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9화 : 하야리아부대(2) - 짬빵, 그 니글니글함의 절정
어릴 때는 먹어도 먹어도 배가 고팠다. 먹고 돌아서면 다시 배가 고파 먹을 게 없나 이리저리 두리번거리다 먹을 게 눈에 띄면 아버지 엄마의 엄포를 그냥 한 귀로 흘리며 입에 넣었다.
그러다 고구마나 감자처럼 굽거나 삶기만 하면 되는 먹거리를 찾았을 때는 더없는 횡재였으나 제대로 된 먹을거리가 보이지 않을 땐 찾아다녀야 했다. 찾다가 찾다가 적당한 게 없을 때 마지막 사냥감은 삶은 보리쌀이었다.
보리밥을 지으려면 지금은 적은 양의 보리를 쌀과 함께 섞어 바로 지으면 되지만 예전의 보리밥은 보리가 쌀보다 대여섯 배 많아 같이 지으면 보리는 덜 익었는데 쌀은 다 익어 먹을 수 없기에, 보리쌀을 먼저 삶아 소쿠리에 담아놓는다.
그런 뒤 밥을 할 때 한 번 삶은 보리쌀과 쌀을 섞어 짓는데 바로 이 한 번 삶긴 보리쌀이 아이들의 배고픔을 덜어주는 요긴한 먹을거리였다. 한 번 삶긴 보리쌀은 삶았다 해도 그냥 목구멍에 잘 넘어가지 않는다. 여러 번 씹고 씹어야 겨우 넘길 수 있다.
이걸 다른 곳에서는 어떻게 먹었는지 몰라도 미군부대 주변에서는 아주 특별하게 먹는 방법이 있었다. 바로 빠다(사실 당시엔 ‘버터’ 대신 일본식 발음인 ‘빠다’를 사용)를 넣어 비벼 먹는 게 그 비법이었다. 불에 살짝 녹인 빠다와 고추장을 적당히 버무려 비빈 보리비빔밥은 간식뿐 아니라 한 끼 식사가 되었으니, 집집마다 큼직한 삶은 보리쌀 소쿠리는 살강(선반의 일종)에 늘 얹혀 있었다.
미군부대 주변 아이들의 다음 간식거리는 우유였다. 50년 전쯤이라면 다른 지역에서는 구입하기 어려웠을지 모르나 거기에서는 얼마든지 얻을 수 있었다. 다만 우유는 알다시피 보관이 어려워 지금처럼 냉장고가 있는 것도 아니니 쉬 상할 게 뻔한지라 사람들은 꾀를 냈다. 우유를 찌는 방법을 고안한 것이다.
우유를 쪄서 건조하면 딱딱해진다. 강도가 어느 정도냐 하면 돌덩이나 다름없다. 이 딱딱한 우유덩이를 심심할 때면 꺼내 빨아먹는다. 입안에서 살살 녹여가며 먹는 맛은 우유의 고소한 맛과 찔 때 사카린의 단맛이 더하여 간식거리로선 으뜸이었다.
허나 뭐니 뭐니 해도 미군부대 주변의 아이들은 물론 어른들의 가장 큰 먹거리는 짬빵이었다. 짬빵이란 말은 먹다 남긴 음식을 뜻하는 한자어 ‘잔반(殘飯)’의 일본식 발음인데, 군 경험이 있는 이들은 이 말보다 ‘짬밥’에 더 익숙할 게다.
미군부대 근처 아이들은 학교 마치고 집에 오면 지금처럼 보습학원도, 피아노교습소도, 미술학원도, 태권도 도장 같은 게 없었으니 다닐 필요가 없다. 대신에 반드시 해야 할 일이 하나 있었다. 바로 정거장(요즘 식으로 말하면 '쓰레기하치장')에 가는 일.
정거장에 가서 한 동이에 오십 환씩 하는 짬빵을 사 오는 일이 빼먹어선 안 될 일과였다. 짬빵이란 정거장에서 파는 음식을 말하는데 아무것도 모르고 먹으면 그런대로 먹을 만했다. 아니 먹을 만한 게 아니라 노상 삼 끼 세 때 밥을 먹을 수 없는 사람들에겐 값싸고도 맛있는 음식이었다.
아이들은 학교가 마치자마자 엄마에게서 받은 돈과 양동이를 들고 짬빵을 사기 위해 부리나케 정거장으로 달린다. 아무리 빨리 달려가도 이미 줄은 몇 백 미터나 늘어져 있다. 해도 아이들에게 기다리는 시간이 지겹지 않다.
둘러보면 다 같은 학교 동급생 아니면 선후배다. 양동이만 줄을 세운 상태에서 아이들은 놀이를 한다. 수십 개의 양동이라도 당번으로 지정된 애 한두 명만 차례대로 옮기면 되니 나머지 아이들은 자유롭다.
이렇게 정거장에 가 오랫동안 놀며 기다리다 사온 짬빵은 시골에서 감자떡을 만들려고 감자를 단지에 담가 썩어갈 즈음의 누리끼리한 빛깔과 같았는데, 그 속엔 별의별 게 다 들어 있었다. 감자덩이, 고깃덩이, 빵조각이 뒤섞여 있고, 간혹 먹기 곤란한 것들도 들어 있어 반드시 먼저 골라내는 작업을 거쳐야 했다.
골라내는 작업 도구는 국자 하나면 됐다. 국자로 휘휘 저으면 내용물이 올라오며 그 정체를 드러내면 먹어도 되는 것은 놔두고 먹지 못할 것은 버린다. 주로 깡통과, 껌종이와, 할로들이 피우는 담배 중 유난히 길고 뭉툭하여 ㅈ담배라고 부르는 여송연 등.
헌데 가끔 최악의 쓰레기가 나올 때가 있다. 바로 희끄무레한 빛깔의 긴 골무처럼 생긴 고무주머니였다. 어른들은 기겁을 하지만 물색 모르는 아이들에겐 특별한 놀잇감이다. 어른 몰래 빼낸 고무주머니를 누군가 갖고 오면 다른 아이는 제 아버지의 긴 담뱃대를 들고 온다. 담뱃대 끝에 그것을 끼워 불면 기다란 모양의 불통이 된다.
명절 아니면 불통('풍선'을 달리 부르는 말)을 살 용돈을 얻지 못한 아이들에게 기괴한 모양의 이 불통은 아주 귀한 놀이기구였다. 그러나 어른들의 눈에 띄는 날이면 담뱃대로 머리를 얻어맞을 정도로 되게 혼이 났다.
커서 들은 얘기지만 짬빵이란 본래 할로들이 먹다가 남긴 음식찌꺼기를 몽땅 쓸어다가 돼지먹이로 보내지던 걸(그래서 '꿀꿀이죽'이란 말도 쓰임) 돈 계산 빠른 사람들이 빼돌려 먹을 음식으로 팔았다는 거였다. 그러니 깡통이랑, 껌종이랑, 담배꽁초 같은 거야 당연히 나올 만하였으나 그게 거기서 나오다니?
70년대 대학교 다닐 때 유행한 할로소설들을 읽으면서 그것의 쓰임을 처음 알게 되었을 때 나는 그날부터 사흘간 음식을 넘길 수 없었다. 먹으면 토하고 먹으면 토하고…. 지금도 생각하면 뱃속이 니글니글 거린다. 어떻게 그게 식탁에 있었으며, 어떻게 버리는 음식에 섞였을까? 그리고 왜 우리는 그때 그게 든 음식을 먹어야만 했을까?
술을 마실 줄 알다 보니 술집에 들를 때가 잦은데, 주로 얼큰한 국물의 요리를 반찬삼아 안주삼아 먹는다. 매운탕을 좋아하고, 중화요릿집에 가면 짬뽕국물을 안주로 시켜 먹을 정도로 얼큰한 국물을 주로 찾는다.
그러나 국물 안주라도 절대로 안 먹는 게 있다. 남들은 맛있게 먹는 부대찌개가 바로 그것이다. 누가 나에게 부대찌개를 아직도 먹지 못하게 했을까?
*. 커버 사진은 요즘 식당에서 흔히 볼 수 있는 부대찌개입니다.