소하면서도 유혹적인 냄새가 나는 게 아닌가. 한 번도 맡아보지 못한 냄새였고, 대상과 냄새의 정체를 연결시킬 능력이 없었건만 대번에 내 생애 가장 맛있는 고기를 떠올리고 있었다. 바로 소 불고기.
심부름의 목적을 잊어버린 채 본능적으로 천관녀의 집을 찾아간 김유신의 말(馬)처럼 황홀한 냄새에 이끌러 부엌에 이르렀을 때, 길수와 걔의 아버지 두 사람이 당황해하며 불 위에서 구워지는 걸 가리려는 순간 나는 확신했다. 이들이 저들만 먹으려고 나에게 들키지 않으려 한다는 사실을.
쉽게 포기할 수 없었다. 파블로프의 이론을 빌릴 필요도 없이 입에서는 침이 줄줄 흐르는데, 그깟 조금 가린다고 그냥 물러갈 수야. 두 사람이 눈을 주고받더니 나의 끈기에 항복 선언을 했는지 길수 아버지가 목소리를 죽였다.
“즈을대로 우리 집에서 묵었다는 이바구만 안 한다고 약속하면 노나 주겠지만….”
당장 이 앞에서 죽어라는 말만 하지 않는다면 어떤 조건도 들어준다고 작정한 터에 그 정도야 하는 마음에 머리를 몇 번이나 숙였다 들었다 했다. 그날 나는 태어나서 가장 맛있는 고기를 ‘구워’ 먹었다. 도강탕도 아니고 접수탕도 아닌 소고기 불고기를.
가장 맛있는 고기를 먹은 추억의 그날을 영원히 아름답게 간직하려는 꿈은 아버지 심부름을 잊어버리면서 산산조각이 나고 말았다. 아버지는 철사 가져오기를 기다리다 함흥차사인 아들을 데리려 올라오셨고, 아버지 역시 고소한 냄샛길을 따라올 수밖에 없었던 모양이다.
아버지는 나완 달랐다. 한쪽에 구겨진 신문지를 들춰보고는 길수네 아버지를 노려보다가는 내 귀를 꽉 쥐고 돌아섰다. 찢어질 듯이 아픈 귓속으로 아버지의 노한 소리가 들려왔다.
“이놈 아새끼, 묵을 기 없다고 쥐고기를 다 묵엇!”
*. 수필이니까 사실을 있는 그대로 적어야 하나 이름과 나이 등을 다 바꿨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